[고척=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저희 팬들이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
프로 18년차 김태균(36·한화 이글스)은 그라운드에서 표정이 많지는 않다. 늘 진지한 자세로 타석에 선다.
헌데 목석같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있었으니, 바로 한화 팬들의 응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열정적으로 펼치는 응원에 김태균은 엄지를 들며 뿌듯해했다.
김태균은 22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2018 KBO리그(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서 9회초 결승타를 때려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1, 2차전을 패한 뒤 벼랑 끝에서 맞이한 3차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그는 양 팀이 3-3으로 맞선 9회초 1사 1루에서 넥센 3번째 투수 이보근의 초구를 통타, 우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1타점 2루타로 연결했다. 결정적일 때 제 몫을 하며 오랜만에 ‘해결사’ 역할을 했다. 1루 주자 이성열이 홈으로 파고들며 득점하자, 한화 팬들은 김태균을 연호했다.
한화가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한 건, 2007년 10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와 준PO 3차전 이후 무려 4028일 만이다.
이날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한 김태균은 데일리 MVP에 뽑혀 상금 100만원도 손에 넣었다.
3차전이 열린 고척 스카이돔은 입장권 1만6300장이 모두 팔려 만원사례를 이뤘는데, 한눈에 봐도 한화 원정팬이 넥센 홈팬보다 많았다. 한화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물결이 3루와 외야를 뒤덮었다. 넥센 응원단이 위치한 1루 스탠드에도 한화 팬들이 드문드문 자리했다. 한화 팬들은 응원팀이 점수를 낼 때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내질렀다.
김태균은 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이 감사하다고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태균은 “매년 정규시즌을 시작하며 ‘가을야구 무대에 서겠다’는 약속을 했다. 결국 거짓말이었다”며 “팬들께서 11년을 기다려주셨다. 준PO 1, 2차전에서 졌을 때도 선수들을 격려해주셨다. ‘보살팬’이라고 불릴 정도로 멋진 팬들이다. 정말 감사하다. 꼭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화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시즌 간 일본에서 뛴 김태균이 2012년에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한화는 가을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김태균은 “솔직히 2007년까지만 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갈증이 크지 않았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나서니 ‘가을야구가 이렇게 힘들고 귀하구나’라는 걸 깨닫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 팀 젊은 선수들에게 ‘계속 가을야구 하는 팀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모처럼 포스트시즌에 나섰지만, 김태균은 준PO 1, 2차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대전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차전에서는 5회말 2사 만루서 대타로 나와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섰고, 2차전에서는 대타로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
김태균은 “경기에 뛰지 않는 게 더 힘들 때가 있다. 매 이닝 대타로 나설 준비를 했다”며 “1차전이 끝났을 땐 몸이 녹초가 돼 집에 가자마자 쓰러졌다”고 했다. 김태균은 경기를 뛰지 않을 때도 긴장감을 유지했다.
내리 2패를 당해 벼랑 끝에 몰린 한용덕 한화 감독은 이날 3차전에서 김태균을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시켰다.
김태균은 한 감독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그는 2회초 무사 1루에서 좌전 안타를 때려 찬스를 이어갔다. 김태균이 밥상을 차려준 덕에 한화는 2회에 2점을 선취했다.
그리고 김태균은 9회초 결승 2루타를 폭발했다.
이때 그는 더그아웃과 원정 팬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평소엔 쑥스러워서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지금 생각하니 쑥스럽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지만 후배들에게는 의젓한 선배다.
김태균은 “올해는 후배들 덕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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