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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꼴찌를 위하여' 대전 팬들이 한화를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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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꼴찌를 위하여' 대전 팬들이 한화를 사랑하는 법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14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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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화 팬심, "잘해도 못해도 우리 팀" 의리와 신뢰…내년엔 더 잘될거라는 끝없는 기대

[대전=스포츠Q 박상현 기자] 2008년부터 올해까지 7년 연속 가을 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팀. 2009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다섯 차례나 최하위를 기록한 팀. 최하위가 아니었던 그 한 차례도 8개 팀 가운데 7위였던 팀. 그럼에도 이런 팀을 끝까지 믿고 사랑하는 팬들이 있다.

바로 한화 이글스 팬들이다.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한화 팬들은 부처님, 보살'이라고 말한다. 6년 동안 계속 밑바닥을 맴돈 팀을 끝까지 믿고 사랑해준다는 것은 아무리 열성 팬이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한화의 홈구장인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홈경기가 벌어지면 욕설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끝까지 사랑하고 응원을 보낸다.

대체 대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대전의 야구팬들은 왜 '꼴찌 한화'에 무한 사랑을 보내는 것일까. 13일 2004 시즌 홈 고별전에서 그 궁금증 풀이를 갈무리했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 팬들이 1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 꼴찌지만 설렁설렁 하는 법은 없다

1년 전에 대전을 방문했다가 한화 경기 중계방송을 라디오로 듣고 있는 한 택시기사를 만났다. 한화가 최하위에 밀려나있는데 화나지 않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요. 한화가 꼴찌이긴 하지만 설렁설렁 하는 법은 절대로 없어요. 늘 열심히 뛰고 늘 승리를 갈구하죠. 열심히 하는데 안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실력이 되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아 못하는 것이 문제인거지. 한화는 열심히 해요."

택시기사의 한 마디는 거의 대부분의 한화 팬심과 다름없었다.

한화와 삼성의 시즌 마지막 대전경기가 벌어진 13일 한밭야구장에서 그대로 증명됐다.

이날은 삼성이 무려 28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22점을 뽑은 날이다. 한화가 1-22로 대패한 날이다. 이날은 한화의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마지막 홈경기였다.

469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많은 숫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1만3500석 규모이기 때문에 전체 관중석의 38%가 찼다. 이미 최하위가 결정된 팀의 홈경기라면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숫자였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대전 한밭야구장에는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한화는 1999년 이후 15년 동안 가을야구를 하지 않은 적이 더 많다. 또 2008년부터는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다.

김재철(29·가명)씨는 마지막 홈경기이기 때문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경기 시간에 맞춰서 오기 위해 직장에 거짓말을 하고 왔기 때문에 이름을 가명으로 해달라고 했다.

김 씨는 "중학생 때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봤다. 아직까지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하지만 두번째 한국시리즈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내년 봄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한화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웃었다.

이어 김 씨는 마지막 홈경기를 보기 위해 직장에 거짓말까지 하고 온 이유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팀이고 내가 사랑하는 선수들을 올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인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삼성이 강하긴 하지만 한화 선수들은 끝까지 싸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는 한화 팬들의 바람의 반대로 흘러갔다. 한화 미래의 에이스인 이태양이 마운드에 섰지만 1회초에 채태인의 2점 홈런 등으로 3점을 내주며 끌려갔고 2회초에도 야마이코 나바로의 솔로홈런이 터지며 0-4까지 뒤졌다. 3회말에는 무려 8점을 뺏기면서 사실상 경기를 내줬다.

그런데도 한화 팬들이 몰린 1루측 관중석에서는 욕설 한마디 터지지 않았다. 이를 본 박명곤(31)씨는 "대량실점했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이 태업을 한다거나 일부러 경기를 망치거나 하는 것은 없지 않느냐. 삼성이 강해서 그런 것 뿐"이라며 "그래도 은근히 삼성에 고춧가루를 뿌리길 바랐는데 그것이 되지 않아 아쉽다"고 웃었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의 마지막 홈경기가 벌어진 1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는 외국인 선수들 사인회가 열렸다. 한화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외국인 선수 앞에서 사인을 받으며 즐거워했다.

