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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올림픽 메달리스트 곽대성, 스포츠 행정가 '한판 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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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올림픽 메달리스트 곽대성, 스포츠 행정가 '한판 메치기'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2.26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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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선수 지원 등 한국 스포츠 정책 개혁 역설

[300자 Tip!]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전에서 이긴 줄 알았다가 마지막 3초를 버티지 못해 '통한의 3초'라는 별명을 얻은 한 유도 선수가 있었다. 망연자실한 나머지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도복을 벗었고 '먹고 살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매트에서 울었던 그 선수는 지금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했다. 곽대성 하이원 스포츠단 사무국장이 꿈꾸는 한국 스포츠의 개혁을 들어본다.

[스포츠Q=글 박상현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서울 마포 도심에 하이원 스포츠단의 사무실이 있다. 하이원 스포츠단은 아이스하키와 스키 등 비인기 동계종목과 유도팀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실업팀이 거의 없는 장애인 스포츠계에 장애인 스키팀을 창설했다.

하이원 스포츠단이 비인기종목을 집중 육성하게 된 중심에는 지난 2012년 부임한 곽대성(41) 사무국장이 있었다.

 

▲ 하이원 스포츠단은 아이스하키와 스키, 장애인 스키, 유도 등 관심에서 다소 멀어져있는 종목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하이원 스포츠단의 운영 정책에는 곽대성 사무국장의 철학이 있다.

◆ 애틀랜타의 눈물, 억울해서만은 아니었다

곽대성 사무국장은 20년 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선수였다. 결승전에서 나카무라 겐조(일본)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쳐 금메달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 3초를 남기고 경고를 받아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판정에서 지고 말았다. 매트에 벌렁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한동안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운동하던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마다 위로해준 친구였기에 정신병원까지 다녀올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발인 때 친구의 뼛가루 한줌을 입안에 털어넣으며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기 때문에 그의 유도 인생은 창창해보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속은 썩어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져 유도를 그만둘 생각을 갖고 있었다.

 

▲ 곽대성 하이원 스포츠단 사무국장은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주위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도복을 벗었다. 이후 그는 우연히 정치계에 입문한 것이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 이중계약의 덫, 도복을 벗게 만들다

그가 도복을 벗은 것은 이중계약의 덫 때문이었다. 여러 실업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던 중 입단 의견서를 써준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영남대 졸업 후 실업팀을 가는 과정에서 특정 한 팀에 가고 싶다는 의견서를 낸 것이 문제였죠.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 팀 감독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협회와 기득세력의 횡포에 실망을 느꼈습니다. 은메달이 아니라 금메달을 따더라도 유도인으로 남아있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구원은 풀고 갔죠. 올림픽 결승전에서 만났던 나카무라를 부산 동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이겼으니 말이죠. 세 번 싸워서 못이겼던 상대를 네 번만에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유도만 했던 그에게 사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젊었고 올림픽까지 나갔으니 뭘해도 먹고 살지는 않겠느냐고 생각했죠. 그러나 부질없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기능이 떨어지는,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백수가 된거죠."

 

▲ 곽대성 하이원 스포츠단 사무국장은 아이스하키, 스키 등 동계종목과 장애인스키 같은 장애인 스포츠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집중 투자하면 충분히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말한다.

◆ 먹고 살기 위해 입문한 정치, 성실함으로 청와대까지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경호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유도 선수 출신이었기에 받을 수 있는 제의였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죠. 차 닦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월급이 50만원, 60만원 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일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했죠. 반년쯤 일하니까 운전을 하게 되고 결국 수행원을 거쳐 팀장까지 올라갔어요. 3년동안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하고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일이 반복됐죠."

'모시던' 대선 후보는 낙선했지만 그의 성실함을 본 정치계 인사로부터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행원 자리를 추천받았다. 그리고 그는 수행원에서 비서, 그리고 보좌관까지 성장했고 청와대까지 입성했다.

