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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시몬스터' 괴력 떠받치는 3가지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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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시몬스터' 괴력 떠받치는 3가지 힘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1.06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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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강' V리그 외인 공격 열풍 잇는 OK저축은행 시몬…막내구단 돌풍 이끄는 '형님리더십'

[300자 Tip!] 4m 가까운 높이에서 찍어 누르는 스파이크 서브.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때리는 공격. 여기에 수준급으로 평가되는 수비 실력까지. 단숨에 한국 프로배구 판도를 뒤흔든 외국인 공격수가 있다. 바로 쿠바 태생 로버트랜디 시몬 아티(27·안산 OK저축은행)다. 괴물 외인 시몬이 창단 2년차 OK저축은행의 시즌 초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그가 합류한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다크호스에서 올시즌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났다. 이른바 ‘시몬 효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어마무시하다. OK저축은행은 영원한 우승후보 삼성화재와 올시즌 무패 행진을 달리던 대한항공을 차례로 꺾으며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팀으로 올라섰다.

[용인=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노민규 기자] ‘펑!’, ‘펑!’

실전이 아닌 훈련에서도 다른 선수가 아닌 시몬이 스파이크를 때리면 소리부터 달랐다. 3m89㎝의 높이에서 때리는 스파이크 소리는 마치 포탄이 적진에 떨어질 때 나는 굉음에 가까웠다.

올시즌 프로배구 막내구단 OK저축은행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시몬을 선수단 훈련이 한창인 용인에서 만났다.

▲ 시몬은 젊은 선수들에게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외국인 선수 이상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쿠바 국적의 시몬은 키 206㎝, 몸무게 112㎏의 체격을 갖춘 센터다. 블로킹 리치가 무려 326㎝에 달해 자국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센터로 활약했다. 공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그는 많은 상을 받으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쿠바 성인 대표팀에서 뛴 시몬은 2009년 노르세카 챔피언십에서 자국의 금메달 획득을 이끈 것을 시작으로 2010년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챔피언십에서 은메달, 2011년 노르세카 챔피언십에서 금메달을 각각 획득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쿠바는 FIVB 랭킹 11위에 올라 있는 배구 강국이다. 한국보다 5계단 높은 위치에 있다.

V리그에는 지난 두 시즌 동안 실력이 탁월한 쿠바 선수들이 대거 들어왔다. 2012~2013시즌부터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레오(24·대전 삼성화재)를 필두로 꾸준한 공격력을 선보이는 마이클 산체스(28·인천 대한항공), 두 시즌 전 LIG손해보험에서 뛰었던 오레올 까메호(28·로코모니브 노보시비리스크) 등이 국내 리그를 쥐락펴락할 만한 활약을 펼쳤다.

형이 좋은 선례를 남기자 아산 우리카드는 오레올 카메호의 동생인 오스멜 까메호(25)를 영입, 쏠쏠하게 ‘쿠바 효과’를 보고 있다.

쿠바 선수들이 한국 무대에서 전성시대를 펼치고 있는 현상에 시몬은 “선수들의 체격 조건이 좋고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각광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괴물' 시몬, 역대 최강 외인 공격수 계보 잇는다

올해로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V리그는 그동안 ‘특급’ 칭호를 받을만한 외국인 선수들이 여러 명 거쳐 가거나 활동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2005~2006시즌 통합우승과 2006~2007시즌 챔프전 우승을 진두지휘한 숀 루니(32·미국)의 화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전성기 때 그의 점프력은 블로커들이 쉽게 막지 못할 정도로 높았고 스파이크의 위력도 가공할 수준이었다. 루니는 2005시즌 정규시즌과 챔프전 MVP를 휩쓸었고 2006~2007시즌 챔프전 MVP를 수상,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를 빼앗은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현재 슬로베니아 클럽 ACH 볼리에서 뛰고 있는 안젤코 추크(30·크로아티아)다. 안젤코는 삼성화재에서 뛰던 시절 팀의 2007~2008시즌 통합우승, 2008~2009시즌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또 자신은 2007~2008시즌 정규시즌과 챔프전 MVP를 독식했고 득점상과 서브상, 백어택상을 수상했다. 2008~2009시즌에는 득점상과 서브상을 수상, 최고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올랐다.

▲ 최대 4m 높이에서 내리찍는 스파이크. 시몬의 고공 폭격이 V리그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가빈 슈미트(28·캐나다)도 삼성화재 왕조를 이어간 선수다. 2009~2010시즌 정규리그 MVP와 챔프전 MVP, 리그 최초 단일시즌 1000득점(최종 1110점·득점상), 공격상, 서브상을 독식했다. 2010~2011시즌 득점상과 챔프전 MVP에 선정된 가빈은 그 다음 시즌에도 득점상(3연속), 공격상,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에 모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레오가 이들의 계보를 이었다. 레오는 2012~2013 시즌부터 소속팀 삼성화재의 통합 2연패를 일궈냈다. 아직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지만 시몬도 이들의 활약에 버금가는 족적을 남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시몬은 V리그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21일 삼성화재전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날 그는 서브 에이스 6개, 블로킹 3개, 후위득점 13점을 몰아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또 그는 양 팀 선수들 가운데 최다 득점인 43점을 뽑아내며 26점에 그친 레오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시몬은 자신의 활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직접 보여줬다.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전(3-2 승리)에서 5세트 동안 서브 에이스 7개, 블로킹 2개, 후위득점 11점을 포함해 42점을 올린 시몬은 지난 1일 LIG손해보험전(3-0 승리)에서도 세 세트 만에 22점(서브 에이스 4개, 블로킹 1개, 후위득점 8점)을 뽑아내는 괴력을 뽐냈다.

