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 유감, 스포츠맨십조차 망각 [아시안게임]
[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테니스는 대표적인 신사 스포츠다. 격식과 매너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야구나 축구와 다르게 선수들이 승부를 벌일 때 관중들은 대화조차 해선 안 된다.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 공식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규칙 안내서’에 실제로 명시돼 있다.
선수들은 당연히 스포츠맨십을 지켜야 한다. 이 안내서는 이런 대목이 있다. “선수들은 라켓이나 경기장 내 다른 장비들을 폭력적으로 발로 차거나 던져서는 안 된다. 이 조항을 위반한 경우 각 선수는 2만달러의 벌금을 문다. 선수는 페널티에 따라 벌점을 받는다.”
슈퍼스타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도 이 규칙을 위반한 적이 있다. 올해 7월 윔블던 대회 남자 단식 결승 도중 서브게임을 내주고 화를 참지 못해 네트 기둥에 라켓을 내리쳤다. 라켓은 산산조각이 났다. 조코비치에게는 8000달러(약 1010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한국 테니스 간판’ 권순우(25·당진시청·112위)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행동이 논란이 됐다. 25일(한국시간)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카시디트 삼레즈(태국·636위)에 1-2(3-6 7-5 4-6)로 져 탈락했다. 경기가 지고 난 뒤 '비매너'가 문제가 됐다.
권순우는 경기를 끝나자 패배에 화가 났는지 라켓을 코트에 6번이나 내리쳤다. 삼레즈가 권순우에게 다가가 악수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권순우는 짐 정리만 했다. 머쓱해진 삼레즈는 관중석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권순우의 이같은 행위는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웨이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을 사랑하고 사진작가가 눈을 사랑하고 군인이 총을 사랑하는 것처럼 선수는 라켓을 사랑해야 한다. 이런 사람(권순우)이 지는 건 당연하다. 테니스를 무시하는 이런 사람은 평생 자격정지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네티즌이 적은 글을 인용했다.
권순우는 경기도 매너도 모두 졌다.
사실 권순우는 최근 연달아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올해 2월 어깨 부상을 당해 치료와 재활에 6개월 동안 집중한 뒤 지난달 메이저대회 US오픈에서 복귀전을 치렀지만 1회전에서 탈락했다.
이번 달 중순에 열린 2023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에서도 첫판에서 탈락했다. 연달아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500위 이상 차이 나는 무명의 선수에게 져서 더 화 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권순우가 프로 선수와 국가대표의 무게감을 생각했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권순우의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행동에 그의 연인 원더걸스 출신 유빈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
체육계 선배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권순우의 문제 행동은 상당히 유감이며 다시는 대한민국 선수단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부탁한다"라고 말할 정도다.
권순우는 경기를 마치고 다음날 뒤늦게 삼레즈와 태국 코치진을 찾아 사과했다. 대한체육회를 통해선 "국가대표팀 경기를 응원하는 모든 국민 여러분과 경기장에 계셨던 관중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공개 자필 사과문을 남겼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최윤 단장의 명의로 “권순우의 비신사적인 행동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선 대회 종료 후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권순우는 27일 홍성찬(세종시청)과 한 조를 이뤄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 도전을 이어간다. 권순우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