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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철인'들의 끝나지 않은 도전, 외로운 희망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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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철인'들의 끝나지 않은 도전, 외로운 희망을 외치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9.25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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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종목 트라이애슬론 첫날 메달 진입 실패 속 26일 혼성 릴레이서 도약 노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우리가 흔히 '철인 3종 경기'라고 부르는 종목이 있다. 바로 트라이애슬론이다.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쉼없이 한번에 치러 이를 완주한 시간을 계측하는 경기다.

보통 아이언맨 레이스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3.9km와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로 이뤄지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로 줄인 올림픽 레이스로 치러진다.

아시안게임에는 2006년 카타르 도하 대회에서 처음 채택됐다. 도하 대회와 광저우 대회에서는 일본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가장 많은 메달을 땄다. 그러나 한국은 광저우 대회 여자부에서 장윤정이 따낸 동메달 하나뿐이다.

▲ 마라톤에 나선 조아름. 그는 자신의 취약점이 이 종목이라며 근력을 다질 것을 다짐했다.

한국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메달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남자와 여자 뿐 아니라 혼성릴레이까지 생겨 금메달 숫자가 3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첫날 남녀부 경기에서 한국은 트라이애슬론에서 메달을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죽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로 분류되는 한국 트라이애슬론 대표팀 선수들은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파이팅을 다짐했다.

첫 주자는 ‘왕언니’ 조아름(27·대전시청). 25일 인천 연수구 센트럴공원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트라이애슬론 여자 결승전에서 2시간6분55초를 기록, 6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 후 조아름은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 다음 대회에서는 경기력를 보완하겠다”면서 “근력을 높여 잘 달릴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남자부 결승에 나선 김지환(24), 허민호(22·이상 통영시청)도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김지환은 1시간51분53초로 6위, 허민호는 실격을 당했다.

김지환은 “큰 대회가 처음이다 보니까 긴장을 많이 했는지 복통이 찾아왔다. 아쉽다”며 “더 열심히 훈련에 매진해서 2016년 있는 리우 올림픽과 2019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밝혔다.

메달권 입상에 도전했던 허민호는 대회 도중 기권해 최하위에 그쳤다. 허민호는 “완주조차 하지 못해 뭐라 할 말이 없다. 수영에서 카자흐스탄 선수와 몸싸움을 하다 명치를 맞아 페이스를 잃었다”며 “변수에도 대비했어야 하는데 훈련에만 열중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 수영 종목으로 트라이애슬론 남자 개인전 스타트를 끊는 각국의 철인들.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한국 김지환과 허민호.

그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나섰던 경험이 있다. 허민호는 “3번째 큰 대회였기 때문에 경험보다는 성적을 냈어야 했다”며 “한국 선수들이 역사를 새로 써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둘 다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 비인기 종목의 설움, 관심이 고프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포털 사이트에 쳐봤는데 트라이애슬론 일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았어요. 자국에서 하는데도 중계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은 좀 서럽습니다.”

허민호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 많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훈련 여건이 여의치 않다. 진천선수촌에서 하고 있지만 한국은 워낙 차도 많다. 게다가 야외 운동이라 수영도 밖에서 해야하는데 환경이 갖춰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현실을 전했다.

김지환은 비껴난 관심에 무덤덤했다.

그는 “옛부터 워낙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익숙해졌다”고 웃으며 “외국 대회를 나가면서 느끼는 가장 다른 점은 다름 아닌 시민들의 태도다. 사람들이 나와서 응원해주시는 것, 교통 통제를 확실하게 지켜주는 것 등이 인상깊다”며 “우리나라는 트라이애슬론이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 홍보가 되려면 한참 먼 것 같다”고 털어놨다.

