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미생, 위기의 롯데를 일깨웠다 [프로야구]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팀 프랜차이즈 스타 이대호(40)의 은퇴시즌. 롯데 자이언츠는 5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 나아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목표로 내다봤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시즌 한 때 2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롯데는 선수들의 줄 이탈 속에 8위로 추락했다. 가을야구를 꿈꾸지만 5위 KIA(기아) 타이거즈와 승차는 6경기까지 벌어져 있다. 남은 건 40여 경기.
선수들의 줄 이탈로 힘겨운 롯데에 헝그리 정신을 일깨운 선수가 등장했다. 누구보다 절박했기에 더 집중했고 작은 희망 속에도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갈길 바쁜 롯데는 키움과 만나기 전까지 최근 10경기 3승 6패 1무로 저조한 성적을 냈다. 집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에 몸살을 앓았다. 롯데는 서준원과 정훈, 정보근에 이어 전준우, 김원중, 조무근, 배성근, 지시완, 이학주 고승민까지 줄줄이 1군에서 말소됐다. 심지어 11일 핵심 불펜 최준용까지 팔꿈치와 어깨에 통증을 호소하며 쉬어가게 됐다.
누구보다 승리가 간절하지만 이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무너지라는 법은 없었다. 간절함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벌어진 키움 히어로즈와 2022 신한은행 SOL(쏠) KBO리그(프로야구) 원정경기. 키움 선발 에릭 요키시에 틀어막혀 침묵하던 롯데가 8회초 균열을 일으켰다.
0-0으로 팽팽히 맞선 8회초 두 번째 투수 하영민을 상대로 집중력을 발휘하며 만든 무사 1,2루에서 상대 실책이 겹치며 1사 2,3루가 됐다. 황성빈(25)의 희생플라이로 소중한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천금 같은 추가점이 나왔다. 황성빈의 중견수 뜬공 때 3루로 파고든 신용수(26)는 키움 수비진이 방심한 사이를 틈타 홈으로 쇄도했다. 심지어 중계카메라까지 신용수의 주루 과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과감한 시도였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 순간 고척스카이돔에서 신용수보다 높은 집중력을 보인 이는 없었다.
신용수가 3루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포구보다 빨리 스타트를 끊었다고 판단한 롯데는 이를 어필하기 위해 규정에 따라 2루로 송구를 했는데 이 느슨해진 틈을 타 신용수가 홈을 훔친 것이다. 심판진은 태그업 과정은 물론이고 홈스틸 또한 문제가 없다고 못박았다.
롯데는 신용수의 센스로 2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 신용수는 10일 키움전에서도 일을 냈다. 이날도 롯데 타선은 안우진의 호투에 막혀 7회까지 침묵했으나 0-1로 뒤진 8회초 대타로 나선 신용수가 좌측 담장을 넘기는 결승 투런포로 팀에 값진 승리를 안겼다.
2019년 2차 10라운드 98순위로 가까스로 프로 무대에 발을 들인 신용수는 프로 3년차이던 지난해 타율 0.261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올 시즌엔 영 기를 펴지 못했고 주로 퓨처스리그(2군)에 머물다 지난 7일 다시 콜업됐다. 10일 롯데전 타석에 들어서기까지 시즌은 타율 0.083(24타수 2안타)에 불과했으나 놀라운 집중력으로 홈런포를 만들어냈고 이날은 발로 팀에 2연승을 안겼다.
2연승에도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40여 경기 안에 6경기 차를 뒤집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롯데 선수단도, 팬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희망적인 부분도 많다. 코로나19로 이탈한 선수들이 하나 둘 복귀 예정이고 새로 팀에 합류한 댄 스트레일리도 10일 팀에 승리를 안겼다. 대체 외국인 타자 잭 렉스도 타율 0.300로 팀에 잘 녹아들고 있다.
무엇보다 신용수와 황성빈, 강태율(26) 등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힘을 내며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자신의 입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이들의 절박함은 롯데에 승리 DNA를 일깨우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살아 있다는 교훈을 안겨줬다. 신용수의 한마디는 롯데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
“절대 포기 안 할거고 시즌 끝날 때까지 계속 갈 거니까 팬들도 절대 포기 안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