특히 LIG전 3세트 22-17 리드 상황에서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로 2연속 득점에 성공하는 장면은 그의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시몬이 10월 21일 삼성화재전에서 블로커 이선규를 앞에 둔 채 스파이크를 때리고 있다. [사진=OK저축은행 제공]

또 5일 우리카드전에서는 서브 에이스 4개, 블로킹 3개, 후위득점 9점으로 시즌 두 번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 팀 패배 속에서도 존재감을 높였다.

대표팀에서 뛰는 동안 시몬은 2009년 FIVB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블로커, 베스트 스파이커상, 2014년 FIVB 클럽 월드챔피언십에서 베스트 미들 블로커상을 받으며 가공할 만한 높이와 공격력을 과시했다.

한국 무대에서도 공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올시즌 경기 당 36.75점을 올리고 있는 시몬은 35점을 기록 중인 산체스에 앞선 선두를 질주하고 있으며 서브에서도 세트 당 1.235개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블로킹 능력 역시 탁월하다. 그는 세트 당 0.529개의 블로킹으로 9위에 올라 있다.

높이가 약한 팀 사정 상 센터와 라이트를 모두 소화하는 시몬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괴물’이다. 시몬과 괴물의 합성어로 ‘시몬스터’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몬은 이를 특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별명을 지어준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정이 없다. 그래도 저에게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할 따름이다.”

◆ 팀플레이 일깨우는 '형님 리더십'...괴력을 받치는 세가지 힘은 '호흡, 승리, 헌신'

외국인 선수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기량이지만 인성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제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인성이 잘못됐거나 자기가 가장 잘났다는 이기주의에 빠진다면 팀 플레이를 해치게 된다.

그러나 시몬의 인성 때문에 골치를 썩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이 인성만 보고 뽑았다고 할 정도로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 ‘괴물’, ‘시몬스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이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는 팀이 있기 때문에 나온다고 생각한다. 팀을 위한 희생정신은 한국 선수 저리 가라다.

▲ 2단 공격 훈련을 하는 시몬. 그의 밝은 표정에서 화기애애한 훈련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몬은 힘든 훈련량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한국은 아시아권 나라 중에서도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인터뷰 약속이 잡힌 날 역시 OK저축은행 훈련 일정표에는 오전과 오후, 저녁으로 나뉘어 강도 높은 훈련이 예고돼 있었다. 많은 훈련 탓에 몸과 마음이 지칠 법도 하지만 시몬은 의연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훈련량이 다른 리그보다 많은 건 사실이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핑계다. 프로이기 때문에 어느 리그, 어느 팀에 있든 훈련 방식에 적응하는 게 기본자세다. 한국에 온 만큼 팀을 위해서 뛰겠다.”

쿠바 대표팀과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었을 당시 주장을 맡았던 시몬은 선수단 내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다. 시몬은 강영준, 한상길과 함께 팀 내 최고참이다.

이날 훈련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보였다. 시몬은 스파이크 서브 훈련을 하면서 송명근, 송희채, 심경섭 등 어린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혹시나 서브가 라인 밖으로 벗어나면 먼저 다가가 조언을 하기도 했다.

OK저축은행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라 패기가 충만하지만 그만큼 분위기를 잘 탄다. 하락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팀의 구심점이 될 선수가 없다면 성적이 곤두박질 칠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몬은 코트에 있는 선수들의 감정을 읽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대화로 호흡을 맞추려 애썼다.

“대표팀과 이탈리아 리그에서 주장을 맡은 경험이 많다 보니 리더십의 중요성이 몸에 배어 있어 팀원들을 이끌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편이다. 한국 무대 적응을 마치자마자 선수들이 제게 의지하고 저 역시 선수들에게 리더십 경험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시몬의 괴력 뒤에는 호흡, 승리, 헌신 등 세 가지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 [사진=KOVO 제공]

시몬은 인터뷰 내내 항상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 했다. 그의 올시즌 목표는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이었다.

“배구는 우선 한 팀이 움직이고 모든 팀원의 호흡이 맞아야 하는 운동이다. 오로지 팀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저는 팀을 위해 훈련하고 있고 팀의 승리를 원하고 있다. 또 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헌신할 준비가 돼 있다. 이 (호흡, 승리, 헌신) 세 가지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앞으로도 오로지 승리를 향해 뛸 것이다.”

◆ 클럽은 나중에, 팀 훈련이 우선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전을 앞두고 김세진 감독은 “시몬이 나에게 클럽에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 1라운드 끝나고 같이 가기로 했다”며 웃어 보였다.

시즌 중에 이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김 감독은 시몬의 성실함을 믿고 함께 클럽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시몬은 당장 클럽에 가지 않을 예정이다. 팀 상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곧 클럽에 가니 설레겠다”고 말을 걸었지만 시몬은 “팀 훈련이 먼저”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감독님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클럽 이야기가 나왔다. 감독님이 언론을 통해 1라운드를 마치고 가자고 했는데 훈련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당장 소화해야할 훈련이 많다면 훈련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클럽은 혹시나 시간이 되면 2~3라운드를 마치고 가겠다. 항상 팀 훈련이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 팀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시몬. 그의 올시즌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시몬은 마지막 소감에서도 팀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팀이 존재하기에 그가 코트에서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올시즌 팀이 계속 전진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바라기 보다는 팬들이 기억해주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취재후기] 훈련하는 내내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배구를 떠나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자상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기자가 만나본 시몬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맡은 임무에 우직하게 책임을 다하는 선수였다. 만약 시몬이 내년 시즌에도 OK저축은행 유니폼을 입게 된다면 주장 완장을 채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미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가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히카르도 포웰에게 선수단 주장을 맡긴 전례가 있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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