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생각] 대한체육회는 박태환에게 왜 이리도 가혹했을까?
[스포츠Q(큐) 최문열 대표] “청문회를 열어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
박태환(27)의 대표 선발 논란을 지켜본 한 누리꾼은 기사 댓글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대한체육회(공동 회장 김정행, 강영중)의 최근 우왕좌왕 갈지(之)자 행보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이토록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또 있었을까요? 한때 대한체육회를 출입했던 기자로서 박태환 논란 과정을 지켜보면서 입맛이 껄끄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태환 논란이 체육계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국내 법원과 CAS(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힘을 빌려 정리됐다는 점은 한국 체육계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해 씁쓸함을 더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일각에서는 대한체육회가 잘못 꿴 첫 단추를 끝까지 고집하다가 망신살을 자초한 케이스라고 꼬집습니다. 또 위, 아래가 원활하게 협의하고 소통되는 조직과 시스템이었다면 충분히 걸러질 수 있었는데 일방통행 식의 ‘상명하달’ 및 ‘불통’ 조직문화가 불씨를 더 키웠다고 비판합니다. 그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관계도 포함됩니다.
이 때문일까요? 대한체육회는 이번 박태환 논란에서 연거푸 패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낙제점을 면치 못했습니다. 심지어 매너 면에서도 큰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먼저 내용을 보면 대한체육회는 초반만 해도 ‘원칙 VS 특혜’라는 프레임으로 밀어붙여 기선을 잡는 듯했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박태환에게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며 ‘원칙’에 동조했습니다. 국내의 이중처벌 규정이 국제 기준에 위배된다는 사실은 체육회의 화려한 수사로 무시됐습니다. ‘기록은 기록이고 규정은 규정’이라며 국내 규정만을 가장 먼저 내세웠습니다. 더불어 “CAS 결정을 반드시 따를 의무가 없다”는 말도 흘려 다수를 헷갈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억지였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대한체육회는 박태환 측에 물밑 제안을 했습니다. 지난 5월 말 KBS에서 보도한 내용의 골자는 ‘이번 리우올림픽을 포기하면 추후 규정을 개정, 명예 회복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7일 TV조선은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지난 5월 쯤 박태환 측을 비공개로 만나 체육회 규정을 거론하며 리우 행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고 전했습니다.
추후 규정을 개정할 것이라면서 박태환부터 해주면 왜 안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해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그 규정을 만들었을 2014년 6월 당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중처벌 규정은 폐지됐습니다. 박태환 논란이 커지면서 국제적인 흐름을 전혀 모른 채 규정을 만든 것 뿐 아니라 국내 규정이 우선이라고 억지 주장한 것이 만천하에 들통 나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사게 됐으니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와중에 박태환 선수 개인의 기본권과 인권을 고려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명예회복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던 박태환 측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습니다.
체육회는 국내 법원이 박태환 측의 손을 들어주자 이번에는 “CAS 처분에 따르겠다”며 기존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다수 언론에서 체육회가 보인 일련의 행태에 대해 말 바꾸기와 시간 끌기, 이중플레이 꼼수라고 비판 수위를 높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어 CAS의 판결에 의해 박태환의 ‘리우’ 행이 결정된 뒤 대한체육회의 태도는 스포츠팬들을 더 뿔나게 했습니다. 기본적인 매너조차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체육회는 소모적인 논쟁에 대한 아무런 사과 없이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경우 타 국가의 국가대표와 달리, 각종 훈련비, 수당 등을 지급받으며, 연금, 각종 교육 혜택 등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비용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어,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다.”면서 박태환 논란이 잘못된 규정 때문이 아니라 도덕성 때문으로 몰아갔습니다. 국민 세금도 거론했는데 국내 법원과 CAS에서 패함으로써 모든 소송비용을 국민혈세로 물어야하는 대한체육회가 할 소리인지 기가 막히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박태환 논란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대한체육회의 무지한 ‘갑질’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문체부의 횡포라고 봐야할까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누가 어떻게 작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대한체육회는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체육회를 관리 감독하는 문체부에서 밀어붙이면 따를 수밖에 없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김정행 체육회 공동회장이 "개인적으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도 일종의 항변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만일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체육회가 문체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박태환의 리우 행 의지를 꺾으려 했다면 그들이 말하는 원칙의 실체는 음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 규명을 위해 앞으로 더 따져 물어야할 사안입니다.
사실 문체부의 대한체육회 간섭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체육회는 지난 2월 말 통합체육회 정관을 만들었는데, 각국 NOC의 독립성, 자주성을 강조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부 개입이 지나치다며 수정을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체육회 부회장, 사무총장, 선수촌장 등 임원 선임 등을 비롯해 여러 조항에서 문체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했는데 이를 정부의 개입 여지가 크다고 봤습니다. 결국 체육회는 지난 4월 논란을 빚었던 23개 조항을 손질해 체육회 자율성을 강화하는 선에서 매듭지었습니다.
한데 SBS가 지난 11일 보도한 ‘김종 차관 - 김정행 회장, 리우 부단장 놓고 감투싸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여전히 문체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풀이하면 리우올림픽 한국선수단 본부 임원인 여성 몫 부단장을 뽑는 과정에서 ‘자기 사람’을 챙기려다 갈등이 발생해 결국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선임하는 식으로 봉합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태환에게 도덕성과 국민 세금을 운운했던 체육회와 문체부에 스포츠의 기본정신과 공정성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통합 체육회 정상화는 물론 체육인 복지와 은퇴선수 지원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에 씁쓸함은 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