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포인트] 오연아·이시아부터 이동하·이상엽까지 '시그널'이 발굴해낸, 혹은 재발견한 배우들
[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과거와 현재의 무전교신을 통해 장기미제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거대한 미스터리의 퍼즐조각을 맞춰내 '명품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은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이 12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시그널'은 방송 내내 장기미제사건의 범인과 피해자를 연기한 참신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기존에 이미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시그널'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반전을 시도한 연기자도 있었고, 그동안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시그널'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은 연기자도 있었다. '시그널' 종영을 맞아 '시그널'에서 주연급이 아닌 스쳐가는 배역이었음에도 주목받은 배우들은 누가 있었을까?
◆ 강렬한 악역 변신으로 눈길 사로잡은 오연아·이동하·이상엽
먼저 '시그널' 1회에서 강렬하게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끈 인물은 첫번째 사건이었던 '김윤정양 유괴살해사건'의 진범인 '윤수아'를 연기한 배우 오연아였다. 오연아가 연기한 '윤수아'는 정신병원 간호사로 낭비벽으로 인해 빚을 지게 되자 초등학생인 김윤정(이영은 분)을 유괴해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오연아가 주목받았을리 만무하다. 오연아는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서형준'을 살해한 뒤 오른손 엄지손가락만을 잘라서 여기저기 지문을 남기고 다니며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났고, 용의자가 된 서형준은 자신이 근무하던 선일정신병원 뒤편의 으슥한 맨홀에 목을 매달아 죽였다. 그리고 박해영(이제훈 분)이 프로파일링을 통해 진범으로 체포했을 때도 공소시효 만료까지 자신의 범행을 밝히기는커녕 공소시효 시간이 다 되는 것을 기다리며 "난 죽이지 않았어"라고 말해 차수현(김혜수 분)과 이제훈을 절망에 빠트리는 독특한 팜므파탈 연기를 선보였다.
오연아는 과거 '오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영화 '계몽영화'로 제54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제8회 대한민국영화대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집으로 가는 길'의 교도소 수감자 '수지', '소수의견'의 국민참여재판을 막아서는 '오인하 검사'를 연기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시그널'에서는 팜므파탈의 매력을 마음껏 과시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MBC 일일드라마 '이브의 사랑'에서 악녀 강세나(김민경 분)와 결혼한 '구강민' 역으로 주목받았던 이동하 역시 '시그널'을 통해 '베테랑'의 유아인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악역 연기를 펼쳤다. 이동하는 '대도사건'의 진범이었지만 목격자 행세를 하며 화물운송을 하던 오경태(정석용 분)를 범인으로 지목해 억울한 사건들을 만들어냈고, 이후 이재한(조진웅 분)에 의해 진범으로 밝혀져 체포당했다가 출소한 후 진양신도시 재개발 비리 문건이 담긴 플로피 디스켓을 모르고 훔쳐간 배우 지망생 신다혜(이은우 분)를 살해하려고 했다.
심지어 이동하는 20년이 지난 현재에서는 검사장이었던 아버지의 힘으로 대형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손짓 하나로 서울청 수사국장인 김범주(장현성 분)를 부리는 등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고 있어 시청자들의 분통을 터지게 했다. 하지만 이제훈은 김혜수가 이동하에게 살해당할 뻔 했던 '신다혜'를 찾아내면서 이동하를 궁지에 몰아 결국 수갑을 채우는데 성공했다.
'시그널'의 악역 중 유난히 강한 개성을 과시한 마지막 주인공은 1997년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살인범 김진우를 연기한 이상엽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파랑새의 집', '사랑해서 남주나' 등 주로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에서 선량한 이미지를 연기하던 이상엽은 '시그널'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보다 한 명 더 많은 11명을 살해한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살인마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이상엽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어하는 외로운 여성들을 눈여겨 본 후 이들에게 검은 비닐봉투를 뒤집어 씌운 후, 목을 졸라 살해하는 악랄한 범죄수법을 보였다. 처음 밝혀진 살인사건은 두 건에 불과했지만 이후 김혜수가 홍원동 인근 야산에서 아홉 구의 시체가 암매장된 것을 추가로 발견하며 총 11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특히 선량한 얼굴을 하고 접근한 후 "내가 편하게 해줄께"라며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며 목을 조르는 이상엽은 진정한 사이코패스 살인마 연기의 정점이었다.
◆ 시청자들의 가슴 애태운 슬픈 사연의 피해자들 이시아·이은우·서은아
악역들이 '시그널'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촉매제였다면, '시그널'에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것은 악역들에게 살해당하는 피해자들이었다.
피해자들 중 가장 먼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배우는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희생자였던 동사무소 여직원 '김원경'을 연기한 이시아였다. 김원경은 단아한 미모와 화사한 미소로 신참 순경이었던 조진웅의 첫사랑이었지만, 이제훈과의 무전으로 과거가 바뀌게 되면서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어 버렸다. 김원경이 죽은 후 김원경이 생전에 조진웅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영화표를 들고 극장에 가서 홀로 울면서 영화를 보던 조진웅의 모습은 단연 '시그널'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단아한 미모로 눈길을 끌은 김원경을 연기한 배우 이시아는 걸그룹 치치에서 '샤인'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이후 '구암 허준', '하녀들', '처용2',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등의 드라마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던 배우. 특히 비슷한 시기 방송된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는 유승호가 성인이 되어 맡게 된 첫 번째 본격적인 사건인 일호생명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도 등장해 눈길을 끌은 바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할 피해자는 '대도사건'에서 이어지는 '신다혜 실종사건'의 주인공인 신다혜를 연기한 배우 이은우였다. '신다혜 실종사건'은 20년 전 죽은 줄 알았던 약혼녀가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는 약혼자 김민성(현성 분)의 의뢰로 시작된 사건으로, '대도사건'의 진범이었던 한세규(이동하 분)에게 살해당할 뻔 했으나 한세규가 사람을 착각해 신다혜가 아닌 신다혜의 침대에서 자던 신다혜의 후배 '김지희'를 살해한 사건이고, 신다혜는 이후 한세규를 피해 김지희의 이름으로 독일로 건너가 20년 동안 살다가 어머니에게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었다.
'시그널'의 피해자 중 유일하게 당시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며 2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서글플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사건 피해자의 마음고생을 보여준 이은우는 '피에타' 이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뫼비우스'에서 조재현의 아내와 아들 서영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점여인의 1인 2역을 연기하며 김기덕 감독이 발굴해낸 배우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배우. 최근에는 '대호'에서 최민식의 아내로 등장해, 호랑이를 쏘려던 최민식의 총에 맞아 죽는 모습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에서 11명을 살해한 잔인한 살인마 김진우(이상엽 분)의 마음을 뒤흔든 피해자 유승연을 연기한 서은아도 놓칠 수 없는 배우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한 경험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여성들을 가학적으로 살해하던 이상엽은 인근 전구공장에서 일하던 유승연을 11번째 피해자로 삼으려 했지만, 자신을 좋아하던 유승연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결국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살해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훈은 유승연의 사체에서 나타난 평소와 다른 흔적을 토대로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 이상엽을 찾아내게 됐다.
게다가 서은아는 과거 시점에서 진범 이상엽이 체포되며 목숨을 건진 후에도 18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 감옥에 갇힌 무기수 이상엽을 돕기 위해 찾아온 자원봉사자로 등장해, 결국 이상엽과의 서글픈 로맨스를 완성시키며 더욱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유승연을 연기한 배우는 영화 '짓'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서은아로, 서은아는 '짓' 외에도 KBS 드라마 스페셜 '비밀'에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베트남 여성을 연기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