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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대를 디자인한 '이브 생 로랑' 절반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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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대를 디자인한 '이브 생 로랑' 절반의 성공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19 0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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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비스듬히 세로로 포개진 영문 이니셜 ‘Y.S.L’. 지난 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혁신적 디자인으로 명품 패션하우스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이브 생 로랑의 로고다. 불멸의 패션 아이콘의 삶과 사랑,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이브 생 로랑’이 오는 26일 스크린을 우아하게 활보한다.

 

자릴 레스페르 감독의 영화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소년이 18세가 되던 해 크리스찬 디올의 조수가 되는 장면부터 시작해 2008년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평생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의 시점으로 더듬어간다.

1957년 로랑(피에르 니네이)은 디올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21세에 디올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를 꿰찬다.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첫 컬렉션을 성공리에 치른 로랑은 사업수완 뛰어난 피에르 베르제(기욤 갈리엔)를 만나게 된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디자인으로 경영진과 마찰을 빚다가 알제리전에 징집,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로랑은 베르제의 도움으로 26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다. 발표하는 컬렉션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모델, 디자이너들과 어울려 술과 마약, 섹스 등 방탕한 생활에 탐닉하느라 베르제와의 갈등은 깊어지고, 조울증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이브 생 로랑’은 그의 주요 컬렉션과 작업과정, 당시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은 이브 생 로랑이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77벌의 오리지널 의상을 대여해줌으로써 YSL 핵심 컬렉션을 스크린에 완벽하게 재현한다.

 

디올 수장으로써 선보인 트라페즈 라인(어깨 폭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사다리꼴 라인), 여성패션의 혁명을 일으킨 르 스모킹 룩(남성의 턱시도 정장을 여성화), 추상미술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몬드리안 룩(기하학적 패턴과 원색을 배치), 러시안 룩(누빔 재킷, 페전트 블라우스, 긴 스커트 등 러시아와 모로코,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전통 의상을 재창조), 팬츠 룩(판탈롱 수트) 등이 모델들의 그 시절 워킹과 포즈로 소환된다. 뿐만 아니라 생전 이브 생 로랑의 작업실과 파리 본사, 모로코 마라케시 별장의 로케이션 촬영을 허가받아 리얼리티를 살린다.

특히 54년 국제양모사무국 콘테스트 코트 부문 1위(칼 라거펠트), 드레스 부문 1위(이브 생 로랑)를 차지할 만큼 치열한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젊은 날의 칼 라거펠트(현재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의 사교와 삼각관계를 볼 수 있는 점은 흥미롭다.

문제는 내밀한 사적 영역과 매혹적인 패션세계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로랑의 시대를 읽는 눈과 놀라운 창조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점이다.

 

로랑은 여성복에 혁신을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블랙 미니드레스로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해방시켰다면, 로랑은 여성의 몸에 권력을 불어 넣었다. 둘 다 시대 변화를 인식하고 옷에서 성의 구분을 타파했다.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어 기존 여성복을 편안하면서 우아한 하이패션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여성에게 자유를 입히기 위한 디자인, 옷을 통해 행복을 나누고 싶었던 로랑의 철학이 전설적인 컬렉션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영화는 별반 설명하지 않는다. 로랑과 베르제의 애증 관계 역시 서로에 대한 심리가 밀도 있게 드러나질 않아 겉도는 느낌을 준다.

연출의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큰 키에 깡마른 몸매의 수줍은 청년 로랑을 연기한 배우 피에르 니네이는 프랑스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이브 생 로랑과 너무 비슷해서 심지어 화가 날 정도였다”는 찬사를 얻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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