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우울한 체육계 현주소] ② 고영태로 본 은퇴스타의 슬픈 인생2막, 원인과 대책

AG 금메달리스트서 '국정농단' 최순실 최측근으로, 현장 "넒게 보고 미래 교육해야"

2016-11-04     민기홍 기자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고영태 씨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측근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금메달리스트인 고영태 씨는 호스트바 직원으로 일하다 최순실 씨의 눈에 띄어 가방사업을 했고 이후 마약, 사기, 자금 횡령 등의 전력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체육인들의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현역 시절 선배들로부터 “운동 참 잘 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고영태 씨의 몰락. 이같은 추락은 스포츠계에선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그만큼 은퇴 스포츠스타의 인생2막은 산 너머 산으로 그 여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강원도 춘천시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 김병찬 씨가 생활고로 고독사했다.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 외야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호성 씨는 내연녀와 그의 세 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리스트인 방성윤 씨는 지난 5월 폭력혐의를 받고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일탈과는 다르지만 1980년대 후반 기아자동차의 전성기에 한몫 했던 농구스타 출신 한기범 씨는 두 차례나 심장수술을 받고 사업에 실패해 힘겨운 나날을 보낸 바 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은퇴 후 고달픈 삶을 사는 스포츠인은 한둘이 아니다. 

2014년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서는 조사 대상 은퇴선수 가운데 40% 이상이 무직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일자리를 가진 은퇴선수 중에도 상당수가 본인이 몸담은 종목과 무관한 자영업 또는 사무직의 비정규직에서 종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2015년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0만명(선수경력 3년 이상, 20~40세 미만의 선수 기준)이 넘는 엘리트 운동선수가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 지도자와 갈등, 경기력 저하, 부상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현역을 마감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한체육회 은퇴선수 지원사업 담당자는 스포츠Q와 통화에서 “은퇴 선수들 대다수가 사회 활동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고 보면 된다”며 “운동의 시작과 끝조차 부모나 코치가 하라는 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셈”이라고 씁쓸한 실상을 전했다.

육상인 출신인 교사 A씨는 “운동선수일 때 성적만 강조하지 은퇴 후 삶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이 때문에 자기 중심이 약한 사람들은 좌절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금부터라도 많은 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문가 역시 "적지 않은 운동선수가 스스로 판단할 줄 몰라 대개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이러니 사기를 당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고 쉽게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유흥계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은퇴선수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는 현실에서는 선수 개인이 은퇴 이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자신의 기질이 어떤 직무와 맞는지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포츠 주체들의 생각 변화도 필수라는 지적이다.

최익성 저니맨육성사관학교 대표는 “운동선수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직업은 가질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체육인은 존중, 배려 등 사회가 원하는 정의로운 가치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두려워 말고 부딪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교사 B씨는 "박지성, 김연아, 추신수, 박태환, 박인비 같은 케이스는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혼재된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겠느냐”며 “이들을 무조건적인 롤모델로 삼아서는 안된다. 잘 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비 등 운동선수의 앞날을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선수 지원 담당자는 “올해만 60개 학교 이상을 방문, 교육을 진행했지만 아직 학교장이나 감독이 전체 강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지도자들이 현역 선수를 대상으로 미래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퇴선수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선수 개인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제2의 고영태, 제3의 고영태는 언제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암울한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