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스포츠개발원, '김종 지우기' 나섰다!
김종 차관 부임 후 명칭 변경, "스포츠과학 본연에 신경쓰자"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내 이름 돌리도~.”
한국스포츠개발원이 물밑에서 전현직 연구원을 중심으로 원래 명칭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김종 지우기’의 일환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크나큰 상처를 입은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최순실과 차은택 김종으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연결 고리와의 단절을 선언한 마당이어서 한국스포츠개발원의 이름 찾기가 조만간 현실화될지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은 과거 스포츠과학연구소, 한국체육과학연구원으로 불렸다. 그러나 34년간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체육지도자 양성에 기여했던 이 기관은 2014년 2월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돌연 간판을 바꿔달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작동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저간의 사정은 다음과 같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에서 근무했던 김종 교수는 2013년 10월 문체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현장을 중시하는 실무형 전문가였던 김종 전 차관은 박근혜 정부가 주창한 ‘창조경제’에 발맞춰 스포츠를 ‘일자리 창출의 첨병,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주장하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과학’은 ‘스포츠산업’의 기세에 눌려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2013년 4월까지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일했던 김병현 스포츠심리학 박사는 “무리하게 명칭을 바꿀 필요가 있었나 싶다. 산업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김종 전 차관이 편파적인 생각으로 몰아붙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개발이라고 바꾸는 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1989년부터 2005년까지 체육과학연구원에서 근무했던 이명천 단국대 석좌교수 역시 “학자 출신인 김종 전 차관의 생각을 존중한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스포츠개발원이 되면서 스포츠과학에 집중해야 할 연구원들이 주 업무에 신경 쓰지 못했다. 인원이 늘어난 것도 아니니 업무 부담이 늘게 됐다”고 전했다.
구 한국체육과학연구원, 현 한국스포츠개발원인 KISS(Korea Institute of Sport Science)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비,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80년 12월 대한체육회 산하에 설립됐다. 당시의 공식 명칭은 스포츠과학연구소였다. 이어 서울 올림픽 폐막 1년 뒤 다변화된 체육 분야 연구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재단법인 한국체육과학연구원으로 독립, 체육정책 및 생활체육 프로그램 개발 등으로 연구영역을 확대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1999년 국민체육진흥공단 부설로 자리를 옮겼지만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란 이름은 계속 유지했다.
그런데 2014년 초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본래 취지는 좋았다. 스포츠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지닌 미래 성장 동력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으니 연구, 개발은 유지하되 산업적 가치를 늘려보자는 목적이었다. KISS 내에 스포츠 산업실이 신설됐고 스포츠산업 진흥정책 전문가인 박영옥 스포츠산업실장이 내부 승진, 개발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과학’이란 단어가 빠지자 한국 엘리트 체육에 미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포츠개발원의 모든 초점이 스포츠산업에 쏠리면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스포츠과학의 기술과 역량이 약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이 2016 리우올림픽에서 8위에 그친 게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사실 한국은 리우올림픽 메달 합계순위에서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일본, 호주, 이탈리아, 캐나다에 이은 11위에 머물렀다. 메달 수 21개(금 9, 은 3, 동 9)는 1984년 LA 올림픽(19개)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 2000년 시드니(28개), 2004년 아테네(30개), 2008년 베이징(31개), 2012년 런던 올림픽(28개)에 비해 크게 줄었다. 특히 이웃나라 일본이 41개(금 12, 은 8, 동 21)로 크게 반등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김병현 박사는 “안 그래도 한국 엘리트스포츠가 쇠퇴기로 접어드는 징조가 나타나는 시점이긴 했다”며 “예전에는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스포츠과학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면 리우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개발원은 스포츠과학, 생활체육, 스포츠산업 어느 곳에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스포츠과학 전문가들은 “뛰어난 선수, 능력 있는 지도자가 스포츠과학과 만나면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스포츠과학의 비중은 5%. 이를 적은 비중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최정상급 선수들 간의 경쟁에서는 이 미묘한 차이가 메달 색깔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명천 교수는 “전문가들의 집중력이 분산되니 당연히 포커스가 흐려지지 않았겠느냐”며 “스포츠개발원 연구원들의 의견이 ‘스포츠과학 본연에 신경 쓰자’는 쪽으로 모이고 있다. 스포츠과학연구원이라는 이름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아 이와 관련한 포럼, 세미나도 준비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종 전 차관이 체육계에 휘두른 전횡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체육 인재육성재단 통폐합,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관여, 늘품체조 채택 등 불도저식으로 몰아붙인 정책에 스포츠 현장 곳곳에서 비판과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스포츠과학마저 김종 전 차관의 전횡과 농단에 위축된 것은 아닌지 깊이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