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레전드' 강정훈이 아마축구로 향한 이유
"아이들을 위해" 외치며 아마축구로 향한 강정훈 감독
[스포츠Q(큐) 임부근 명예기자] 쉽지 않은 길이 아닐 수 없다. 클럽 팀을 직접 만들었으니 하는 말이다. 현재는 클럽팀이 많지만, 2008년 당시엔 없다시피 했다. 강정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정훈FC'를 창단하며 최초의 엘리트 클럽 팀의 감독이 됐다. 그는 취미 반부터 시작해 U-12, U-15, U-18 등 연령별로 엘리트 선수들 육성하고 있다.
은퇴 이후 지도자 길을 걷고 있는 강정훈은 대전 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에서만 10년(1998~2007)을 뛴 레전드로 통한다. 명성을 등에 업고 더 좋은 팀으로 갈 수 있는 기회도 많았기에 강정훈 선택은 각별해 보였다.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어린 선수들이었다.
대전 서구 관저동에서 클럽을 운영 하고 있는 강정훈 감독은 요즘 걱정이 크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때문이다. 당초 예정된 고교 전국대회는 대부분 연기 및 취소됐다. 주말 리그는 진행되고 있지만, 대학과 프로 진출을 앞둔 졸업반 선수들에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이슈다. 진학 때문에 큰 문제다. 동계훈련 때 정말 열심히 했는데, 보여줄 기회가 없다. 운동 여건도 좋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아이들의 고민이 많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지금까지도 답을 못 찾겠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 때문에 10년 넘게 팀을 지도한 베테랑인 강정훈 감독 역시 해줄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위기 상황이지만, 강정훈 감독은 흔들리는 선수들을 엄격한 규율로 다스리기보단,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축구판 전체가 흔들릴 것이다. 우리도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다. 선수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시기를 놓쳐 많이 힘든 상황이다. 지금 주말 리그를 2경기 했는데, 우리가 동계훈련 때 준비한 것에 50%도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이 어리다 보니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붕괴됐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다. 슬럼프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그 일정이 있는데도 5일 동안 휴가를 줬다. 선수들에게 힘든 게 무엇인지 적어 제출하라고 했는데 가정 상황 등 이유가 다양했다. 결론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휴식을 주기로 결정했다. 단, 아이들에게 몸 관리는 철저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이런 부분을 통해 아이들과 생각 차를 좁혀가고 있다."
강정훈 감독이 선수들에게 세세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프로 이전 선수 시절, 흔들렸을 때 따뜻한 격려로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강정훈 감독은 "나는 그런 경험을 했지만, 내 아이들은 그렇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정훈 감독은 대전에서만 259경기를 뛰었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등 자리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대전 레전드'라는 타이틀은 지도자로서 더 수월한 길을 갈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클럽팀을 창단하는 등 맨땅에 헤딩 한 이유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유소년을 올바른 방식으로 지도하겠다'는 가치관 때문이다.
"은퇴하고 난 뒤 부르는 팀이 많았다. 대전에서 나를 지도해주셨던 최윤겸 감독님(2003~2007)은 직접 찾아오셨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을 보고 포기하셨다. 내가 만약 프로팀 코치로 갔다면, 내가 꿈꾼 것이 무너지는 셈이었다. 후회는 전혀 없다. 만약 그때부터 프로팀 코치로 갔다면 감독도 해봤겠지만, 크게 욕심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아이들이 축구를 즐기고,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어떻게 하면 축구를 더 재밌게 만들어줄지 고민하고 있다.“
선수들과 감독이 마음 놓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는 강정훈 감독이 가장 힘을 쏟고 있는 부분이다. 어린 선수들과 나이가 많은 감독의 특성상 쉽지 않지만, 메신저를 통해 깜짝 퀴즈를 내는 등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적은 돈이지만 승리 수당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선수 시절 최윤겸 감독님에게 이런 부분을 크게 배웠다. 경기 중 교체된 적이 있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면담 요청하셔서 아픈 곳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내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교체 했다고 하셨다. 당시 허리 통증 때문에 고생 중이었다. 면담 도중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를 해오면서 처음으로 지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소통의 중요성을 느꼈다."
강정훈 감독은 선수들과 적극적인 소통 등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큰 인연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클럽 운영 초장기부터 지금까지 큰 지원을 해주고 있는 김봉국 회장이다. 강정훈 감독은 "아버지이자 형, 친구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며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봉국 회장님은 지역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사업가다. 내가 클럽을 만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큰 도움을 주셨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내겐 은인이다. 김봉국 회장님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에게 후원 이상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아버지 같은 모습을 심어주셨다. 이 클럽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렇게 감사의 표현을 해도 부족하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정을 주신다.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항상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엘리트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둡다. 처음엔 내가 친구처럼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고 표정이 밝아진다. 부모님들도 놀라신다. 승리 수당은 프로 의식을 위한 것이었다. 이기거나 골, 어시스트를 기록하면 만 원이고, 경기 MVP는 5만 원이다. 처음엔 내 사비를 털었지만, 지금은 김봉국 회장님이 후원을 해주시고 있다. 지난해 금석배에서 승리 수당을 높게 쳐줬는데, 예선 3전 전승을 한 뒤 8강까지 갔다(웃음)."
처음으로 클럽팀을 창단했을 때, 주변의 견제가 많았다. 말도 안 되는 행정 처리로 실격패를 겪기도 했고, 배신을 당한 적도 많았다. 강정훈FC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시절 고교 팀을 지휘하고 있던 감독이 주축 선수들을 모두 빼내 다른 팀으로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한 코치는 핵심 선수를 빼내기 위해 청소년 대표팀 소집 명단을 조작한 뒤 해당 선수 부모님에게 보여줘 팀을 옮기도록 부추기기까지 했다. 화도 났지만, 강정훈 감독은 "아이들에겐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를 먼저 외쳤다.
"취미 반에서 축구 하던 선수 기량이 괜찮아 전국대회에 데리고 갔다. 대한축구협회에 문의해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팀에서 트집을 잡았고, 결국 부정 선수 사용으로 실격패를 당했다. 핵심 선수를 빼가려고 한 코치는 결국 사실관계를 바로 잡았다. 부모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난다. 그런데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이다. 흰머리도 잘 안 난다. 다만, 어른들 장난으로 인해 선수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