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스페셜] 새바람 '스포츠 산학협력', 그 현주소를 들여다보니?
스포츠계에 불어닥친 산학협력 열풍, 대학과 현장이 손잡다
[200자 Tip!] 스포츠도 비로소 산업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모기업에 의존하던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자립해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적극적인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지역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있다. 하나 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움직임이 있다. 공학이나 금융 계열에서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산학협력 바람이 마침내 스포츠에도 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포츠 현장과 학계가 상생하며 스포츠산업의 파이를 키워나가고 있다.
[스포츠Q 민기홍 기자] 산학협력. 산업과 학문의 결합이다. 산업계는 최신 이론을 실무에 반영함으로써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혁신할 수 있다. 대학은 현장의 문제점과 한계, 해결 능력을 배워 교육과정에 반영시킨다.
공학과 금융 쪽에서는 익히 쓰이는 용어.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여전히 생소하게 들릴 뿐이다. 인체공학, 우주공학이 가미된 생활체육, 골프 등의 기술 협력이 있었을 뿐 스포츠산업의 뼈대를 구축하는 인력 양성, 대형 프로젝트 등을 함께 한 적은 사실상 없었다.
2015년은 스포츠 산학협력이 본격적인 걸음마를 떼는 원년이다. 대학과 스포츠 현장의 스킨십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스포츠산업 전공 학부가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며 그 선봉에 섰다. 이밖에도 현장 곳곳에서 '윈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유통업체부터 축구단까지,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의 광폭 행보
지난해 12월 전국 8700개 편의점을 보유한 BGF리테일과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는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 학기 스포츠산업학과는 리테일 마케팅 과목을 개설해 BGF리테일 임직원들로부터 소매 유통 노하우를 배웠다.
스포츠산업의 미래가 ‘디머스(Design, Merchandising, Sales)’에 있다고 말하는 최준서 교수의 작품이다. 유통과의 융·복합을 통해 스포츠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다. 학부생들은 스포테일(Sports+Retail)이란 개념을 통해 소비자 중심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박재구 BGF리테일 사장은 “젊은 인재들의 열정과 우리 기업의 장점을 결합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스포츠산업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생들은 BGF리테일의 프로젝트 인턴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의 광폭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에는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 FC와 MOU를 맺었다. 가을학기부터 양측은 스포츠산업 현장 교육 지원과 인재 발굴, 인턴십 기회 제공, 프로젝트 공동 수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전개할 예정이다.
이랜드 박상균 대표는 “아시아 넘버원 인기구단이라는 비전을 가진 이랜드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가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스포츠산업 인력 양성과 연구에 가장 많은 투자와 성과를 내는 학교와의 파트너십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 축구산업과 서울대 경영학부가 만났다
스포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프로스포츠 단체로는 최초로 지난해 산업 아카데미를 개설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올초에도 흥미로운 행보를 보였다. 서울대 경영학부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조동성 명예교수의 ‘디자인과 경영전략’이 축구산업과 결부돼 진행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허정무 부총재는 서울대 강단에 직접 서서 “K리그가 팬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선수를 비롯한 구성원 모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경기 내용, 품질만큼 중요한 것이 미디어 전략이다. 어떻게 팬들과 소통하며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느냐에 대해 고민하자”고 역설했다.
프로축구연맹의 박준형 대리는 “서울대 측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 과거 삼성전자, KIA자동차, CJ, 넥슨 등 대기업과 연계했던 수업인데 이번에는 프로축구연맹을 택했다”며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특성화 커리큘럼을 원하다보니 축구에 주목했다”고 귀띔했다.
수강생들은 K리그 구단과 리그 전체 활성화를 위한 스포츠마케팅 프로그램을 짜보는 시간을 가졌다. 구단에 매칭돼 스토리와 패키지 상품 등을 개발하고 이벤트, 프로모션, 온라인 마케팅 등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박준형 대리는 “스포츠산업만을 파고든 이들에 비해 깊이 면에서는 부족했지만 창의성 측면에서는 신선한 점들이 많았다”며 “산업 내 실무자들은 볼 수 없는 새로운 시각들이 필요했는데 일반 학생들이 그런 부분들을 잘 짚어줬다”고 성과를 설명했다.
◆ 홈경기 운영부터 미래 전략 논의까지
K리그 챌린지 충주 험멜은 건국대 충주캠퍼스 스포츠마케팅 동아리인 PSM과 협력하고 있다. 지리적 한계에 부딪혀 실무를 경험할 일이 좀처럼 없었던 PSM은 지역 구단의 도움 요청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발벗고 나서 충주를 돕고 있다.
충주 홍보마케팅팀 김병남 사원은 “사진, 영상을 제작하는 콘텐츠팀, 프리뷰와 선수 인터뷰를 작성하는 미디어팀, 홈경기 이벤트와 홍보를 담당하는 크리에이티브팀 등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직원과 함께 주간 기획 회의도 갖는다. 구단은 이들을 단순한 운영인력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10번째 프로야구단 kt는 지난 11일 스포츠마케팅 동아리인 스마터(SmarteR)와 연합해 ‘빅(BIC)테인먼트’ 세미나를 열었다. 빅테인먼트란 야구(Basebal)와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시켜 사람들에게 재미(Entertainment)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행사에는 20여개 대학 200여명의 스포츠마케팅 동아리 회원이 참석해 kt의 발전 방안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국내외 사례를 수집, 분석하고 본받을 만한 벤치마킹 대상을 낱낱이 파헤친 이들은 뜨거운 토론을 펼치며 kt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SMR, 드레포스, SMAX 등 다양한 스포츠마케팅 동아리들이 프로 구단, 광고대행사, 체육 단체와 협업해 정기적인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실무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흔쾌히 섭외에 응하고 대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취재 후기] 하청업체란 단어를 '협력업체'라고 순화시켜 쓰는 시대다. 과거 스포츠산업계가 학계에 오더를 내리고 일방적으로 열매를 따가는 ‘하청’의 구조였다면 이제는 산학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는 ‘협력’의 구조로 변모했다. 한양대와 서울대, 여러 스터디 그룹의 움직임은 한국 스포츠산업의 밝은 미래를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