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뿐' 44세 다테의 무한도전

서울오픈 국제여자 챌린저 단식 16강서 다리 부상 기권 '그래도 테니스는 재미있다'

2014-04-24     박상현 기자

[올림픽공원=스포츠Q 박상현 기자]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선수들을 많이 만나봤다.

9년 전인 2005년에는 뉴욕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빅 유닛' 랜디 존슨을 스프링캠프에서 취재했고 축구 현장에 나가면 여전히 골키퍼 장갑을 끼고 맹활약하는 김병지(44)를 만날 수 있다. 여자프로농구에서는 딸을 출산하고도 현역에 복귀해 '무적 신한'을 이끌었던 전주원(42·현 춘천 우리은행 코치)도 있었다.

여기 또 한명의 노장 선수가 있다. 바로 기미코 다테-크룸(44 일본)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다테 기미코라고 불렸던 그는 독일 레이서 미카엘 크룸과 결혼한 뒤 4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코치가 아닌 현역 선수로 코트를 누빈다.

6살 때 테니스 라켓을 처음 잡은 그는 1989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그 다음 해이니 벌써 25년전, 흔히 말하는 4반세기 전의 일이다.

프로 데뷔한지 불과 5년만에 세계 순위 10위에 진입한 그는 1995년 11월 13일 4위까지 랭킹을 높였다. 세계에서 가장 테니스를 잘 치는 여성 선수에서 네번째 안에 들어간 것이다.

또 그는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4강까지 오른 경험을 갖고 있다. 1994년 호주 오픈, 1995년 프랑스 오픈, 1996년 윔블던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올랐다. US 오픈에서는 1993년과 1994년 8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복식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1992년 8월에 33위까지 올라갔던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1992년 호주 오픈 대회에서 8강까지 올랐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톱 클래스의 선수로 군림했던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직후 은퇴를 선언했다.

더이상 코트에서 볼 수 없었던 그가 깜짝 현역 복귀 선언을 한 것은 2008년. 그의 나이 38세였다. 복귀 이유는 "젊은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9년 9월 한솔코리아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6년 8월 샌디에이고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13년만에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의 통산 WTA 우승 기록은 모두 8번이다.

현재 그는 세계 랭킹 83위로 100위 안에 들어있는 선수 가운데 최고령이기도 하다. 100위권 선수 가운데 두번째로 나이 많은 선수가 비너스 윌리엄스(33·미국)와 프란체스카 스키아보네(33·이탈리아)다. 모두 열 살 차이가 난다. 다테가 프로에 데뷔했을 때 그들은 모두 9살 꼬마였다.

그런 그가 르꼬끄 스포르티브 국제테니스연맹(ITF) 서울 오픈 여자 챌린저에 출전했다. 통산 14번째 ITF 우승 경험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솔 오픈처럼 또 다시 한국에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이미 지난주 WTA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왼쪽 다리를 다쳐 기권했던 그는 정상 컨디션이 아님에도 이번 대회 출전을 감행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테니스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가 코트로 다시 복귀한 이유 가운데 또 다른 하나나 바로 테니스가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경기를 즐기면서 하니까 선수생활을 오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다.

1라운드에서 악굴 아만무라도바(30·우즈베키스탄, 세계 780위)를 맞아 구석구석을 찌르는 샷으로 2-0(6-4 6-3)으로 이겼지만 2회전(16강)은 달랐다. 이마니시 미하루(22·일본, 세계 243위)는 젊은 선수였다. 나이로 따지면 엄마와 딸, 못해도 이모와 조카뻘이다.

다테-크룸은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메인코트에서 열린 이마니시와 16강전에서 자신의 게임을 따는가 하면 상대의 게임을 브레이크시키기도 하면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붕대를 감은 왼쪽 다리가 욱신욱신 쑤셔왔다. 사력을 다해 뛸 때도 절뚝이는 바람에 스피드가 나지 않았다.

통증을 이기지 못한 그는 1세트 6-6으로 타이브레이크 상황에서 심판에게 악수를 청하며 기권을 선언했다. 왼쪽 다리가 더이상 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1회전에서 기권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전문가도 있었기에 그의 기권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뒤 다테-크룸은 한동안 선수 라커룸에서 나오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웃던 그도 어쩔 수 없는 기권이 아쉬웠던 듯 인터뷰도 거절했다.

그래도 다테-크룸은 계속 뛴다. "힘과 체력은 부족하지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를 즐기면서 하다보니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다. 결혼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체력이 닿는 한 계속 현역으로 뛰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그리고 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다테는 "20대 다시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었고 톱10에 오르는 것이었다. 승부에 많이 집착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더 재미있게 즐기면서 경기를 하는데 초점을 둔다. 경기에서 져도 내일이 있고 다음 경기가 있다는 생각으로 하다보니 투어 생활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비록 부상 때문에 경기를 포기했지만 테니스가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그의 무한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은 국적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