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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보다 빛나고 값진 42.195km '감동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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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보다 빛나고 값진 42.195km '감동 인생'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03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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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코미디언의 '무한도전'과 투잡 마라토너의 동메달…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시련 속 눈물의 완주도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고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단거리나 중거리처럼 먼저 출발한다고 해서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다. 1등으로 출발할지라도 인생의 온갖 굴곡과 장애물에 걸리고 넘어진다. 실패에 낙담해 좌절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처음에는 뒤졌어도 꾸준히 달려 성공을 거두는 모습만 보더라도 인생과 마라톤은 분명 닮은 꼴이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육상 종목에서 마지막 금메달이 걸린 남자 마라톤이 3일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출발해 인천항 해안도로와 산업단지, 청라신도시를 거쳐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코스에서 펼쳐쳤다.

금메달은 케냐 출신의 귀화 마라토너 알리 하산 마흐부브가 가져갔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1만m와 5000m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마흐부브는 마라톤까지 정상에 올라 종목을 달리해 3회 연속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마흐부브의 금메달보다 더욱 빛나는 인생과 감동의 스토리도 있었다. 절망과 눈물, 그리고 희망과 웃음이 42.195km의 코스에 한데 어우러졌다.

◆ 일본 코미디언, 캄보디아로 국적 바꿔 환희의 '꼴찌' 완주

한때 여배우 이시영이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복싱에 출전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물론 그 꿈은 무산됐지만 연예인이 국제대회에 나가기 위해 도전한다는 것은 엘리트 스포츠가 확고하게 자리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시영이 드라마를 통해 복싱에 흥미를 느껴 여자복싱에 매진했듯 일본에는 마라톤에 푹 빠져 국적까지 바꿔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있다. 바로 다키자키 구니아키(37)였다.

그의 유니폼에는 일본기가 아닌 캄보디아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 종목에 일본이 아닌 캄보디아 국적으로 출전했다. 마라톤에서 아시아 정상권에 있는 일본에서 대표 선수를 할 수 없어 캄보디아로 국적을 바꿔 출전한 것이다.

그의 키는 151cm 정도. 몇몇 프로필에서는 147cm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일반인에 비해 왜소한 체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등 건강관리를 해왔던 그는 일본 T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마라톤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의 건각을 과시하면서 개그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의외로 잘 달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봄과 2011년 봄, 가을, 2013년 가을에 4회에 걸쳐서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마라톤에서 소질을 보였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아이돌 육상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거나 '무한도전'을 통해 스포츠에 도전한 뒤 선수의 길을 들어선 것이다.

결국 그는 마라톤 도전을 본격 선언했다. 2010년 도쿄 마라톤에서 3시간 이내에 완주하지 못하면 자신의 예명인 '고양이 히로시'를 버리고 본명으로 활동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 정도였다.

자신의 첫 공식경기였던 2008년 도쿄 마라톤에서 3시간48분57초, 2009년 도쿄 마라톤에서 3시간18분52초로 점차 기록을 단축시켰던 그는 2010년 대회에서 2시간55분45초로 공약까지 지켰다.

이듬해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37분43초까지 기록을 줄였다. 불과 3년 사이에 기록을 1시간11분이나 단축시켰다.

좋은 기록을 내자 국제대회 출전까지 욕심이 난 그는 런던 올림픽에 캄보디아 대표로 출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1년 11월 국적을 따냈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국적 취득이 1년 미만이고 1년 이상 거주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참가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2012년에 출전한 벳푸 오이타 마이니치 마라톤에서 2시간30분26초로 자신의 최고 기록까지 세웠다.

다키자키는 결국 캄보디아 대표 자격으로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기록은 2시간34분16초. 완주한 14명 선수 가운데 꼴찌였지만 그는 절대로 꼴찌가 아니었다. 그 역시 인생의 승리자였다.

◆ 노시완과 박철의 눈물 레이스, 그래도 완주

다키자키가 결승점을 통과하기 3분여 전에 노시완(22·건국대)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2시간31분29로 13위의 기록이었다. 꼴찌에서 두번째.

그러나 노시완의 질주에 관중들은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중반까지 선두권에서 레이스를 펼쳤던 그는 17km 지점을 달리던 중 발이 꼬여 넘어졌다. 순식간에 순위가 10위로 밀려났다.

좌절의 순간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시련에서도 꿋꿋이 일어났다. 넘어지면서 다리를 다쳐 절뚝거렸지만 남은 25km 구간을 가다 서다,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자신의 레이스를 완성한 노시완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도 25km를 끝까지 완주해낸 값진 결과였다.

레이스 도중 넘어진 것은 북한의 박철(24)도 마찬가지였다. 박철은 경기 초반 중위권을 형성하다가 25km를 통과하면서 4위권으로 치고 올라와 막판까지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그 역시 노시완처럼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다. 금메달을 차지한 마흐부브에 1분56초 밖에 뒤지지 않았고 3위와 차도 1분52초에 불과했다.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여 충분히 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다.

박철이 막판까지 선두권을 형성하면서 달리는 모습에 열광하며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응원전을 펼쳤던 동료 선수들은 그의 넘어지는 모습에 일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박철이 5위로 들어오는 광경을 지켜보며 격려했다.

◆ 공무원 마라토너 가와구치, 눈물의 동메달

마흐부브에 불과 4초차, 은메달을 차지한 마쓰무라 고헤이(28·일본)에 겨우 3초 뒤져 동메달을 따낸 가와우치 유키(27·일본)는 본업이 선수가 아니다. 그의 원래 직업은 일반 공무원이다.

가와우치는 본업이 전문선수가 아니면서도 마지막까지 대접전을 벌였다. 금메달을 바로 눈앞에 두고 따지 못한 아쉬움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묻어났다.

가와우치는 경기가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는 사이타마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라며 "레이스를 중심으로 연습했는데 산을 5~6시간 정도 뛴다"고 말했다.

가와우치는 고등학생 때까지 육상을 했다. 그러나 부상을 당한데다 성적까지 신통하지 못해 대학에 진학해서도 정식 육상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저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만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 선수가 아닌 그가 대학 졸업 후 진로는 육상 실업팀이 아니라 공무원 취업이었다.

그러나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사이타마현청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며 마라톤과 질긴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사이타마현청도 '가와우치 육상회'를 조직해 개인 신분으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며 화제를 모은 가와구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도 가와우치를 주목했다.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일본 남자 가운데 가장 빠른 시민 러너'였다. 실업팀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성격으로 벌어졌던 2009년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과 2010년 도쿄 마라톤에서 각각 13위와 4위를 차지했던 그는 2010년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10위에 오르며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표 자격을 땄다.

2011년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8분37초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분대 벽을 돌파한 그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 2시간16분11초의 기록으로 전체 18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3월 서울 국제마라톤에도 출전, 2시간8분14초로 자신의 최고 기록을 달성하며 4위에 오르는 등 전문 선수가 아님에도 항상 최고의 성적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성격으로 벌어진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에서 전체 3위, 일본 선수 가운데 1위에 해당하는 2시간9분5초의 기록으로 대표팀에 뽑혔고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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