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현우는 '지우는 연습중'

2014-08-22     오소영 기자

[300자 Tip!]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 지현우의 앞엔 에세이집 ‘어떤 하루’가 놓여 있었다. 지난 12일 종영한 KBS2 드라마 ‘트로트의 연인’을 끝내고 지금 읽는 책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 권 사서 스태프 분들께도 드리고 친구들에게도 나눠줬다. 지금은 복잡한 소설보단 머릿속 정리를 도와줄 수 있는 책이 필요해서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전역 직후 정신없이 ‘트로트의 연인’ 촬영에 들어갔던 그는 이제야 한 숨 돌리는 듯했다.

[스포츠Q 오소영 기자] ‘트로트의 연인’은 트로트에 소질이 있는 ‘최춘희(정은지)’가 성공적인 가수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지현우가 맡은 역 ‘장준현’은 춘희를 키워내는 천재 뮤지션으로 그 과정에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 ‘뮤직드라마’ 기대했던 ‘트로트의 연인’ 아쉽긴 하죠

제목이 나타내듯 ‘트로트의 연인’은 트로트란 음악적 소재를 가지고 시작했다. 지현우와 정은지라는 노래와 연기가 모두 가능한 연기자들로 이뤄진 캐스팅이었으나 음악적인 부분은 크지 않았다. 끝으로 가면서 음악적 부분이 줄고, ‘기억상실증’과 ‘부모 세대의 악연’ 등 드라마의 뻔한 공식들이 나오며 아쉽게 끝났다는 평이 많았다.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 저도 뮤직드라마를 생각했었어요. 영화 ‘원스’같은 느낌을 떠올렸죠. 영화에서 큰 비중으로 라이브를 다루고 음악으로 감정 몰입을 돕는 신 같은 거요. 음악적으로 저와 정은지 씨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놉시스를 보고 여주인공으로 정은지를 추천했던 것도 지현우다.

“요즘은 녹음이나 후작업은 티가 나잖아요. 라이브가 가능한 여주인공이어야겠단 생각으로 정은지씨를 추천했어요. 사실 잘 몰랐어요. 노래를 잘 하는 친구고 연기가 나쁘지 않다고 주변에서 말을 해 줘서 알게 됐어요. 춘희는 건강하고 보는 사람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캐릭터니 이미지가 어울릴 것 같았어요.”

아쉬움이 클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지현우는 겸손한 대답을 내놨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에요. 저는 써 주시는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이고, 그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음악드라마가 아니어도 초반처럼 밝고 웃음이 나는 내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 정도는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많은 분들이 후반 내용에 대해 아쉽단 의견을 주셨는데 저는 크게 동요하진 않았어요. 연기하는 내용에 대해 저 스스로 물음표를 가졌다면 시청자 분들도 제 연기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셨을 거예요. 잘 마무리했고 좋은 배우들과 연기한 것에 감사할 뿐이죠.”

◆ 군 복무 동안 책임감 커지고 욱하는 성격 줄었어요

군 복무 동안은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다. 다만 지금껏 여러 활동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보다 ‘올인’하는, 모든 걸 쏟아붓는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대하기 전엔 연기, 음반, 뮤지컬 등 여러 활동을 했어요. 한 작품이 끝난 직후에 다음 작품에 대해 생각했고요. 이젠 현장에서의 위치가 바뀌었죠. 제가 배우나 스태프들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졌어요. 예전엔 하는 일에 올인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래서는 안되는 입장이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복무 기간을 거치며 책임감은 커지고 성격은 차분해졌다는 얘기다.

“욱하는 게 많이 줄었어요. 예전같았다면 다퉜을 일을 이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요. 장면을 찍을 때 감정선이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감독님과 저의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번 촬영에선 감독님의 의견을 많이 따랐어요. 저는 말랑말랑하고 알콩달콩한 걸 좋아하는데 이번 드라마 감독님은 좀더 애틋하고 애절한 걸 좋아하셔서 그쪽에 많이 맞춰서 갔죠.”

◆ 진심으로 임하면 얻는 것들이 있다 … ‘연하남’ 보내고 ‘유치원생 팬’

‘트로트의 연인’이 주목받았던 데는 극중 연인으로 나오는 지현우와 정은지의 실제 나이가 9살 차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자연스러운 연인 연기를 보여줬다.

“제가 젊어보이기도 하고 은지씨가 좀 들어보이기도 하고(웃음). 저도 초반엔 걱정이 있었는데 모니터해 보니 생각만큼 위화감이 있진 않더라고요. 은지씨는 외모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성숙한 친구예요.”

오랫동안 지현우에게 붙어다녔던 ‘연하남’ 이미지를 떠나보내는 동시에 어린 나이의 팬들이 생겼다. 예전엔 누나 팬이나 어머님 팬이 많았는데 새로 생긴 팬층은 유치원생이다.

“춘희의 동생으로 ‘별이’가 나왔잖아요. 별이와 제가 연기하는 걸 보고 아이들이 ‘저런 오빠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부끄러워하는데 너무 귀여웠어요. ‘트로트의 연인’을 하면서 얻은 부분이죠. 뭘 하든 진심으로 임하면 얻어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별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 유은미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역린’의 별이 연기를 보고 반했어요(웃음). 이번 드라마에선 제 엉덩이를 두드리는 신이 있었는데 당황스럽더라고요. 연기를 정말 잘해서. 나중엔 스스로 애드리브도 하더라고요.”