◆ "내가 사랑하고 응원하는 팀이 아닌 그냥 우리 팀"

한화 팬들에게 한화는 단순히 사랑하고 응원하는 팀이 아니다. 그냥 '우리 팀'이다.

대전 야구팬 가운데에서 뜨내기 팬들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화를 사랑하는 팬들은 충성도가 강하다.

장순정(44)씨는 "내가 봤을 때는 뜨내기 팬은 옛날 얘기인 것 같다. 아마도 한화가 오랜 기간 하위권에 있다보니 그런 팬들은 이미 한화에서 마음이 떠났을 것"이라며 "그런 만큼 지금 한화 팬들은 더욱 끈끈한 애정을 발휘한다. '진성 팬'만 남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은 전병규(45)씨도 "한화라는 팀에 애정이 많다. 그냥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이다. 내년에 대한 희망을 갖고 마지막 홈경기에 왔다"며 "아들이 이제 그만 한화를 떠나 다른 팀을 응원하자고 하는데 끌까지 버릴 수는 없다. 지역 연고팀이라는 것도 있지만 다음 시즌에는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기대감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한화가 '우리 팀'이라는 사실은 선수들에게도 팬들과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묶여있으니 선수와 팬들은 스스럼이 없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의 열성 외국인 팬으로 잘 알려진 루크 씨 역시 한화의 마지막 홈경기에 함께 했다. 한화에는 루크 씨를 비롯해 열성적이고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한화의 홈경기를 보러오는 관중은 대부분 열성 팬들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을 타 유명 인사가 된 외국인 팬 루크 씨를 비롯해 모든 팬들이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다.

한화 팬들은 초반 삼성에 대량실점을 하는 모습에 한탄을 하지만 6회말 희생플라이로 유일한 점수를 뽑자 마치 승리한 것처럼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또 7회말에는 장운호가 삼성의 두번째 투수 서동환에게 헤드샷을 당해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자 삼성 투수를 향해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몇몇 여성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1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관중석에는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 팬이라서 행복합니다' 노래가 흘러나왔고 '최강 한화' 응원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한밭야구장에는 한동안 팬들이 떠날 줄을 몰랐다.

선수, 코칭스태프를 바깥에서 다시 한번 보기 위함이었다. 장종훈 코치는 구단 직원에게 "밖에 팬들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본 뒤 구장 밖을 나섰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팬들은 선수가 자신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자 달려가며 '수고했어요', '괜찮아요, 내년에 잘하면 되잖아요'라는 덕담을 주고 받았다. 몇몇 여고생 팬들은 일부 외국인 선수에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짧은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기도 했다.

팀이 1-22로 대패한 날임에도 누구 하나 선수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 여성팬들이 팬복 앞에서 응원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성적은 바닥이지만 관중 숫자가 꾸준한 이유

한화는 2008년부터 가을야구를 구경하지 못했지만 관중 숫자는 꾸준했다. 2008년 37만2986명으로 경기 평균 5920명이 입장했다. 최하위가 됐던 2011년과 2012년에는 46만4871명, 51만9794명으로 경기 평균 각각 7044명과 7758명이 입장해 오히려 관중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지난해는 38만6893명으로 경기 평균 6045명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올해 다시 47만5126명으로 평균 7542명이 들어왔다. 올해 홈 관중수는 13일 기준으로 넥센(43만3504명), NC(45만7396명) 등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팀보다 많고 정규리그 4연패를 앞두고 있는 삼성(49만1175명)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팬들은 한화의 야구가 '마약 같은 야구'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 경기장을 찾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에는 한화가 '승패 패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태훈(33)씨는 "한화는 질 때는 두 가지 패턴이 있다. 경기 초반에 마운드가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대량 실점해 지는 경기가 있는 반면 박빙의 상황에서 실책으로 무너지는 상황이 있다"며 "그러나 이길 때는 짜릿하게 이긴다. 이것이 바로 마약같은 승리다. 9회말 끝내기 적시타에 저절로 함성이 타져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한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의 열성팬인 차영기 씨가 13일 한화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열린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한화는 21점차 참패를 당했지만 팬들은 누구 하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으며 끝까지 응원전을 펼쳤다.

