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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사격 외조' 손상원 감독이 말하는 아내 김미진의 행복한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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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사격 외조' 손상원 감독이 말하는 아내 김미진의 행복한 금메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5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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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남편 권유로 소총에서 전향한 더블트랩 10년만에 아시안게임 개인전 '세계신' 우승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내조지현(內助之賢)이란 말이 있다. 아내가 내조를 잘해 남편을 돕는다는 뜻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사격 더블트랩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미진(35·제천시청)에게는 외조지현(外助之賢)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남편의 적극 권유와 지원 속에 더블트랩 입문 10년만에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김미진은 25일 경기도 화성 국제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사격 더블트랩 개인전에서 110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장야페이와 바이이팅(이상 중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아들 손연호(6) 군도 함께 했다. 아들은 엄마의 경기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며 응원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고 꽃다발을 들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이처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손상원(41) KB국민은행 사격단 감독의 도움이 있었다. 2001년 처음 만나 2년 만에 화촉을 밝힌 사랑하는 남편이다.

◆ 앞길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그만 두고 다시 시작한 사격

2001년 당시 노원구청 소총 선수였던 손 감독은 한서대 사격부에 재학 중이던 김미진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나이차는 있었지만 손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로 아내의 마음을 얻었고 결국 2003년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였다. 김미진이 앞으로 사격선수를 계속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원래 사격 소총선수였던 김미진은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워낙 선수층이 두꺼워 대표선수에도 선발되지 못했다.

결국 총을 놓고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격만 해왔던 김미진에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상원 감독은 "교육자이신 장인어른이 교사로 전직을 강력하게 요구하셨고 아내 역시 아버님의 뜻에 따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며 "그러나 체육교사로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격선수를 했을 때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김미진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태릉사격장 클레이 사격장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자세를 잡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때 손상원 감독이 다시 총을 잡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소총 대신 클레이였다.

손 감독은 "소총보다는 클레이가 선수층이 얇았기 때문에 대표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았고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도 충분했다.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여 권유했다"고 말했다.

▲ 김미진은 사격을 그만두고 교사의 길을 준비하다가 다시 사격으로 돌아왔다. 남편 손상원 감독의 적극 권유로 시작한 클레이 사격으로 그는 새로운 사격 여왕이 됐다. [사진=대한사격연맹 제공]

◆ 가능성만 보고 시작한 클레이, 1년만에 대표 발탁

손 감독은 아직까지 울산 북구청 사격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병준에게 아내를 데리고 갔다. 1주일 동안 테스트를 받아보고 재능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길을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사격을 끝내는 것으로 했다. 재능도 없는데 계속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김병준 선수로부터 '선배님 해보면 될 것 같아요'라는 긍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기뻤다. 더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적응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소총을 잡았었기 때문에 총신 적응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처음 시작했을 때는 소속팀 없이 자비로 계속 출전했다. 김미진이 첫 소속팀인 울산 북구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입문 1년만에 대표선수로 뽑힌 뒤였다.

이후 김미진은 승승장구였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더블 트랩 단체전에 나가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다. 개인전에서는 메달권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분명 소총을 했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한차례 찾아왔다.

울산 북구청장이 바뀌면서 남자에 비해 성적이 잘 나지 않는 여자 선수들을 정리한 것. 결국 2010년 북구청에 나와 2년 동안 다시 실업팀 없이 개인 운동을 했다. 선수를 받는 실업팀도 없어 개인훈련을 계속했다.

이 때 손 감독이 큰 힘이 됐다. 아내가 다시 총을 잡게 한 남편은 개인 훈련에 매진하는 아내를 적극적으로 외조했다.

손 감독은 "늘 아내에게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올라가면 어디든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게 너무 고맙다. 타고난 재능은 없었지만 아내는 스스로 재능을 만들었다. 열심히 노력해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밝혔다.

◆ 남편 손상원 감독 "아내가 선수생활 지속했으면 좋겠다"

다행히 제천시청에서 사격 실업팀을 창단하면서 김미진에게도 소속팀이 생겼다. 도하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손혜경(38)과 함께 창단 멤버가 됐고 인천 아시안게임만 보고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을 이끌고 있는 손상원 감독과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었다. 합숙훈련이 계속 이어졌기에 사랑하는 아들과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손상원 감독은 "사실 가족이 뭉쳐서 같이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에 만나면 더 애틋하다"고 주말부부의 애환을 설명한다.

▲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사격 더블트랩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김미진(왼쪽)은 남편인 손상원 KB국민은행 감독의 적극적인 권유로 클레이 사격을 시작했다. 사진은 최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 당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미진과 손상원 감독. [사진=손상원 KB국민은행 감독 제공]

그럼에도 손상원 감독은 아내가 계속 선수생활을 하길 바란다. 정작 김미진은 올해가 자신의 선수생활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손 감독은 계속 사격을 할 것을 권유할 계획이다.

손 감독은 "아내는 계속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며 "2018년에 열리는 창원 세계사격선수권과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계속 했으면 좋겠다. 오늘 금메달을 땄으니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웃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적지 않은 KB국민은행 소속 선수들이 있다. 모두 손 감독의 제자들이다. 특히 남자 25m 속사권총에서 2관왕에 오른 김준홍(24)의 활약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제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손 감독은 "아내의 금메달 소식을 지인이 문자 메시지로 알려줘 그 때 알았다. 내 고집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김준홍 등 제자들이 한국 사격의 금메달 4개(남자 10m 권총 단체전 이대명, 여자 25m 권총 단체전 이정은 포함)를 합작했다. 여기에 아내까지 우승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기뻐했다.

가족이 최고의 날을 보내게 해준 행복한 금메달이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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