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후에고, 경계를 허무는 e스포츠 라운지 [SQ인터뷰③]

[마포=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후에고는 장과 장 사이 벽을 무너뜨리는 조직이다. 앞서 인터뷰 기사 ①편에선 온·오프라인 축구산업 경계를 허물고자 시도 중인 후에고의 근황을 전했다. 

후에고가 차린 공간 e스포츠 라운지 '엘 후에고(EL JUEGO)'는 분야와 분야를 아우르는 공간으로서 가치가 있다. e스포츠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해 나갈 테지만 그동안 그랬듯 힙합 등 다양한 문화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계속될 예정이다.

후에고 일원들은 "대체 무얼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단다. 애초에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했다. 팀 구성도, 여태껏 벌여온 사업들도 필드와 필드의 이음 내지 확장의 연속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점유하는 공간 역시 그런 특성이 강할 수밖에. 그들은 지난 2년 동안 하나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얼마나 다양한지 몸소 보여왔다.

지난 2월 후에고는 존재를 알렸던 첫 보금자리 합정을 떠나 좀 더 접근성이 좋은 홍대입구역 앞에 새 공간을 꾸렸다. 지난 2년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축구와 e스포츠 두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후에고가 엘 후에고를 이전하면서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궁금하다. 조집(37) 후에고 대표 입을 통해 들어보자.

- 기존에도 국내에 e스포츠 라운지 개념이 있었나?

"거의 우리가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게임을 하러 온다기보다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으로서 개념이 강하다. 오프라인에서 파생되는 인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우리가 개최한 커뮤니티 행사에 모로코, 태국 사람들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깊게 관여하지 않았던 e스포츠도 이제 비즈니스화 할 수 있게 됐다. 더 상업적으로 튜닝하기보다 이 문화를 진심으로 대하다보면 수익이 파생될 것이다."

- 공간을 이전한 배경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명확하게 세울 수 있었다. 코로나가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다. 법인화를 진행하고 공간도 바꿨다. 우리가 주력할 축구와 e스포츠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꾸몄다. 모드 전환을 위한 공간 전환이다. 마침 그 공간을 비워줘야 하기도 했다.(웃음)"

"일하는 공간이 바뀌면 일을 대하는 태도도 바뀐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하이브'로 사명을 바꾸면서 리브랜딩을 진행했는데, 신사옥에 크게 공을 들였다고 하더라.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일하는 흐름에 맞춰 공간을 구성하고, 회사 정체성까지 담아내는 것이다. 하이브만큼 신경쓰진 못했지만 우리도 앞으로 그런 방식으로 꾸며나갈 예정이다."

- 팬들 사이에선 '축구 펍'으로도 알려졌었다. 이제 식음료 가게 기능은 끝인가.

"공간 개념이 보다 명확해져 이제 식당 운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엘 후에고를 처음 오픈한 뒤 적극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벌여왔다. 역설적으로 코로나 덕에 사업 방향성이 확실해졌다. 쳐낼 건 쳐내고, 더 확실하고 밀도있게 나아가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e스포츠와 축구를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에 집중한다."

- 엘 후에고를 통해 얻는 수익은 충분한가.

"e스포츠 사업을 통해 공간 부대비용을 충당할 정도는 번다. e스포츠가 기존 스포츠산업에 편입되는 과정이다. 가장 전망이 좋다고도 볼 수 있다. 축구는 가장 글로벌한 종목이고, e스포츠는 한창 미친듯이 성장 중인 분야다."

- 엘 후에고를 차리고,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격투게임을 먼저 다뤘다.

"'엘 후에고'의 '엘(el)'이 영어로 치면 'the'와 비슷한데, 우리는 e스포츠 라운지의 줄임말 개념도 부여했다. 처음에는 'Pro Evolution Soccer(PES, 위닝일레븐)'와 'FIFA(피파)' 등 축구게임을 주로 다루고, 축구 콘텐츠도 만들어가는 라운지 개념으로 꾸미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축구게임만 해보니 공간도 놀고, 더 채워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디렉터인 박수용 동생이 격투게임 마니아라 격투게임 커뮤니티를 알게 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대관해 진행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철권(Tekken)' 대회 'EVO(Evolution Championship Series)'를 알게 됐다. ESPN이 중계하고, 캡콤(Capcom)이 트위치와 계약해 글로벌 투어로 확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 성장세에 우리도 편승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리그오브레전드(LoL)' 등 메이저 게임보다는 진입장벽도 낮고, 우리나라에 오락실 기반 커뮤니티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우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어디서든 알아보고 찾아올 거라 믿고 버텼다. 실제로 커뮤니티 반응이 좋았다. 2019년 2월 엘 후에고를 오픈했는데, 6개월 만에 격투게임 커뮤니티에서 소위 '성지'가 됐다. 3월 31일 첫 행사를 개최했고, 차근차근 관계자들 사이에서 발을 넓혔다. 아프리카TV에서 먼저 제안해 철권 관련 행사도 열게 됐다. 애초에 방송이 가능한 구조로 라운지를 차린 게 도움이 됐다.

