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침체기? 관객은 '이야기'가 고프다
[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극장가 침체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영화인과 극장 관계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내놓았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 자리 띄어앉기, 운영 시간 제한 등의 거리두기 정책과 전염병 사태에 대한 불안감으로 극장 방문이 크게 감소했다. 2017년~2019년 상반기 평균 8330만명이 찾은 극장은 2020년 3241만명으로 대폭 축소됐고, 2021년에는 2002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이후 팬데믹 완화 분위기 속에 2022년 상반기 관객이 2019년의 절반 수준인 4494만명으로 회복됐다. 올 상반기는 천만 관객을 달성한 '범죄도시3'과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을 이끌며 5839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2022년 대비 30% 가량 증가, 팬데믹 이전 수치의 70%까지 회복한 결과다.
하지만 엔데믹으로 활기를 되찾은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극장가가 완연한 회복을 맞이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전과 같은 수치로 점차 회복하고 있기는 하나 영화 별 관객 수는 낮은 수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 줄어들면서 '비공식작전', '더 문', '보호자' 등은 일일 관객 1000명을 넘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동안 극장과 한국영화 침체기 주요 원인으로 티켓값 증가가 꼽혔다. 일반관 기준 1만원이었던 티켓 가격이 팬데믹을 거치며 2023년 1만4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증가해 관객 부담이 늘었기 때문. 티켓 가격이 증가한 만큼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에 대한 선택 기준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이에 티켓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23년 '범죄도시3', '아바타: 물의 길'이 1000만 관객을 넘기고 '엘리멘탈'이 700만 관객, '스즈메의 문단속', '밀수'가 500만 관객,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70만 관객을 넘기며 'N차 관람 문화'가 두드러졌다.
이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는 가격과 상관없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는 관객 성향이 나타났다. 조진호 CJ CGV 국내 사업 본부장은 30일 진행된 '영화 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가장 많이 관람한 관객의 예매 횟수가 116회였다. 사업자가 아닌 순수 일반 관객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일반관 가격 기준으로 계산하면 162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지난해와 올해 초를 뒤덮었던 "침체된 극장가를 살리기 위해 도와달라"는 감독과 배우들의 호소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관객들의 티켓 구매력을 확인한 것. '비공식작전', '1947 보스톤'에 출연하고 '로비' 연출을 준비 중인 배우 하정우는 최근 스포츠Q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안에서 위축된 게 아닌가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탑건: 매버릭', '공조2: 인터내셔날' 등이 유의미한 숫자를 냈다. '미니언즈'도 코로나 이전에 개봉한 1편과 이후에 개봉한 2편 성적 차이가 크지 않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도 시리즈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며 "관객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병일 CJ CGV 데이터 전략 팀장은 한국영화 부진이 이어지는 현 상황에 대해 "한국영화의 부진이라는 시각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OTT 채널이 생기고 관객들이 깐깐하게 따지는 경향이 생긴 것은 사실"이라며 "코로나 당시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들이 최근 개봉하며 상대적으로 선택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좋은 한국영화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전과 같은 결과를 맺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객은 2023년에 맞는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최근 여성 투톱 영화의 새로운 시각을 써낸 '밀수'와 재난 장르물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흥행이 분석을 뒷받침했다.
'거미집'으로 극장을 다시 찾은 김지운 감독은 "팬데믹 이후 거미집을 만들며 한국영화 상황에 대한 근심과 걱정, 성찰을 했다. 팬데믹이 모두에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영화의 근본은 새로움에서 오는 재미"라고 강조했다.
김지운 감독은 "식상한 소재, 어디서 본 것 같은 이야기에 관객도 지쳤을 것"이라며 "새로운 재미, 색다른 맛, 특별한 파티 같은 영화를 만들어 다시 한 번 호황이었던 시기, 한국영화들이 각기 다른 생김새로 관객들 끌어들였던 시기를 되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팬데믹 시기 제작돼 개봉일을 기다리는 영화는 100여 편. 오는 추석 연휴 개봉하는 영화 '1947 보스톤' 역시 4년의 기다림 끝에 어렵사리 개봉을 결정했다. 지난해와 올해 초 촬영된 '거미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30일', '가문의 영광: 리턴즈'도 동시기 개봉을 확정했다. 뜨거운 경쟁이 이어졌던 여름 시장에 이어 대작과 다양성 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 추석 연휴는 어떠한 새로운 이야기가 관객의 선택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