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대학생들은 괴롭다. 학점, 토익, 자격증, 봉사활동, 공모전 등 ‘5대 스펙’을 갖추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것만 같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일단 뒤로 미루고 본다. 여기 여타 젊은이들과는 다른 파격 행보를 이어가는 ‘여전사’가 있다. 양유진(26·경희대 체육학과) 씨는 “하고 싶은 게 있음 한번 해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당차게 외친다. 혼자만의 도전에 만족할 수 없던 그는 '나눔의 미학'까지 실천하고 있다. 기부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며 질주를 이어가는 '드림러너'와 유쾌한 인터뷰를 가졌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목표가 대한민국 인재상이었어요. 간절히 원했는데 이루어졌네요. 제가 했던 활동들이 인재상의 목적에 꼭 들어맞았나봐요.”
‘드림러너’ 양유진 씨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늘 붙는 수식어처럼 그는 '달리기'라는 단순한 행위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60cm도 될까말까한 아담한 체구의 여대생의 질주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얻었다.
지난해 12월 30일 대전 한국철도공사에서 대한민국 인재상 시상식이 열렸다. 100명의 ‘미래형 인재’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공로를 인정받아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이로 선택받았다.
장애인 육상 선수의 휠체어 마련을 위해 스포츠 기부활동을 진행한 양 씨가 빠질 수 없었다. 그는 “요즘 시대가 도전, 창의라는 이슈를 중시하는데다 여대생이라서 조금 더 주목을 받은 것 같다”고 수상자로 선정된 배경을 설명했다.
◆ 평범한 대학생이 마라톤을 택한 사연
양 씨의 대학생활도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대생인 그는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 이수를 했고 영어회화 실력 향상과 컴퓨터 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했다. 학교의 혜택을 받아 해외 탐방 프로그램에도 다녀왔다. 교육 컨설팅 업체에서 인턴도 했다.
졸업이 다가오자 양 씨는 ‘남들 하니까 나도 한 거구나. 나도 똑같이 자기소개서를 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는 “할 건 다 해보고 졸업해야겠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못하고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기 종목은 곧잘 했지만 유독 달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스스로를 뛰어넘는 것, 결론은 마라톤이었다.
2013년 10월 열리는 제주국제트레일러닝 대회 여자부 100km를 목표로 삼았다. 한강과 청량리를 왕복하는 20km 코스를 뛰며 만반의 준비를 했고 레이스를 3위로 마쳤다. 지난해 2월에는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참가했다. 10㎏짜리 가방을 메고 엿새간 하루 평균 40㎞를 뛰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희망을 외치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 여겼다.
대학교 1학년 때 장애인 아동 체육보조교사를 하며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장애인육상연맹에 문의해 취지를 설명하고 기부 대상자를 물색했다.
팔 힘이 좋고 체격도 크지만 몸에 맞는 휠체어가 없어 운동을 포기하려던 박윤재(15) 군 소식을 들었다. ‘드림러너’의 시작이었다.
◆ 휠체어 기부는 시작일 뿐, “도움 필요한 사람 고르는 것이 더 어려워”
'기부 마라톤'이 시작됐다. 양 씨는 지난해 5월 23일부터 강원도 고성에 자리한 통일전망대에서 경포대까지 108㎞를 뛰며 휠체어를 구입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애인육상국가대표 이윤오(34)와 휠체어 레이싱선수 홍수화(39)가 동참했다. 그는 “사비가 150만원이나 들었다. 걷힌 돈보다 더 많이 들더라”며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달 뒤 닳고 닳은 연골로 고비 사막을 정복하고 온 그는 8월 7일부터 2차 모금에 돌입했다. 2주간 자전거 무전 일주로 서울부터 강릉, 부산, 보성, 진도, 광주, 대전, 오산을 거쳐 다시 서울에 이르기까지 1700㎞의 거리를 돌았다.
비로소 언론이 조금씩 관심을 나타냈고 양 씨의 지인들이 점차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총 모금액은 450만원. 윤재 군의 휠체어가 점점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양 씨의 취지에 감동을 받은 휠체어 제조업체 닛신코리아서 반액을 후원하기로 하며 꿈이 현실이 됐다. 지난해 9월 대한장애인육상연맹에 모여 박 군에게 후원금을 직접 전달했다. 그는 “이제 걸음마를 뗐을 뿐”이라며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눈을 반짝였다.
양 씨는 “기부금을 모으는 것은 더 이상 힘들지 않다. 윤재처럼 진정으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 더 힘든 것 같다”며 “장애인 분들의 운동 환경이 많이 열악하다. 재능이 있어도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 어두운 곳 많아, 빛이 되고파
다음달 말에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예정돼 있다. 그는 "러닝 경력이 짧아서 최대한 많이 뛰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4월에는 기부 마라톤을, 5월에는 사막 마라톤 대회를, 9월에 또 한 차례 기부 마라톤을 진행한 후 10월에는 남미로 향할 예정이다.
장거리를 뛰기 위해 철저한 준비는 필수. 2~3달 전부터 등산, 마라톤, 사이클 등으로 한달 평균 300km씩을 소화하며 체력을 단련한다. 그는 “무리해 훈련을 했는지 발목이 돌아가 잠시 운동을 쉬고 있다”며 “하루빨리 완쾌해 레이스에 대비해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20대 여대생의 발칙한 제안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아웃도어 업체와 제약회사는 이제 양 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신문과 지상파 뉴스 인터뷰, 인재상 수상 보도 등을 통해 훈훈한 소식을 접한 이들이 댓글과 메시지로 양 씨를 응원하고 있다. 모금액 규모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난코스가 양 씨를 기다리고 있다. 다리를 잃는 이, 절벽을 지나며 졸다가 사망하는 이 등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사막마라톤대회의 경우 출발 전 유서를 쓴단다. 주변에서는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고 걱정 투성이다. 양 씨는 “나라고 왜 무섭지 않겠냐”면서도 “그럼에도 도전을 멈출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션처럼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그는 “나를 희생하더라도 늘 나누는 길로 향하고 싶다. 도전은 나 혼자 하지만 완주하면 모두 함께 나눌 수 있더라”며 “사회에 어두운 곳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조금이나마 빛이 되고 싶다.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기부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기부하지 않아도 움직이면 진정한 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취재 후기] 그는 욕심쟁이다. 올해 안으로 책도 내고 싶고 신체 활동을 통해 인성을 기르는 교육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궁극적인 꿈은 장애인들을 위한 운동 기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것. 양 씨는 “우리가 잊고 사는 창의, 인성, 도전, 열정같은 가치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들에게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욕심이라면 얼마든지 더 부려도 된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인터뷰였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