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2015] (4) 플라스틱 핑퐁 시대 즐기는 '파워풀 김동현'

중학교 3년 때부터 태극마크, '바뀐 공인구에 최적화'...만리장성 넘을 기대주 '봄날은 온다'

2015-02-03     민기홍 기자

[300자 Tip!] 지난해 탁구계는 혁명을 맞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인화성 물질인 셀룰로이드 탁구공이 화재 위험성으로 인해 항공기 반입에 자주 어려움을 겪자 문제점을 제기했다.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가 최우선 목표인 국제탁구연맹(ITTF)은 결국 플라스틱공으로 공인구를 변경했다. 2015년부터는 모든 국제 대회에서 이 공이 쓰인다. 이에 따라 ‘파워형’ 선수들이 큰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플라스틱공은 표면 돌기가 사라져 마찰력이 감소해 회전량도 줄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김동현(21·에쓰오일)이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힌다.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가 주무기인 그는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때의 아픔을 딛고 2015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탁구 하면 중국, 중국 하면 탁구다.

한국 남자 탁구대표팀은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탁구 단체 결승전에서 중국에 게임스코어 0-3(1-3 0-3 0-3)으로 완패했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중국은 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에서 6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갈수록 더 강해지는 모양새다.

중국은 세계올스타를 초청해 이벤트전을 치를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ITTF 세계랭킹 1~4위가 모두 중국 선수다. 더 무서운 것은 21세 이하(U-21), U-18, U-15까지 랭킹 선두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도 중국계 선수가 즐비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왕하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유승민은 그래서 더 돋보였다. 만리장성을 넘어서는 광경을 보고 싶지만 여간 쉽지가 않다. 주세혁이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분투하지만 결국에는 분루를 삼키는 것이 익숙한 시나리오다.

그렇다고 중국의 독주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오른손 셰이크핸드 김동현(21·에쓰오일)이 만리장성을 넘을 카드 중 하나다.

그는 탁구선수였던 아버지를 체육관을 따라다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라켓을 쥐었다. 연령별 대회를 석권했다. 포항 대흥중 3학년이던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이는 1997년의 유승민 이후 12년 만에 탄생한 중학생 국가대표였다.

엘리트 코스를 차곡차곡 밟아왔고 새해를 맞아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국가대표 상비군 최종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한 장우진(20·KDB대우증권)과 함께 한국 남자 탁구를 쌍끌이할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동현을 인천 서구 대한항공 체육관에서 만났다.

◆ ‘반전 하체’ 파워 탁구 선두주자 김동현 

“외모요? 그런 말 많이 듣긴 해요. 제가 이래 뵈도 힘이 셉니다.”

앳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파워 탁구’를 추구한다. 에쓰오일 양희석 코치는 “생긴 것 하고는 다르다. 파워 넘치는 포핸드가 일품”이라며 “경기장에 들어서면 완전히 돌변하는 선수다. 동현이는 파이팅과 근성이 넘치는 선수”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제 하체가 탄탄해요. 보통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시설이 변변치 않아서 웨이트트레이닝 잘 못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중3 때부터 태릉선수촌하고 실업팀 오가면서 자주 접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형들과 함께 훈련한 것이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공격을 선호해 짧은 랠리로 포인트를 따내는 스타일인 김동현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7월 ITTF는 116년간 사용됐던 셀룰로이드 공을 버리고 플라스틱 탁구공을 공식 대회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표면에 돌기가 없어져 회전수가 30% 줄어들었고 공의 직경이 39.7mm에서 40.2mm로 커져 공격형 선수가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동현은 “회전량을 많이 줘도 많이 먹히지를 않고 볼도 천천히 오더라”며 “형들 중 일부는 공이 달라져 적응이 힘들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연결형 선수가 아니라 그런지 크게 힘들지 않더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에게 마냥 좋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플라스틱공으로 많이 연습한 선수가 잘하고 나같은 스타일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똑같아질 것이다. 잘 할 사람들은 잘 하게 돼 있다"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 잊지 못할 아시안게임, 패배 경험은 약

“아시안게임은 정말 큰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었는데... 느낀 게 많습니다.”

지난해는 김동현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해다. 4월 종별선수권에서 정상은(삼성생명)을 꺾고 정상에 올랐고 기세를 이어 6월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 9승2패를 기록해 전체 1위로 당당히 태릉선수촌에 입성했다. 유남규 감독이 다크호스로 크게 기대를 걸었던 김동현이었다.

그러나 단식 16강에서 츄앙츠위엔(대만)에 2-4로 패했다. 김동현은 “관중이 꽉꽉 들어차고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경기라 그런지 긴장을 많이 했다”며 “90일간 언제 다가오나 하며 준비했는데 순식간에 끝났다. 너무 허무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단체전에서는 주세혁(삼성생명)-이정우(울산시탁구협회)-정상은(삼성생명)에 밀려 경기에 나서보지 못했다. 정상은과 짝을 이뤄 나선 복식에서도 홍콩 조에 역전패를 당했다. 김동현은 “나보다 높은 랭커에 모두 패했다”며 “지나보니 해볼만했다는 생각은 들더라”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그는 지난달 2015 국가대표 상비군 최종 선발전에서 장우진, 정영식(KDB대우증권)에 이어 3위에 올라 새해에도 국가대표로 활약하게 됐다. 그는 “선발전 성적은 그럭저럭 만족한다”며 “국제대회에 나가서 이기자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긍정의 왕, 이용대처럼 이름 떨치고파 

“음... 탁구한 것, 후회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슬럼프도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멀리 내다보기 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것만 보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제가 아직 어리잖아요. 한 10년은 더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긍정 에너지가 느껴졌다. 김동현은 “나는 내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칭찬해주시는 것 보면 그런가 보다”고 수줍게 웃었다. 양 코치 역시 “동현이는 자신감이 넘친다. 늘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라고 귀띔한다.

김동현은 스스로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잘 알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백핸드가 많이 부족해요. 서브도 단순해서 연습 열심히 해야 하고요. 또... 상대가 까다롭다 싶으면 심리적으로 밀리는 것 같아요. 장지커(중국)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던데. 대범함을 닮고 싶어요.”

그는 이제 11일부터 시작되는 카타르, 쿠웨이트 오픈에 나선다. 오픈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회라 욕심이 난단다. 현재 세계랭킹 90위권인 김동현은 “늘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경기에 임한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50위까지 랭킹을 끌어당기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다다라 그는 이용대를 콕 집어 언급하며 큰 포부를 밝혔다.

“세계선수권은 정말 큰 대회입니다. 탁구인을 비롯해 운동하시는 분들이라면 가장 인정하시죠. 그런데 국민들은 올림픽, 아시안게임같은 대회를 선호하시잖아요. 거기서 잘 해서 알려지고 싶습니다. 이용대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요.”

[취재 후기] 김동현은 소속팀에서 유남규 감독으로부터, 대표팀에서 유승민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두 지도자는 각각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레전드다. 김동현은 “이런 분들과 함께 한다는 건 행운”이라며 곧바로 대표팀 선배들도 언급했다. 그는 주세혁에겐 이기는 법을, 이정우에겐 선수로서의 마인드를 배운다고 전했다. 좋은 선배들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김동현의 ‘열린 자세’라면 언젠가 만리장성을 넘을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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