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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의 외침, 여자 카바디 '소리없는 아우성'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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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의 외침, 여자 카바디 '소리없는 아우성'은 멈추지 않는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0.0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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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에서도 4년 뒤 메달 획득을 노리는 여자 카바디 대표팀

[인천=스포츠Q 이세영 기자] 레이더(공격수)가 상대의 코트로 들어가 쉴 새 없이 “카바디”라고 소리친다. 레이더는 안티(수비수)의 포위망을 피해 득점을 노리며 안티는 레이더가 중앙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다해 막는다.

이 과정에서 레이더와 안티들이 서로 뒤엉켜 넘어지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경기 중 부상이 발생하는 것도 다반사다. 박진감 넘치는 공격과 수비가 반복돼 40분(여자는 30분)의 경기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지는 스포츠.

바로 카바디(Kabaddi)다.

이름부터 생소한 카바디는 아시안게임이 있을 때마다 소개되곤 하지만 국내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는 종목 중 하나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한국 대표팀이 30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카바디 여자 단체 예선 인도전에서 수비를 하고 있다.

카바디라는 단어는 힌두어로 ‘숨을 참고 사냥에 나선다’는 의미로 인도와 남아시아 전통 민속놀이다.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 요소가 모두 포함된 카바디는 레이더라고 불리는 공격수가 상대 진영으로 들어가 상대 선수를 터치하거나 라인을 찍고 돌아오면 1점을 얻는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는 채택되지 않은 카바디는 1990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 포함됐다.

한국 카바디는 아직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4년 전 광저우 대회 때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출전한 한국은 남녀 모두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남자는 2전 전패, 여자는 1승(기권승) 2패를 기록했다.

이후 카바디 종주국인 인도에서 코치를 영입한 한국 여자 카바디는 카바디 강국이 되기 위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 여자 카바디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두 번째로 도전에 나섰다.

한국은 지난달 30일 인천 송도글로벌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카바디 여자 단체 A조 2차전 인도와 경기에서 26-45로 패했다. 전날 방글라데시에 18-30으로 패했던 한국은 2연패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종주국이자 세계최강 인도와 대결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지만 목표로 했던 메달 획득에 실패했기에 선수들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한국 여자 카바디 대표팀 주장 조현아가 30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카바디 여자 단체 예선 인도전을 마치고 인터뷰하고 있다.

대표팀 주장 조현아(26‧헵타킬) 역시 마찬가지였다. 4년 전 광저우 대회 때도 출전했던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펑펑 쏟는 동생들을 위로했지만 결국 자신도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조현아는 “상대는 광저우 대회 때 선수들이 많이 포함됐지만 우리는 광저우 때 뛰던 선수들이 네 명이고 나머지는 국제대회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다”며 “큰 대회를 치르면 많은 선수들이 빠져 나가는데 우리도 선수단이 오랫동안 훈련을 하면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 비인기 중의 비인기, 한국 카바디의 씁쓸한 자화상

국가대표라고 해서 다 같은 국가대표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목의 선수들은 국가나 기업의 많은 지원을 받지만 카바디와 같은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로 분류되는 종목은 지원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한국은 2002년 아시아아마추어카바디연맹(AAKF)에 정식 가맹국으로 가입이 된 상태이지만 대한카바디협회는 2009년이 되어서야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로 가입됐다.

전용 훈련장도 없어 학교에 있는 실내 유도장의 절반을 빌려 훈련하는 여자 카바디 대표팀은 종목 특성 상 계속해서 “카바디”라고 외쳐야 하지만 눈치가 보여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불어 활동 반경이 큰 운동이라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만 반코트밖에 쓰지 못해 벽에 부딪히는 등 어려움이 많다.

선수들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조현아는 “학생 신분으로 카바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빠지는 것이 부지기수”라며 “비인기 종목 선수라면 겪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30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카바디 여자 단체 예선 인도전에서 패한 뒤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학생이 아닌 선수들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조현아도 백화점에서 짐을 들어주거나 공장에서 타자를 치는 등 궂은 일을 하며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너무나도 힘든 선수생활을 접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조현아는 “합숙훈련이 갑자기 잡혀서 하던 일도 그만두고 울산 집에서 짐을 싸든 뒤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대한체육회 사정으로 훈련이 취소가 됐다”며 “그 짐을 그대로 들고 울산으로 올라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바디가 재미있어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 열중했다.

◆ 신기한 시선 아닌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카바디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도 조현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카바디에 대한 정보는 찾기 힘든데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기사에 ‘카바디가 뭐기에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냐’, ‘이런 종목이 아시안게임에 나와도 되는 거냐’는 등 부정적인 시선으로 카바디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현아는 “처음에는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는 카바디를 신기해하는 반응에 익숙하다”며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서 카바디를 알리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한국 이현정(왼쪽)이 30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카바디 여자 단체 예선 인도전에서 공격을 성공하고 있다.

이제 조현아의 시선은 4년 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향해 있다. 아직 국내 저변은 열악하지만 카바디가 널리 알려지고 선수들이 카바디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충분히 메달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현아는 “이번에 메달을 땄으면 선수들이 ‘안정적인 수입도 없고 힘드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카바디를 하지 않았을 텐데, 메달을 못 땄으니 앞으로 4년을 바라보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4년 뒤에는 메달을 꼭 따겠다”고 다짐했다.

“저희는 카바디를 잘 해서 출전한 선수들이 아니라 좋아해서 대표팀에 나왔습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으로 여자 카바디를 뿌리내린 조상이라고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선수생활을 하겠습니다.”

'한국 카바디의 조상' 조현아의 힘찬 외침이 인천에서 벌써 자카르타를 향해 메아리쳤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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