▲ 허민호는 남자 트라이애슬론의 간판이다. 하지만 이날 수영에서 명치를 맞으며 레이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아름은 현재는 폐지된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이경규, 이윤석 등 인기 개그맨에게 철인 3종 경기를 지도한 적이 있다. 그는 “TV 출연 이후로 1000명 남짓하던 대회 규모가 1500~2000명으로 뛰었다”며 “지상파의 위력, 미디어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센트럴파크에는 일본 기자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중국 기자였다. 특히 남녀 모두 1,2위를 싹쓸이한 일본 취재진의 경우 경기가 끝난 직후 믹스트존을 점령했다. 메달권이 유력시되던 선수가 없긴 했지만 한국에서 트라이애슬론은 여전히 관심 밖 종목이었다.

◆ 트라이애슬론은 매력덩어리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아니겠어요. 이 대단한 것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힘든 과정을 이겨냈다는 대견함... 그런 것들이 저를 계속 뛰게 만들어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나가보는 것이 꿈입니다.”

여자 선수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 조아름은 지난해 심각한 발목 부상이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전국체전 2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것들을 기어코 해내는 트라이애슬론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으로 스포츠에 입문해 2011년 트라이애슬론으로 전향한 후 줄곧 국내 톱 성적을 기록해왔다.

▲ 왼쪽부터 정혜림, 조아름, 김규리. 정혜림과 김규리는 한국 여자 트라이애슬론을 이끌어 갈 주역들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그는 수영에서만큼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나 마라톤이었다. 그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마라톤에서 워낙 뒤처진다. 다음 대회부터는 근력 훈련에 집중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지환 역시 수영에서 트라이애슬론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매력이 정말 많아 한 가지를 꼽기가 힘들다”며 “일단 경기마다 코스도 다르고 물 온도가 다르고 경사가 다르고 커브 각도가 다르고 모든 것이 새롭다”며 “여러 가지 코스를 접하면서 힘든 구간을 극복해낸다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점차 늘어가는 트라이애슬론 인구 확대를 적극 환영했다. 김지환은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동시에 발전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며 “선수로서 철인 3종 경기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 지원은 충분하다, 우리들의 몫이다 

사람들은 으레 비인기 종목이면 아무런 지원도 못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화승 그룹과 농협홍삼 등이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를 후원하고 있다.

▲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로 치러진다.

조아람과 허민호는 “예년에 비해 지원이 정말 많이 늘었다”며 흡족해 했다. 김지환 역시 “장비가 많은 종목이라서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마니아 분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지환은 “비인기 종목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지원을 받으니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냥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 부족한 우리의 능력을 보완해서 성적을 내야 한다. 이제는 선수들의 몫”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들 셋은 “한국 트라이애슬론의 미래는 밝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나 여자의 경우 정혜림(15)과 김규리(16)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정혜림은 중학생, 김규리는 고등학생이다. 둘은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당당히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허민호는 “조금만 더 국가 차원에서 트라이애슬론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더 좋은 성적이 가능할 것”이라며 “정혜림과 김규리는 정말 좋은 선수들이다. 일본, 중국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선수들이므로 잘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혼성 릴레이를 기대해주세요! 

대회 첫날 노메달에 그쳤지만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그들에겐 아직 함께 하는 레이스가 남았다.

26일에는 혼성 팀 릴레이가 펼쳐진다. 혼성 팀 릴레이는 남녀 4인이 한 팀을 이뤄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완주해 순위를 가린다. 단체전이기 때문에 그만큼 호흡이 중요하다.

허민호는 “나같은 경우에는 완주도 못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힘이 남아 있다”고 웃으면서 “오늘의 아픔은 깨끗이 잊고 내일만 바라보겠다. 우리가 짧은 것에 강하다. 내일은 메달을 기대해달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 수영을 마친 김지환이 사이클로 타기 위해 호수를 힘차게 빠져 나오고 있다.

김지환 역시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나도 자신있다. 예감이 좋다”며 의지를 다졌다. 당찬 각오를 듣고 있던 조아름은 “잘할 것이라 믿는다. 응원 열심히 하겠다”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김규리는 “실수만 없다면 충분히 메달 획득할 수 있다”며 “내일을 시작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달려가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정혜림 또한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다. 내일 금메달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다섯 명의 코리아 철인들은 비록 외로운 도전이지만 트라이애슬론의 부흥이라는 목표와 희망을 위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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