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리그 존폐 위기, 뿌리 흔들리는 여자축구

2024-11-20     신희재 기자

[스포츠Q(큐) 신희재 기자] "더 버티기 어렵다. 감정적 결정이 아니다. 예전부터 연맹과 WK리그의 분리를 고려했다."

오규상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은 지난 1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연맹이 2009년부터 16시즌 동안 맡았던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운영을 다음 시즌부터는 포기한다는 것. 14일은 WK리그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시상식을 개최한 시기였는데, 오 회장은 축제 당일 내년부터 행사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는 비보를 전한 셈이다.

오규상 회장은 "본래 연맹의 정체성은 순수 아마추어 단체"라면서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사실상 프로인 WK리그를 맡았다. (이제는) 초·중·고교와 대학교까지 유소녀 선수들을 키워내는 데 역량을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연맹 사무국 인력이 4명뿐이고, WK리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난이 가중되는 구조라 “예전부터 연맹과 WK리그의 분리를 고민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한축구협회(KFA) 스포츠공정위원회는 6일 4선 임기가 끝나는 오규상 회장의 연임 신청을 승인했다. 2008년 취임한 오 회장은 현재로서는 대항마가 없어 5선이 유력하다. 연맹은 WK리그 8개 구단이 자체 법인을 세우든, 상위 기관인 협회가 나서든 축구계가 머리를 맞대서 풀어야 할 과제라며 WK리그 운영에서 발을 빼는 중이다.

WK리그는 출범 직후 줄곧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렀다. 8팀에서 200명가량의 선수가 뛰는데 올 시즌 한 경기 평균 관중은 261명에 그쳤다. 그마저도 수원FC(183명)를 제외하면 모두 무료입장으로 진행됐다.

여자축구는 2021년부터 방송 중인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을 기점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최근 3번째 시즌을 마친 여대생클럽리그 우플처럼 '하는 축구'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올라왔다. 하지만 ‘보는 축구’인 WK리그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한국 여자축구의 상징인 지소연의 말을 빌리면 WK리그의 문제는 '기본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데 있다. 지소연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각종 매체 인터뷰를 통해 ‘WK리그 경기 시간대 변경’을 요구했다. WK리그는 올 시즌도 정규리그 112경기 중 대부분이 평일 오후 시간대에 진행됐다. 지소연은 "평일 낮이나 (오후) 6시에 하면 웬만한 직장인은 볼 수 없는 시간대"라고 강조했다.

지소연은 그 외에도 TV 중계와 스폰서 유치의 부재, 10년째 동결인 연봉 상한선(5000만원) 등을 언급한 뒤 기본적 여건이 갖춰진 WK리그 환경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일본, 잉글랜드, 미국 등 선진 무대를 경험했기에 더욱 문제의식을 느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지소연과 비슷한 시각으로 WK리그를 보고 있다. FIFA는 지난해 8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WK리그를 상업화 전략이 없고 TV 중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곳으로 분류했다. FIFA가 조사한 34개 리그 중 이 조건에 해당하는 건 칠레, 탄자니아 등 6곳에 불과했다.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4곳, 개별 팀당 후원 기업이 1개가 채 되지 않는 4곳에도 모두 WK리그가 포함됐다.

십수년간 성장이 정체됐던 WK리그는 운영 주체가 손을 빼면서 위기에 처했다. 협회가 소방수로 나서는 그림이 유력한데, 문제는 협회장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와 시기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부담스럽다. 협회는 18일까지 언론 보도 내용을 제외하면 연맹으로부터 '기관 대 기관'으로 구체적인 설명·방침을 듣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의 존립 여부는 여자축구계 근간이 흔들리는 큰 사건이다. 연맹과 협회 모두 이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도 WK리그 구성원은 물론 초·중·고교와 대학교 유소녀 선수들이 관련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발 빠른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