지금 벌이고 있는 e스포츠 기반 콘텐츠를 겹겹이 쌓아나가서 e스포츠 컴퍼니 개념으로 키울 것이다. 주력종목은 격투게임과 스포츠게임이 되겠지만 프로젝트 성향에 따라 PC게임도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

- 원래 e스포츠 전문가가 아니었다고. 시설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겠다.

"우리는 '일단 해보자. 일단 하면 뜻있는 좋은 사람들이 와서 도와줄 것'이라는 마인드로 일한다. 우리의 방향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확신이 있다. 모르는 분야에서 아는 척하기보다 함께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 나선다. 그 분들이 e스포츠 방송 인프라도 닦아주셨다.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 태국e스포츠협회(TESF)의 한국 전지훈련을 돕고, 모로코e스포츠협회(MESA)와 파트너십을 맺는 등 해외 기관과 교류도 늘려가고 있다.

"엘 후에고는 해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안(SEA)게임 종목에 e스포츠도 있다. 태국 e스포츠 대표팀에서 '스타크래프트 2', '하스 스톤' 등을 훈련할 장소로 한국을 택했고, 엘 후에고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우리는 국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들을 붙여줬다."

e스포츠 라운지 엘 후에고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가 이어져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 한 매체에선 엘 후에고를 '오락실의 트렌드화'라고 정의내렸더라.

"엘 후에고는 오락실 특유의 커뮤니티 유산을 물려받았다. 지난해 '스트리트 파이터' 성지였던 ‘정인오락실’이 폐업하면서 오락기를 이어받기도 했다. 결국 이곳도 오락실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면서 꾸며진 공간이다."

- 앞서 엘 후에고는 문화공간으로도 쓰였다. 후에고는 2020시즌 K리그 파이널라운드 홍보 음원 및 뮤직비디오 기획을 보조하며 힙합을 끌어들였다. 또 넉살 등 축구를 사랑하는 래퍼들을 초청해 여러 행사를 벌였다. 새 공간에서도 그런 작업을 이어갈 것인가?

"당연하다. 우리 모토가 장과 장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후에고가 추구하는 가치를 '축구의 깊이, 문화의 넓이, 그 색다른 이음'으로 정의하지 않았나. 축구든 e스포츠든 결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나아가 스포츠든 힙합이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문화라는 측면에서 결이 같다.

힙합은 현재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보편적인 문화적 코드 중 하나다. 비단 농구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축구를 즐기는 사람 중 힙합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자연스레 교집합이 생긴다. 넉살 등 뮤지션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후에고와 관련이 깊은 '위닝'과 한준희 해설위원을 좋아하니까 후에고로 모여든 것이다."

앞으로 힙합을 매개로 후에고의 대외적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도 있다. 또 앞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협업했 듯 기관과 함께할 때 힙합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처음에 계간지 '후에고 축구지'를 찍을 때는 HP 지원을 끌어낸 바 있다. 그때 HP는 '디지털프린팅'이라는 분야의 새 기술을 구현시킬 시범 모델이 필요했는데, 우리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HP 기술을 활용해 담당자들 각각의 이름이 새겨진 초판을 증정하며 화답했다. 당시 HP 내에선 파격적인 투자였다고 들었다."

- 축구에서 중요한 개념인 '포지션 플레이(Juego de posicion)'에서 후에고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후에고는 어디쯤 왔나. 빌드업이 얼마나 진행된 건가.

"지금까진 상대의 거센 전방압박이 들어오는 와중에 중앙수비수와 골키퍼가 공을 주고받으며 힘겹게 소유권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는 압박을 한꺼풀 벗기고, 미드필더에 공을 배급하는 시기다. 다음은 좌우로 크게 벌린 채 높이 전진한 풀백들에 공을 넘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 뿌려줄 곳이 많다. 왼쪽에 축구, 오른쪽에 e스포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