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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변화를 거부한 참혹한 대가 '영혼 잃은 한국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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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변화를 거부한 참혹한 대가 '영혼 잃은 한국축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6.27 12: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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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선수 밀어주기 위해 원칙까지 파기…올림픽 동메달이 오히려 독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내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이라는 야심찬 목표까지 가졌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도전은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귀결됐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은 2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벨기에와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H조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져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이번 월드컵을 4년동안 준비하면서 한국 축구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다. 옆 나라 일본이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체제로 4년 동안 꾸준히 밀고 갔는데도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일관성이 없었던 한국 축구가 비슷한 성적을 올린 것은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이라는 업적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원정 첫 16강이라는 성적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됐다.

영혼을 잃어버린 한국 축구는 이제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을 위해 또 다른 4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나 '오답노트'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에 대한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① 변화와 발전이 없었다

변화가 거스른 홍명보호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변화가 없으니 발전이 없고 발전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변화와 발전이 없이 정체됐을 때 퇴보하고 결국에는 멸망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홍명보 감독은 줄기차게 박주영(29·왓퍼드)만 고집했다. 애초부터 원톱 자리는 박주영의 것이었다. 박주영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처럼 전혀 전술이나 포지션의 변화를 주지 않았다.

홍 감독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는 '원팀'을 주창했지만 그동안 보여줬던 것은 원팀이 아니라 '박주영 원맨팀'이었던 셈이다. 박주영은 3월 그리스와 평가전에서 골을 넣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임대로 간 왓퍼드에서도 주전으로 뛰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봉와직염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박주영을 위해 경기도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를 이례적으로 활짝 열어줬다. 이케다 세이고 코치까지 옆에 붙여 훈련을 시켰다. 오직 박주영을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박주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박주영만한 스트라이커를 찾지 못했다는 말로 박주영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자 했다. 그 결과는 박주영을 언제나 원톱으로 박아두는 것이었다.

튀니지와 평가전부터 가나와 평가전을 거쳐 러시아전, 알제리전까지 4경기에 모두 박주영을 내세웠지만 전혀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박주영을 고집하다가 변화의 때를 놓쳤다. 이미 1무 1패로 벼랑까지 몰렸던 상황에서 뒤늦게 박주영 대신 김신욱(26·울산 현대)으로 교체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한국 대표팀이 변화에 둔감했던 것은 알제리전에서도 잘 나타난다. 알제리는 벨기에전 패배 뒤 승부를 걸기 위해 무려 5명의 선수를 바꾸는 대변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는 성공을 거뒀다.

한국은 공격 일변도로 나온 알제리를 맞아 허둥대다가 완패했다. 한국은 러시아전에 이어 알제리전에서도 같은 멤버로 베스트 11을 짰다가 크게 당했고 이것이 16강 진출 실패의 원인이 됐다.

이에 대해 김학범 스포츠Q 논평위원은 "박주영을 튀니지와 평가전부터 지켜본 결과 전혀 준비가 된 선수로 보이지 않았다"며 "홍명보 감독은 언젠가 박주영이 제 컨디션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경기에 투입시켰겠지만 끝내 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호곤 전 울산 현대 감독 역시 "결국 박주영을 벨기에전에서 중용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변화를 줬어야 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② 제 식구 챙기기, 논란이 된 '의리 축구'

홍명보 감독은 그동안 의리 논란에 휘말려왔다.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 올림픽 등에서 고락을 함께 했던 선수들만 챙긴다는 의미였다. 박주영도 그 의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홍 감독의 의리 논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홍 감독이 지난해 6월 지휘봉을 잡은 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준비를 위한 기간이 11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로 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선수를 고집스럽게 선발로 내세웠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명보 감독이 '의리 축구'를 선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2년 전 런던 올림픽의 기억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과 그의 제자들이 다시 한번 브라질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성적을 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는 자기 식구 챙기기가 됐고 갈등과 반목, 잡음과 균열만을 남겼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전까지 홍명보 감독은 동아시안컵과 몇차례 평가전을 통해 자원들을 테스트했지만 결론은 런던 올림픽에서 고락을 함께 했던 선수들을 불러모으는 것이었다. 23명의 최종 엔트리 가운데 13명이 런던 올림픽 멤버였다.