◆ 연인 연기 비결은 ‘눈맞춤’과 ‘진심’

전작 ‘인현왕후의 남자’나 ‘트로트의 연인’에서 지현우는 달콤한 애정 신에 강했다. 그의 애정 연기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나왔던 현실적인 신들을 좋아해요. 방 안에서 둘이 청소하고 요리하는 그런 모습들. 스킨십도 실제 연인들이 하듯 툭 건드리는 식을 좋아하고요. ‘트로트의 연인’에서 우울해 있는 춘희에게 힘내란 의미로 발로 톡톡 건드리는 장면 같은 거요. ‘이 자세로 껴안아야겠다’, ‘이 각도로 입맞춤을 해야 예쁘게 잡히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안 해요.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눈을 바라보고, 상대방과 저의 대사를 더 잘 느끼려고 하죠.”

‘트로트의 연인’에선 생각만큼 춘희와의 애정 신이 없었기 때문에 마련된 분량 안에서 효과적인 느낌을 내려 노력했다. 춘희가 준현의 어머니에게 와인 세례를 받고 마음에도 없는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축하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준현이 춘희의 마음을 달래주려 이벤트를 하는 장면은 지현우의 아이디어였다.

“춘희가 상처를 몹시 받은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이벤트 없이 넘어가냐고 말씀드렸어요. 그냥 넘어가면 안된다고. 이런 부분에선 강하게 말씀드렸죠.”

◆ 주변을 ‘지우는 연습’…흔들리지 않는 몰입력 얻고 싶다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워넣는 대신 지현우는 ‘지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마이크, 조명 등 촬영 스태프들이 가득한 현장에서 그 주변을 눈에 보이지 않도록 ‘지워내고’ 오직 연기하는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길 꿈꾸고 있다.

“연기에 집중하면서 예민해지면 아주 사소한 것에도 순간적으로 짜증이 날 때가 있어요. 잔뜩 몰입해있는데 주변에서 휴대전화 진동이 울리면 화가 나는 식이죠. 다시 몰입하기까진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요. 집중력을 키우고 싶어서 검도나 요가, 명상을 해 볼까 생각도 했어요. 보통은 상대방 신을 찍을 때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와요. 스태프들이 안 보는 상태에서 찍으니까 그런 거죠. 아무리 집중을 해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지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 ‘정도전’을 보며 유동근 등 선배들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몰입과 집중력에 존경심과 함께,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커졌어요. 언제쯤 나는 내 연기에 만족할 수 있을까 싶어요. 1%든 2%씩이든 조금씩 올라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아날로그 청년 지현우 … 사극같은 진지한 작품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드라마는 보다 진지하고 멜로가 주가 아닌 내용이다. 군 복무 동안 읽었던 조정래, 김훈, 김진명의 장편소설 등이 영향을 줬다.

“대하사극은 저와 안 어울리고요. 깊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사극을 해 보고 싶어요. 아날로그 쪽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디지털 바보이기도 하고(웃음).”

지현우는 디지털과 친하지 않다. 영화 홍보 겸 만들었던 트위터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최근 본 영화 ‘명량’을 얘기하다가는 ‘메가X스’ CF(2001년 나왔던 광고다.)의 이순신을 예로 들었을 정도다.

“어디 가입하려고 하면 ‘동의하시겠습니까?’ 질문이 너무 많아요. SNS를 하면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는 것 같고요.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져서요?) 그렇다기보단 제가 속도가 느려서 오래 걸리니까(웃음). 그나마 하는 게 미니홈피예요.”

대본 역시 직접 손으로 써가며 외운다. ‘트로트의 연인’의 경우 8부까지는 지문과 대사를 모조리 옮겨 썼다.

“군대에서 책을 읽으면서 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작가 분들에겐 자식같은, 모든 걸 짜내서 낳은 작품인데 제가 대충 보고 연기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손으로 옮겨적다 보면 작가의 의도가 뭔지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연기할지 여러 선택지도 생기고요.”

◆ 뮤지컬, 연극, 음반… 쌓여있는 계획들

지금은 휴식이 간절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많다. 드라마도 하고 싶고, 뮤지컬이나 연극같은 무대에 서고 싶고 음반도 내고 싶다.

“무대의 경우는 한 번 흐르면 다시 못 하는 편집 없는 공간이잖아요. 저를 심판하는 심판대이기도 하죠. 팬분들도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고 저 또한 모든 걸 쏟아버리고 싶어요.”

‘트로트의 연인’에서 춘희에게 불러준 노래는 지현우의 자작곡이다. 입대 전 만들었던 곡들 중 4~5곡을 모아 올해 안에 음반을 낼 예정이다.

“제가 한참 밴드 ‘콜드플레이’에 꽂혔을 때 만든 노래라 분위기들이 좀 어두워요.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는 얘기가 있어서 우울한 음악을 하면 우울해질까봐 음반을 안 냈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선후임들에게 불러줬더니 밝은 곡보다 우울한 곡이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군대에서 우울해서 공감을 하는 건지(웃음). 슬픔이나 외로운 느낌을 원하는 분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일 것 같아요.”

[취재후기] 지현우가 2년간의 공백 후 작품을 시작하며 마음먹었던 것은 자신을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에 스며드는 게 최우선’이었다.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감은 변화된 태도에서 엿보였다. 고민과 생각이 많아 머릿속 정리가 필요하다면서도 망설임없이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 고민은 어려운 것이 아닐 것으로 보였다. 이미 그는 ‘지워내기’와 ‘진심’이라는 답을 아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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