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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한국 트램펄린 1세대' 차상엽·이민우의 위대한 첫 공중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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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한국 트램펄린 1세대' 차상엽·이민우의 위대한 첫 공중제비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6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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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 통해 역사적인 데뷔전…이민우는 첫 출전에 본선진출 기염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이제 우리가 한국 트램펄린 1세대잖아요. 우리가 제대로 밑거름이 되어야죠."

이민우(18·전남체고)의 눈이 반짝였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차상엽(22·한양대)과 함께 체조 남자 트램펄린에 출전한 단 2명 뿐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아직 여드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18세 선수가 조그만 사건을 하나 쳤다.

트램펄린을 제대로 배운지 반년도 되지 않아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른 것이다.

이민우는 26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체조 남자 트램펄린 예선에서 1차 시기 40.345점, 2차 시기 46.780점으로 합계 87.125점을 받아 전체 10명 선수 가운데 8위로 결선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차상엽은 1차 시기 40.280점을 받았지만 2차 시기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18.070점에 그쳐 합계 58.350점으로 9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민우가 26일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체조 남자 트램펄린 예선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겨우 입문 반년 만에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에서 결선에 오른 것 또는 최하위를 면한 것만 해도 그들은 큰 만족을 느꼈다. 이민우와 차상엽 모두 "경기장에 오기 전에 꼴찌만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왔던 터였다.

예선을 무사히 치른 뒤 믹스트존에 선 그들은 제대로 훈련하기에 너무나 짧았던 지난 6개월을 회상했다.

◆ "어, 저거 우리 동네에 있는 텀블링인데…" 신기한 듯 쳐다본 트램펄린 경기

남녀 기계체조가 열렸던 남동체육관은 전날까지 열기는 찾아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트램펄린이라는 종목 자체가 너무나 생소하고 한국 선수단의 메달 전략종목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천 아시안게임 자체에 크게 흥미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인천 시민들이 트램펄린을 보러 오기가 만무했다.

그래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온 꼬마들과 남녀 중고생들이 몰렸다. '동원 관중'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특히 여중고생들은 외모가 말끔한 남자 체조선수들에 '꺅꺅'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역시 트램펄린은 생소한 종목임에 분명했다. 한 꼬마는 "어, 저거 우리 동네에 있는 텀블링 놀이인데"라며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뛰어보고 싶어요"라고 눈을 반짝거리기도 했다.

금속의 사각형 틀에 그물처럼 짜인 스프링으로 캔버스 천을 연결해 만든 기구에서 공중 도약을 해 묘기를 펼치는 트램펄린이 만들어진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36년이었다. 미국인 저지 나선이 지금 모습의 트램펄린을 개발했고 1954년 최초의 공식 대회인 미국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이후 1962년 서독과 1964년 영국 등에서 공식대회가 열리면서 확산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트램펄린은 스포츠라기보다는 놀이에 더 가깝다. 1980년대부터 동네 공터에는 어김없이 '방방이' 또는 '덤블링'이라는 트램펄린이 놓여져 있었다. 1980년대 어린이들의 주요 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500원만 내면 30분 정도 신나게 트램펄린 안에서 뛰어놀 수 있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 체조 남자 트램펄린에 참가한 차상엽(왼쪽)과 이민우가 26일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예선에 출전하고 있다.

공식대회가 열린 것이 이제 60년 정도여서 트램펄린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채택된 것도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2006년 카타르 도하 대회, 올림픽에서는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정식 종목이 됐다.

그런데 여태껏 한국 체조는 트램펄린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다. 올림픽에서는 벌써 네 차례,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번까지 세 번째 치러졌지만 국제종합대회에서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본격 시작한지 3개월, 어깨 너머로 2주 기술 습득 후 출전

차상엽과 이민우는 한국 트램펄린 체조 대표팀 '1세대'다. 모두 마루운동을 하다가 전향했다. 트램펄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윤창선(47) 코치와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윤 코치도 트램펄린에 대해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아직 한국 트램펄린이 이제 막 걸음마라고는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트램펄린 강국이 된 것을 봤을 때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충분히 강국으로 커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네 차례 올림픽에서 중국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로 가장 많은 메달을 가져갔다.

문제는 모두가 트램펄린에 대해 '문외한'이었다는 점.

게다가 훈련장의 높이가 낮아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윤 코치와 두 선수는 경북 문경에 있는 국군체육부대 훈련장 또는 한국체대 체육관에서 트램펄린에 매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두 기계체조를 해봤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상엽이 26일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체조 남자 트램펄린 예선에서 화려한 점프와 공중 돌기 동작을 하고 있다.