그 결과 홍명보 감독은 자신이 세운 원칙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밝혔던 것이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원칙도 박주영과 윤석영(24·퀸즈파크 레인저스)에게는 예외였다. 박주영은 사실상 아스널의 전력 외 선수로 분류돼 왓퍼드에서 임대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경기에 나서지 못해 실전 감각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윤석영도 마찬가지. 그 역시 해리 레드납 감독 밑에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주로 교체 멤버로 뛰었다. 시즌 중간에는 다른 팀으로 임대되기까지 했지만 역시 출전기회는 제한적이었다.

홍명보 감독의 원칙대로라면 이들은 절대 대표팀에서는 활약할 수 없다. 그러나 홍 감독은 이들의 진가와 실력을 믿는다며 자신이 만들어낸 원칙도 파괴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과 윤석영을 안았고 K리그 클래식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이명주(24·알 아인)는 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박주호(27·마인츠05)는 박주영과 같은 봉와직염 부상이었지만 역시 자기 '인맥'이 아니라는 의혹 속에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했다가 김진수(22·호펜하임)의 부상 탓에 마지막에 대체해 합류시켰다. 또 홍 감독은 윤석영이 수준 이하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끝끝내 박주호를 기용하지 않았다.

③ 상대팀에 대한 대비책 준비도, 전술도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상대팀에 대한 전술 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러시아전은 수비를 탄탄하게 해 1-1 무승부를 이끌어냈지만 벨기에전에서 1-2로 져 물러설 곳이 없었던 알제리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알제리가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홍명보 감독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알제리는 당시 무려 5명의 선수를 바꾸면서까지 공격의 다변화와 변화무쌍한 전술을 사용헀지만 홍명보 감독은 오직 박주영 원톱을 기본으로 한 4-2-3-1 포메이션뿐이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전반 내내 슛 하나 제대로 때리지 못한채 3골을 내줬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도전사에서 전반 45분동안 3골을 내주며 무너진 것은 알제리전이 처음이었다. 알제리가 세계 축구 강호가 아닌 아프리카의 다크호스 정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 축구로서는 치욕이었다.

벨기에전에서도 대비책은 부족했다. 벨기에는 이미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었다. 벨기에로서는 져도 큰 상관이 없는 경기였다. 그러나 대표팀은 한 명이 퇴장당한 상황이었는데도 공격적으로 나온 벨기에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이 없었다는 뜻이다.

④ 올림픽 동메달 주역만 믿었다가 발등 찍혔다

런던 올림픽이라는 국제 무대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은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 동메달은 현재 대표팀 선수들에게 크나큰 자신감을 던져줬겠지만 선수들 스스로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측면이 더 컸다.

게다가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은 어린 선수가 대부분이다. 보통 FIFA 월드컵 같은 대규모 대회에서는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지휘할 수 있는 경험많은 선수가 필요하다. 2002년 월드컵의 홍명보, 2006년 월드컵의 이운재, 2010년 월드컵의 박지성이 좋은 예였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의 캡틴은 구자철(25·마인츠05)이었다. 구자철이 아무리 선수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A매치 경력이 40회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선수에 불과하다.

그라운드에서 허둥대다보니 자신이 갖고 있는 경기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내심 바랐던 창의성 있는 축구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플레이에 급급한 선수들에게 창의 축구는 기대하기에 무리였다.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며 어린 선수들을 통솔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선수가 이번 대표팀에는 없었다. 박주영과 기성용(25·스완지 시티), 이청용(26·볼턴 원더러스)을 제외하면 선발 라인업 가운데 월드컵 본선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가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영표 KBS 해설위원 말대로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증명무대다. 월드컵을 한두번 뛰어본 것도 아닌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패착이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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