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35·한국명 안현수)이 은퇴를 선언했다. 2006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을 시작으로 한국 쇼트트랙의 현재이자 미래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그가 러시아 쇼트트랙 역사를 새로 쓰고, 러시아의 레전드로 남게 됐으니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27일(한국시간) 러시아 타스통신과 스푸트니크 등에 따르면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은 “빅토르 안이 편지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크라프초프 회장은 “올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취소되기도 했고, 몸 상태와 나이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타스통신은 “빅토르 안이 은퇴 의사를 내비친 건 처음이 아니다”라며 “지난 2018년 9월에도 은퇴를 발표했지만 5개월 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겠다며 번복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은 안현수가 은퇴 결정을 내리며 팬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도 공개했다. 편지에서 안현수는 "무릎 통증이 계속돼 최대치로 훈련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이 은퇴하기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해 결심했다. 선수 시절 도와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남겼다.
안현수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1000m, 1500m와 5000m 계주에서 우승, 한국에 금메달 3개를 안기며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김동성이 안톤 오노(미국)에 메달을 내주는 등 불운을 겪었던 터라 당시 안현수의 활약은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연속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을 차지한 안현수 본인도, 쇼트트랙 팬들도 장밋빛 미래를 그렸건만 이후 그는 빙상계 파벌 논란에 휘말렸고, 심한 무릎 부상까지 겹쳐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는 등 슬럼프에 빠졌던 그는 2011년 소속 팀이 해체되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그렇게 안현수는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금메달 3개를 획득했는데, 러시아가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처음 따낸 금메달이었다. 500m, 1000m 등 개인 종목은 물론 5000m 계주에서도 팀원들을 이끌고 정상에 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안현수 사진을 게재하고,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안현수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러시아에 화답하며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안현수는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을 통해 7번째 금메달을 노렸지만 러시아 정부의 도핑 스캔들에 연루돼 참가하지 못했다. 같은 해 9월 러시아에서의 선수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던 그는 이후 베이징 대회 출전을 목표로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2019~2020시즌 빙판에 돌아와 쇼트트랙 월드컵 1차대회 500m, 1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무릎 통증이 심해져 일상생활에도 차질을 빚었다.
안현수는 “미래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지속적인 무릎 통증으로 인해 경기 후 회복, 치료 및 재활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릎 통증으로 더 이상 선수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안현수는 한국이 놓친 인재였고, 팬들 사이에서도 안현수의 귀화 결정에 돌을 던지기보다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안현수는 소치 올림픽 이후 몇몇 국내 TV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 생활을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는 부인 우나리 씨 그리고 딸 제인 양과 함께 서울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국내 한 언론사 사설에서 '안현수의 조국은 아이스링크'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그가 이제 빙판을 떠난다. 그가 러시아 대표팀에 복귀할지 혹은 코치 등 지도자로 후배 양성에 힘쓸지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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