 

▲ 곽대성 사무국장은 스포츠 행정가들이 국회에 들어가 우리나라 스포츠 정책을 입안하고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 하이원에서 비인기종목 본격 육성 도전

청와대에서 나올 때가 되자 스포츠에 관해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정치계에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포츠 행정가들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꿈이 가슴 속에서 싹텄고 자신의 진로를 스포츠 행정가로 잡았다. 운동선수 출신인데다 체육학을 전공했으니 소신있게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공기업 스포츠단 가운데 하이원을 선택한 것은 비인기종목을 육성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KT나 한국전력은 연 100억 이상을 쓰면서 프로팀을 운영하는 곳이니 제가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비인기종목을 육성하려고 했습니다."

아이스하키와 스키, 장애인스키, 유도 등 비인기종목 위주로 육성하다보니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유도를 제외하면 메달 전략 종목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소외됐지만 가능성이 있는 종목을 집중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고교생과 대학생 선수 가운데 유망주를 후원하는 메인 스폰서 역할도 생각하고 있다.

"김연아 전까지는 피겨스케이팅도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기대했던 종목은 아니었죠. 계속 지원하다보면 언젠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무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투자 지원을 받기 위해 경영진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동계종목, 특히 장애인 스포츠에 대해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 생활체육 지도자로 은퇴선수 활용하면 일석이조

'오전 5시 30분 출근, 오후 11시 퇴근'에서 벗어나 가정에 충실해지기 시작했다고 웃는 곽 사무국장의 눈은 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 시스템, 특히 은퇴선수에 대한 지원책을 바꾸고 싶어한다.

"은퇴선수들을 생활체육 지도자로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선수, 특히 국가대표는 큰 자산입니다. 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히고 국제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엄청난 비용과 세월이 들어가는데 은퇴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대략 50만~70만의 국가대표 출신 은퇴선수들이 방치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국가대표를 했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이삿짐을 나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죠."

은퇴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살리면서 스포츠계에 종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생활체육 지도자 활용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곽대성 하이원 스포츠단 사무국장은 현재 우리나라 스포츠의 문제점으로 은퇴선수에 대한 지원책이 없는 것을 들었다. 은퇴선수를 생활체육 지도자로 활용하면 선수에 대한 지원은 물론 생활체육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체육센터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이 체육센터에 은퇴선수를 지도자로 배치하는 거죠. 국가대표였던 선수가 직접 지도하면 일반인들은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생활체육에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국민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되겠죠. 기준을 마련해 은퇴선수를 채용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 스포츠 영화 제작·연예인 아이스하키팀 창설, 그의 무한도전

이런 점에서 곽 사무국장은 새로운 스포츠 언론을 표방하는 스포츠Q가 무척이나 반갑다고 말한다.

"스포츠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매체가 나와 너무나 기쁩니다. 국가대표 뿐 아니라 은퇴선수까지 모든 스포츠인의 애환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언론이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스포츠인과 교류할 수 있는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그는 또 은퇴선수의 삶을 그려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도 쓰는 한편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한 아이스하키팀 하이원 스타즈를 만들어 아이스하키의 대중화에도 힘쓴다.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스포츠에 모든 것을 헌신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유도는 5분 게임이라서 5분동안 치열하게 싸우면 되지만 사회는 30년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게임을 하면서 힘들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죠. 저 역시 지금의 모든 것이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싸우려고 합니다."

'링 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친 다음에 어떤 경기를 하느냐'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지치고 힘들 때를 대비하면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어려움에 대비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이기에 더욱 큰 스포츠 행정가로 발돋움할 그날을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

[취재 후기] 그는 추성훈에 대한 일화도 잊지 않았다. 일본 전지훈련 당시 기량이 너무나 뛰어나지만 재일교포였기에 일본 대표로 뽑히지 못한다는 얘기도 기억한다. 한국대표였다가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대표가 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함께 드러냈다. 자신도 겪은 경험이다보니 스포츠계에 만연한 파벌과 특정세력의 횡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당연히 그의 머리 속에는 '파벌 타파'도 들어있다. 그가 생각하는 스포츠 개혁이 기대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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