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웠다' 안세영, 한국 배드민턴 기세 좋다 [도쿄올림픽]
[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배드민턴 기세가 상당하다. 일본이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비해 오래 공들인 종목이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선수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한 칸씩 위로 전진하고 있다.
'셔틀콕 천재소녀'로 통한 안세영(19·삼성생명)이 여자단식 8강에서 분패했지만 여자복식에선 이미 메달을 확보했다. 남자 단식에서도 기대 이상 성적이 기대된다.
세계랭킹 8위 안세영은 30일 일본 도쿄 무사시노노모리 종합 스포츠플라자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8강전에서 천위페이(중국·2위)에 게임스코어 0-2(18-21 19-21)로 석패했다.
안세영은 2게임 막판 발목을 접질르고 무릎에 찰과상을 입어 응급치료를 받은 뒤에도 연달아 점수를 따내며 천위페이를 끝까지 압박했지만 경기를 뒤집진 못했다. 1, 2게임 모두 중반에는 큰 점수 차로 앞서기도 했다. 모두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안세영은 2019년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주관 대회에서 5차례 우승하며 신인상을 거머쥔 뒤 올초 열린 왕중왕전격 월드투어 파이널까지 제패하며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자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해왔다. 이날 부상투혼까지 펼쳤으니 아쉬움은 더 짙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채 훌쩍이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후회 없이 준비했다. 선생님(장영수 대표팀 코치)은 내가 새벽이나 야간에 운동 나가자고 할 때가 많아도 늘 성심껏 함께 해주셨는데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너무 아쉽다"면서 "이보다 더 크게 다쳤어도 훈련한 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뛰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세영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1회전 만에 탈락한 뒤 '하루도 안 쉬고 준비하겠다'고 다짐했고, 3년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취소 이야기도 나왔지만, 올림픽이 열릴 것으로 믿고 준비했다. 많은 분이 공격이 약하다고 해 더 열심히 준비했다. 쉬는 날 없이 계속 연습했다. 경기에선 긴장도 많이 해서 그런 게 안 나온 게 아쉽다. 이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하나 보다"라며 웃었다.
그는 또 "정말 많이 응원해주셔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배드민턴 하면 복식을 많이 떠올리신다. 단식을 많이 알리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단식이 약하다는 말이 또 나오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안세영을 제압한 천위페이는 이번 대회 1번시드를 받은 강호. 안세영은 이날까지 천위페이에 5전 전패를 당했다. 천적을 극복했다면 메달권 진입이 가능했기에 더 아쉽다. 한편으론 다음 대회를 기대하게 하기도 한다. 그는 "1∼2점에서 승부가 갈렸다. 인내심과 집중력이 천위페이보다 부족해서 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안세영은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술 한 잔만 하고 싶다. 한 번도 안 먹어봤다. 기분 좋게 마시면 좋았을 텐데"라며 "잠시 훈련에서 벗어나 스무 살 자유를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막내는 탈락했지만 한국 배드민턴 여정은 계속된다. 복식에 나선 '언니'들은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여자복식 세계랭킹 4위 이소희-신승찬(이상 27·인천국제공항) 조, 5위 김소영(29·인천국제공항)-공희용(25·전북은행) 조가 나란히 준결승 대진표에 안착했다. 이로써 한국은 배드민턴 여자복식 메달을 확보했다. 대진상 이소희-신승찬과 김소영-공희용은 4강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소희-신승찬이 8강에서 셀레나 픽-셰릴 세이넨(네덜란드·17위)을 손쉽게 2-0으로 제압했다면 '킹콩 콤비' 김소영-공희용은 마쓰모토 마유-나가하라 와카나(일본·2위)와 박빙의 승부를 벌인 끝에 2-1(21-14 14-21 28-26)로 이겼다.
준결승은 31일 오전 열린다. 이소희-신승찬 조는 그레이시아 폴리-아프리야니 라하유(인도네시아·6위) 조, 김소영-공희용은 천칭천-자이판(중국·3위) 조와 맞붙는다. 천칭천-자이판은 후쿠시마 유키-히로타 사야카(일본·1위)를 꺾고 4강에 올라왔 역시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이소희는 "4강에 올라간 자체로 너무 좋고 행복하지만 이제 다음 게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승찬 역시 "김소영-공희용 조와 우리는 서로 너무 열심히 준비한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최소 동메달을 확보한 건 좋지만 아직은 적이라 생각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 '배드민턴 전설' 박주봉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에이스들의 잇따른 탈락으로 위기를 맞았다. 지난 2016년 리우 대회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은 안방에서 더 많은 메달을 목에 걸고 셔틀콕 강국으로 거듭나겠단 계획이었지만 한국이 훼방을 놨다.
28일에는 남자단식 세계랭킹 1위 모모타 겐토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의 허광희(26·삼성생명)에 져 탈락하기도 했다. 허광희는 행운이 아닌 노력으로 얻은 확실한 실력으로 모모타를 제압하고 8강에 직행했다. 강력한 스매시와 대각 공격, 철벽같은 수비로 모모타를 밀어붙이며 실수를 유도했다.
허광희는 "모모타는 세계 1위고 나는 랭킹이 훨씬 낮다. 도전한다는 입장으로 한 세트는 따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잘 적용됐다. 나는 잃을 게 없었다"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는데 잘됐다"며 기뻐했다.
세계랭킹 38위 허광희는 올림픽 출전 안정권이 아니었다. 지난달 포인트 경쟁이 완료된 뒤에야 대회 출전이 결정됐다. 그동안 본선 진출을 목표로 했다면 이제는 목표를 메달 획득으로 상향 조정하고 뛴다. 허광희는 31일 오전 9시께 8강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