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의 기다림, 서사 완성한 유병훈 감독 [FC안양 승격 ①]
[신문로=스포츠Q(큐) 신희재 기자] “1990년대 안양종합운동장은 K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기장이었다. 2004년 2월 2일, 안양 LG 축구단이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자 안양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프로팀 창단 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정확히 9년 뒤인 2013년 2월 2일, FC안양은 시민구단으로 탄생했다.”
FC안양이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적어 놓은 창단 배경이다. 1990년대의 영광, 2000년대의 시련, 2010년대의 재기 과정을 한 문단에 녹였다. 2013년 K리그2 원년 멤버로 출발한 안양이 타 구단과 차별화된 독특한 배경을 지닌 게 잘 나타난다.
그렇게 창단 후 12시즌이 지났다. 2024년 11월 2일, 안양은 구단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웠다. 사상 첫 K리그2 우승으로 K리그1 승격에 성공했다. 2019, 2021, 2022년 세 차례 플레이오프 탈락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목표에 도달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21년의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안양은 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K리그2 우승 및 승격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유병훈 감독, 주장 이창용, 부주장 김동진이 참석한 가운데 김다솔, 김정현, 이태희도 동행했다. 역대 6번째로 K리그2 부임 첫 해 우승을 이끈 지도자와 K리그2 최소 실점의 주역인 베테랑 수비수 2명(이창용, 김동진)이 단상에 올랐다.
유병훈 안양 감독은 “(우승은) 항상 남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집에서 일어났다”며 “최대호 안양시장, 이우형 테크니컬 디렉터, 지원 스태프 그리고 21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견딘 서포터즈와 안양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안양은 6월 2일부터 우승을 결정지은 11월 2일까지 5개월간 줄곧 정상을 지켰다.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9월 말부터 3경기 연속 0-1 패배로 2위권 그룹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주장 이창용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시기와 겹쳤다.
주춤하던 안양은 10월 A매치 휴식기 이후 반등에 성공했다. 부산 아이파크를 4-1로 격파한 뒤, 4경기 2승 2무를 내달린 끝에 1경기를 남겨두고 조기 우승을 달성했다.
유병훈 감독은 “(시즌 막판) 3연패가 가장 큰 위기였다”며 “선수들의 부담감과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주장 이창용은 “1위를 계속하면서 점유율도 높고, 실점도 안 하고 완벽해야 한다고 느꼈다. 완벽하지 않은 걸 인정하고 ‘도전자 정신’을 갖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안양의 우승 비결로는 지난해 12월 안양 7대 감독으로 부임한 유병훈 감독의 지도력이 첫손에 꼽힌다. 유 감독은 꽃봉오리 축구와 도전자 정신을 앞세워 K리그2 중위권이 익숙했던 안양을 1부 팀으로 변모시켰다.
안양에서 코치로 8년을 보낸 유병훈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뒤 선수들에게 강한 신뢰를 보냈다. 유 감독은 “초보 감독이라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지난해 선수단이 비교적 좋았는데 성적(6위)을 못 냈다”며 “동계훈련을 착실히 하면서 선수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잘할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유병훈 감독은 “안양은 이창용, 김동진, 김다솔, 리영직, 이태희, 김정현 등 30대 베테랑의 비중이 높다”며 “중원을 거쳐 가는 축구로 체력 소모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탄탄한 수비를 위해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헌신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K리그2를 정복한 안양은 내년부터 K리그1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가장 관심을 끄는 건 라이벌 FC서울과 맞대결이다. 유병훈 감독은 “안양이 K리그1에서 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여 경기하는 게 팬들과 시민의 염원이었다. 그걸 이룰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도 든다. 일단 승격팀이니까 도전자 정신으로 임할 것이다. 홈에서 1승은 챙기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동진은 “더비가 있는 게 설레고 빨리 뛰고 싶다. 선수들보다 안양을 창단한 최대호 시장님과 팬분들이 굉장히 기다리실 것”이라며 “이기기 위해 동계훈련부터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창용은 “김기동 (FC서울) 감독의 기사를 봤는데 (우리와 맞대결을) 크게 상관 안 하더라. 우리도 큰 비중을 두고 생각하지는 않겠다”며 안양 팬들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강산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안양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은 선수단에 큰 힘이 된다. 유병훈 감독은 “내가 창단부터 11년간 안양을 지켰다면, 팬들은 21년의 역사를 지켰다. 그분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기 때문에 자랑스럽고 감격스럽다”며 “(시즌 중) 김정현의 말처럼 내년에 있을 자리(K리그1)가 그분들의 자리라 생각한다”고 헌사를 바쳤다.
김동진은 “FC안양은 시민구단이고 시민들이 다시 팀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과 팬들의 스킨십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며 “가족같이 끈끈한 팀이라 정이 간다. 안양 팬들은 경기가 안 풀려도 선수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안 한다. (그러면서도) K리그2에서 수원 삼성 다음으로 열정적이다. 규모는 작아도 목소리는 수원보다 더 낫다”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