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롤라’와 ‘SNL’ 차이, 대중 앞에 자만하느냐 [기자의 눈]

2024-10-28     나혜인 기자

[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패러디는 작품이나 인물을 모방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똑같이' 따라 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대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행위자의 특성을 더해 완성해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갖는 풍자보다는 가볍지만 대상이 지니는 의미를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정 자체가 지니는 무게가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뉴진스 하니, 소설가 한강, 드라마 '정년이' 패러디 사태는 공감하는 이보다 질타를 던지는 이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미성년자 외국인 여성인 하니, '정년이' 속 16세 소녀 윤정년 등을 대상화한 코너는 사회적 약자 희화화 문제로 번졌다. '정년이'를 '젖년이'로 표현하고 "보기만 해도 임신할 것 같다"는 대사를 던진 코너는 미성년자 성희롱과 콘텐츠의 외설 문제가 남았다.

[사진=쿠팡플레이

'SNL 코리아'가 풍자와 패러디로서 완성도를 갖지 못하는 근본적인 맹점은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표면적인 외관과 행위만 차용한 것에 있다. 국회가 국정감사에 하니를 부른 맥락과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배경, '정년이'와 여성국극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모두 제외됐다.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에는 K팝 산업 확장에 따른 아이돌 노동자 인정 논의와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 내 노동자 보호 문제 등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분석이 부재했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는 5·18, 4·3 사건 등 민족이 수년간 외면했던 역사를 세계가 조명하고 한국문학계가 등한시한 여성 문학인이 가장 먼저 최고 권위를 밟았다는 부끄러운 과정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정년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바탕에는 해방 여성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여성국극이 갖는 현대적 메시지와 콘텐츠 주 소비층인 여성의 니즈 변화 등이 있었지만 이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하니가 일본 콘서트에 입은 옷과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 한강의 외형과 목소리를 따라 하고, '정년이'의 이름과 여성국극의 이미지만 따왔을 뿐이었다. 'SNL 코리아'의 코미디는 유아기에 발생하는 모방에 머물렀고 청소년기에 학습하는 모방을 이용한 괴롭힘에서 발전하지 못했다.

[사진=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태도는 최근 SNS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크게 사랑받은 코미디언 이창호의 뮤지컬 패러디 '쥐롤라'와 대비된다. 이창호는 웹예능 '뮤지컬스타'를 통해 뮤지컬 '킹키부츠' 속 퀴어 캐릭터 롤라를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해내며 캐릭터가 가진 특징과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이유에 집중했다. 그동안 수많은 패러디로 부캐 열풍을 일으킨 이창호는 '뮤지컬스타' 팀과 함께 장르와 작품에 대한 존중을 가장 먼저 새겼다. 앞선 패러디 성공 경력에 자만하지 않고 짧은 분량의 영상 하나를 촬영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래와 춤 연습에 공을 들였다. 그중에서도 작품을 희화화하지 않는 것에 힘을 쏟았다. 패러디의 본질을 꿰뚫은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뮤지컬 팬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고 '쥐롤라'의 인기와 맞물린 뮤지컬도 전석 매진의 기쁨을 맛봤다.

'쥐롤라' 이전에는 이창호와 곽범의 '매드몬스터'가 있었다. 특정 대상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지 않고도 아이돌산업을 패러디 하는 동시에 아이돌산업 내 외모지상주의 비판이라는 풍자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얻었다.

이창호
이창호

'SNL 코리아' 연출을 총괄하는 안상휘 PD는 28일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감을 못 받는 콘텐츠가 나온다면 그만큼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갈수록 풍자나 패러디를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앞으로 콘텐츠 제작에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사과가 붙었지만, 이 사회가 'SNL 코리아'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대중을 탓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안상휘 PD가 간과한 것이 있다. 콘텐츠의 가치는 제작자가 아닌 대중과 사회가 부여한다는 것이다. 제작자가 나서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자만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시대가 알아주지 못한 가치를 지닌 '비운의 예술'에 여성 대상 조롱과 미성년자 성희롱이 포함될 일은 수 세기 이후에도 없을 테니, 'SNL 코리아'의 가치란 앞으로도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안상휘 PD는 대중과 사회의 압박 속에 '갈수록 풍자나 패러디를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하니, 한강, '정년이' 코너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약자 비하를 쉽게 수용했던 과거와 달라진 대중의 '성숙한 인식'에 따른 결괏값이다.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콘텐츠는 외면받기 마련이다. 'SNL 코리아'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자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