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 투수의 특급 변신, 죽을 만큼 던진 NC 김재열 [SQ인터뷰]
[고척=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어떤 선수에게 시련은 프로 입단 후 찾아온다.
김재열(28·NC 다이노스)이 딱 그랬다. ‘야구 명문’ 부산고를 졸업하고 201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7라운드(전체 71순위)로 고향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됐지만 그때까지 몰랐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1군에 등판하지 못할 거라는 걸.
계약금 3000만원에 바늘구멍을 뚫고 프로가 됐지만 첫 등판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입단하기 전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재활에 몰두했다. 재활이 끝나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손아섭(NC)이 개명한 작명소를 찾았다.
20년을 쓰던 김태석이라는 이름 대신 김재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긋지긋했던 부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한 개명이었다.
프로 첫 등판은 입단 3년 차이던 2016년 퓨처스리그(2군)에서 이뤄졌다. 2년 동안 35경기에서 67⅔이닝을 던져 거둔 성적은 2승 6패 1홀드 평균자책점 7.90. 돋보이는 결과물은 아니었다. 2017년 11월 방출 명단에 올랐다.
“열심히 했다는 평가는 받았지만, 진짜 죽을 만큼 몰두해서 노력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없었어요. 죽을 만큼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고척스카이돔에서 스포츠Q를 만난 김재열은 롯데에서 방출됐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생각이 닫혀 있었어요. 프로 선수로 어떤 메커니즘(기술 원리)을 가지고 공을 던져야 하는지 아예 몰랐어요. 제가 방출되고 연구를 했죠. 전화위복이 된 거예요.”
김재열의 ‘진짜 야구’는 방출 후 다시 시작됐다. 2018년부터 부산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다. 2교대 근무를 하고 남는 시간 PT(개인훈련)센터에서 몸을 만들고 공을 던졌다. 프로의 자존심도 버리고 사회인 야구팀에도 들어가 공을 던졌다.
그는 “주말에도 놀지 않았어요. 그냥 운동, 운동… 새벽까지 공 던지고 또 일하고 그랬어요. 제가 피곤한 날도 있고 몸이 안 좋은 날도 있잖아요. 그래도 센터에 나가는 거에 의미를 뒀어요. 그렇게 노력하니 운이 따라주더라고요.”
김재열이 꾸준히 훈련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KBO리그 구단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본 KIA(기아) 타이거즈가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고 김재열은 2020년 5월, 2년 만에 프로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2군에서 쭉 던진 김재열이 인고의 시간 끝에 1군 마운드에 오른 건 그해 시즌 막바지였던 9월 6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이다. 8회 2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긴장했는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⅓이닝 3실점에 그치고 말았다. 꿈에 그리던 등판이었지만 김재열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KIA에서 4시즌 94경기에 뛴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로 이적했다. 27일 기준 42경기에서 1승 1패 10홀드 평균자책점 1.66으로 정상급 불펜 투수로 자리 잡았다. 43⅓이닝을 던져 피안타율은 0.195에 불과한 특급이다. “늦은 만큼 선수 생활을 오래하고 싶어요. 이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 아니까요.”
김재열은 강인권 감독의 추천을 받아 생애 첫 올스타전도 나간다. "'저기(올스타전)에 서고 싶다’는 생각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출전 선수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죠.”
배우 손석구를 닮은 그는 ‘창원 손석구’로 불린다. “팬들이 좋은 의미로 해 준 거라 기분이 좋죠. 아내요? 제가 더 잘생겼다고 하던데요.”
◆김재열 모자의 이니셜 P의 의미는
김재열의 모자에는 이니셜 P가 적혀 있다. 힘든 시절 그를 도와준 선배의 이름 성에서 따왔다. 이니셜의 주인공은 박휘성(32) 부산공고 투수 코치.
2012년 롯데에 먼저 입단한 김재열의 프로 2년 선배다. 2018년 롯데에서 방출된 그는 김재열과 훈련을 같이 하며 프로 재진입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새벽에 야채 배달을 하면서 김재열에게 금전적인 지원은 물론 심리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재열은 박휘성 코치를 “은사 같은 형”이라고 했다.
박휘성 코치는 프로에 재지명되진 못했지만 2020년부터 물금고 코치를 거쳐 올해 5월부터 부산공고에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휘성 코치는 스포츠Q를 통해 “(재열이가) 형이랑 같이하고 싶다는 의미로 이니셜을 적었다고 하더라”라며 “이니셜이 적힌 걸 보고 많이 울컥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