창단 때부터 한화의 골수팬을 자처하는 차영기(51)씨는 "선수 하나하나 기량은 어느 팀 주전을 꿰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다. 팀에 대한 투자도 적지 않다"며 "하지만 선수들 역량을 뽑아내는 것에서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 씨는 구단 프런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씨는 "한화에 뿌리를 갖고 있는 야구인들은 뒤로 밀려나있고 다른 팀에서 온 분들이 구단을 이끌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내년에는 한화에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었던 야구인들이 팀을 이끌어가면서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모두 뽑아줄 수 있도록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화에 대한 보통 애정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분석이다. 그런데 팬들을 만나보면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다. 지금 한화에는 이런 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 구단과 선수들의 '팬 프렌들리' 정책, 팬들의 자발적 사랑 이끌어

팬들의 애정은 '짝사랑'이 아니다. 구단과 선수들도 팬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서로 소통이 되는 사랑이 있기에 구단, 선수와 팬들이 더욱 끈끈한 정으로 뭉칠 수 있었다.

한화는 지난 5월 오른쪽 외야석에 '팬봇'을 설치했다. 제작비 3000만원을 들인 팬봇은 전광판 팻말을 들고 있는 성인 크기의 마네킹이다. 한화 유니폼과 청바지를 입고 있는 팬봇은 멀리서 보면 마치 실제 응원단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 선수단이 13일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 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다음 시즌 진짜 잘하겠습니다!'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열에 있는 팬봇의 얼굴에는 조그만 화면이 설치됐다. 이 화면에는 모두 제각각의 얼굴이 있다. 팬봇을 개발한 마케팅 팀 사원들의 얼굴과 함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모를 받은 팬들의 얼굴 사진이 있다.

팬봇이 들고 있는 전광판 팻말의 문구 역시 팬들의 신청을 받아 게재한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모한 응원문구와 함께 선수들의 파이팅을 불러 일으키는 문구가 나온다.

팬봇 관리 담당인 김남훈(23)씨는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일단 생각보다 반응은 좋다"며 "영국 BBC 방송에서도 세계 최초의 응원 로봇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한화는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 뒤 홈팬들과 그라운드에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장내 질서요원의 유도에 맞춰 차례차례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한 시즌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을 하기도 했다.

많은 관중들이 몰리면서 하이파이브 행사가 30분 정도 걸리긴 했지만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선수나 팬들 누구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은채 모든 관중을 맞이했고 차례를 지켰다.

또 선수단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다음 시즌 진짜 잘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다음 시즌 전의를 불태웠다.

선수들 한명 한명과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눈 김혜영(17)양은 "마지막 시즌 홈경기라 시원섭섭하다. 내년에 고3이 되기 때문에 홈경기를 자주 보러올 수 없을 것 같아 아쉽다"며 "그래도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고 그 다음에도 점점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전력까지 될 것"이라고 신뢰감을 드러냈다.

'지금도 달리고 있지 / 하지만 꼴찌인 것을 / 그래도 내가 가는 이 길은 / 가야 되겠지 (중략) / 어설픈 일등보다도 / 자랑스런 꼴찌가 좋다 /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 꼴찌도 괜찮을거야' (한돌 작사 작곡 '꼴찌를 위하여')

지금 한화 팬들의 마음은 바로 이 노래 가사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도 선수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슈퍼 독수리의 비상, 한화가 언젠가는 다시 좋은 팀이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들이 한밭야구장을 가득 메워 더욱 뜨거웠던 2014년 시즌이었다.

▲ [대전=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화 선수단과 관중들이 1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서 만나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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