이민우는 "트램펄린을 시작한 것은 지난 2월부터다. 하지만 트램펄린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훈련한 것은 7월부터다. 또 중국에서 2주 동안 전지훈련을 하면서 이런 기술, 저런 기술 모두 배웠다. 2주만에 공중에서 할 수 있는 10가지 기술을 모두 습득했다"고 회상했다.

방법은 딱 한가지였다. 중국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모조리 영상에 담는 것. 영상에 담긴 중국 선수들을 보면서 하나하나 기술을 익혔다.

또 한가지 어려움은 훈련비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체조협회에서 부랴부랴 트램펄린 대표팀을 만든 탓에 예산이 없었다. 중국 전지훈련에 갔을 때만 훈련비가 겨우 지원됐고 나머지 교통비나 식비는 모두 사비로 했다.

이에 대해 차상엽은 "모교인 한양대와 훈련장인 한국체대를 오가는 차비나 식비는 모두 우리 돈으로 했다. 3개월 동안 쓴게 70만원 정도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트램펄린이 처음인 이들은 체조를 했었기 때문에 적응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어려움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깥으로 튕겨 나가는 것은 예사였고 그들이 처음에 했던 마루운동과 점프 방법이 달랐다. 마루운동은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점프를 하고 공중돌기를 하지만 트램펄린은 위로 곧바로 뛰어야 하고 공중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공중돌기를 해야 한다. 또 체공시간까지 점수로 계산해 합산하기 때문에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양학선(한국체대)과 동갑인 차상엽은 자신이 그리 뛰어난 체조선수가 아니었던데다 부상이 있어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 경우라고 털어놨다.

차상엽은 "남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체조를 하는데 나는 중1 때부터 했고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운 것은 중3 때였다. 양학선과 비교할 정도의 선수가 아니었다"며 "설상가상으로 고3 때 발목이 골절됐다. 그 부상을 입고 마지막으로 뛰는 전국체전에 참가했다. 그러다보니 치료와 재활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에게 트램펄린은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상엽(왼쪽)이 26일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체조 남자 트램펄린 예선 경기를 마친 뒤 윤창선 코치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선구자로 위대한 첫 발, 한국 트램펄린의 밑거름

이제 차상엽과 이민우는 한국 체조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국제종합대회에 처음으로 나간 트램펄린 선수로 기록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역사에 오랫동안, 의미있게 남으려면 한국 트램펄린 체조가 더욱 발전해야 한다. 그런만큼 차상엽과 이민우의 책임은 단순히 아시안게임 출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차상엽은 "앞으로 4년을 더 생각하고 있다. 기술도 더욱 키우고 기본기 자세도 더 다듬어야 한다"며 "가능하다면 세계체조선수권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민우는 우리나라에 전문 트램펄린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선수로 더욱 경험을 쌓으면서 전문 트램펄린 지도자 1호가 되겠다는 야심찬 꿈을 갖고 있다.

이민우는 "우리나라 트램펄린에 얼마나 많이 지원이 이뤄지고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년 세계선수권도 나가보고 올림픽도 출전하고 싶다"며 "전문 지도자가 없어서 코치 선생님과 함께 연구하면서 기술을 연마했다. 후배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내가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국제종합대회 데뷔전에서 결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이민우는 난도 8.500점, 실행 21.600점, 체공시간 15.595점 등으로 45.695점을 받아 8명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자리했다.

이날 예선과 결선이 모두 치러진 트램펄린에서는 중국 선수가 모두 남녀 금메달과 은메달을 모두 가져갔다. 남자부에서는 동동과 투시아오가 금, 은을 나눠가졌고 여자부에서는 리단와 종싱핑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의 우에야마 야스히로와 기시 아야노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민우가 26일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체조 남자 트램펄린 예선에서 화려한 점프와 공중 돌기 동작을 하고 있다.

시작한지 6개월, 어깨 너머로 2주를 배우고 출전한 대회라는 점에서 이민우의 성적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경기를 모두 마친 이민우는 "예선과 결선을 모두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됐다. 중국 선수들이 하는 화려한 기술을 못하는 것은 아닌데 첫 경기인데다 연결 동작이 좋지 않아 할 수 있는 것만 했다"며 "상엽이 형과 함께 한국 트램펄린 첫 세대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겠다. 트램펄린 발전에 우리의 오늘 경기가 밑바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아들의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본 어머니 김정심(52) 씨도 "다른 선수들은 10년 동안 트램펄린 하나만 했는데 우리 아들은 시작한지 반년 밖에 안됐다. 기특하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선수권도 나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민우와 차상엽의 당장 꿈은 하나다. 당장 중국과 일본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아시아 중위권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3~4년 내에 추월하는 것이다.

'트램펄린 1세대'의 위대한 첫 발자국이 이제 막 찍혔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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