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 Tip!] ‘82년생 김지영’은 정유미가 김지영을, 김지영이 정유미를 연기한 작품이다. 제작사 측에서 정유미가 연기할 김지영을 이미지북으로 만들어 줄 정도로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니 ‘정유미=김지영’일 수밖에. 비록 소설의 영화화 소식과 캐스팅 단계 때부터 온갖 논란이 있었지만, ‘82년생 김지영’은 단순히 한 사람의 성장기 혹은 인생 이야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스포츠Q(큐) 이승훈 기자] 지난 2005년 영화 ‘사랑니’를 통해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정유미. 그가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하면서 현재에 놓여있는 본인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괜찮아?’, ‘어떻게 살고 있어?’
바쁜 현실을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들에겐 친절했지만, 오히려 자신에게는 퍽퍽했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답이 없는 물음 속에서 정유미는 한 없이 평범한 김지영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대답을 이끌어낼까.
◆ 당연해진 익숙함, 그 후에 알게 된 미안함
“큰 깨달음보다는 지금까지 잊고 지냈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어요. 물론 제가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이 상황들을 이제라도 인지하게 됐다는 게 다행이죠. 만약 ‘82년생 김지영’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감정들을 몰랐거나, 알게 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이후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건넸던 정유미가 촬영을 하면서는 미안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경우를 사전에 대비하면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된 것.
정유미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결혼 후 출산과 육아, 집안일로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며 살아가는 김지영을 연기했다. 특히 정유미는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다를 수밖에 없었던 여러 세대들의 현실상을 극명하게 묘사하면서 자식으로서,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는 영화 ‘82년생 김지영’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날을 회상했다. 정유미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직 영상으로 구현되기 전임에도 글이 선사하는 먹먹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
또한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 하며 살아가진 않았나 싶기도 했고, 이런 나를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는 정유미는 “영화를 통해 ‘내 주변은 어떻구나.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알아차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며 촬영 초반 김도영 감독과 나눴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 소설과 다른 희망적 결말... “조미료 없는 영화”
정유미는 나이, 성별 등 영화 속 김지영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일반적이고 한 여성의 평범한 일상을 다뤘기 때문에 함께 연기한 배우 공유가 “현장에서 정유미를 봤을 때 이미 ‘김지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의 캐릭터 소화력을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느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매력을 어필했다.
“처음에는 ‘어딘가에서 받은 상처의 벽을 뚫고 나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을 것 같았죠. 물론 제가 김지영의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난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소설과 다른 결말’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은 끝으로 갈수록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지만, 영화 속 김지영은 밝고 희망찬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로 재탄생됐다.
정유미는 “희망적인 결말이 좋았다. 잘 나아가기 위해 지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대단한 게 바뀌고 큰 변화가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재를 잘 쌓고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소설과 다른 결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현실과 맞닿아있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의 결말은 희망적이길 바란다”면서 “우리가 감정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결말이 좋다”고 덧붙였다.
◆ 꺼지지 않는 ‘젠더 이슈’의 불씨
‘82년생 김지영’의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해당 소설과 영화가 각종 ‘젠더 이슈’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알 정도다. 유명 검색 포털사이트에 ‘82년생 김지영’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페미’가 등장한다. 작품 속 김지영이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면서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일부 시선들이 날선 비난을 이어갔기 때문. 그만큼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제작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사실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은 감독도, 작가도 아닌 김지영으로 캐스팅 된 배우 정유미였다. 지난해 9월 정유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으로 출연을 확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마자 일부 누리꾼들은 악성 댓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은 정유미의 개인 SNS를 시작으로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평점을 테러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정유미는 오히려 덤덤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제작보고회부터 언론 시사회, 인터뷰까지, 총 세 번에 걸쳐 대중들 앞에 나선 정유미는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악플에 대한 답답함도 없다”며 의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 정도일 줄은 생각 못했어요. 전 출연 확정 이후 한결같이 ‘내가 보고 느낀 이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영화로 보여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다양한 의견이 오고갈 순 있다고 생각했죠. 모든 사람들이 좋게 볼 수 없다는 걸 저도 알기 때문에 논리적인 비판을 듣고 싶어요. 그걸 이해해보고 싶기도 해요.”
오랜 시간동안 각종 비판들을 받아왔던 터라 정유미는 다른 작품에 비해 더 많은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전혀 없었다. 크게 놀라긴 했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진 않았다”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관객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갈 진 모르겠지만, ‘조미료 없는 영화’ 같아요. 보는데 마냥 편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울고 나면 해소되는 게 있는 것처럼 다양한 시선들이 오고갈 것 같죠.”
[취재후기] 배우 정유미에게는 사랑스러운 별명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정유미’와 ‘러블리’가 합쳐진 ‘윰블리’. 그는 로맨틱코미디 작품은 물론, tvN ‘윤식당’을 통해 귀여운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윰블리’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들 앞에서 정유미는 단호했다. 영화 속 김지영처럼 배우 정유미 역시 본인의 주장을 내세울 때는 가감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며 다양성을 존중하기도.
“악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안 좋은 얘기만 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분들의 생각을 알 순 없지만, 이게 다라고 생각하진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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