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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한국스포츠개발원 개혁 "스포츠과학연구 분야 독립성 보장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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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한국스포츠개발원 개혁 "스포츠과학연구 분야 독립성 보장돼야"
  • 신석주 기자
  • 승인 2014.03.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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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과학연구원 출신 이명현, 김병현 박사에게 듣는다

[300자 Tip!]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동안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산실 역할을 해온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명칭을 지난달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변경했다. 이와 함께 스포츠 연구는 물론 스포츠 산업 개발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34년간 엘리트 경기력 향상 연구와 체육지도자 양성 등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던 체육과학연구원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체육과학연구 분야의 독립성이 위태로워졌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이고 해결방안은 없는지, 그리고 해외 사례들을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출신 이명천, 김병현 박사를 통해 들었다.

[스포츠Q 신석주 기자] 한국체육과학연구원(KISS)이 2014년 시작부터 시끌시끌하다. 34년 동안 유지해온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라는 간판을 한순간에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바꿔 단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 KISS를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변경하면서 스포츠산업 육성 기능의 확대와 스포츠산업 융·복합화 등을 추구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앞으로 KISS의 스포츠과학 기능을 대한체육회로 이관시키고 스포츠산업진흥 기능을 KISS에 포함해 스포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기본 얼개인 듯하다.

▲ 기자가 지난 17일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을 방문했을 당시 이미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간판이 교체돼 있었다.

스포츠산업 분야를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이번 개편 과정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고 있는 곳은 바로 체육과학연구 분야다. 이 분야의 조직이 축소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KISS는 1980년 대한체육회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됐다. KISS의 조직 중에서도 스포츠과학실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선수, 코칭스태프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필요한 부분을 공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해 왔다.

지난 17일 기자가 KISS를 방문했을 때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간판이 교체되어 있었다. KISS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예전보다 무거웠다. 이에 스포츠Q는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출신의 이명천, 김병현 박사를 만나 조직개편에 따른 스포츠과학 조직 축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독립성 확보를 위한 해결방안, 그리고 해외 유명 연구원 사례 등에 대해 들었다.

두 박사는 이번 명칭 변경과 조직개편으로 인해 KISS는 체육과학연구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상당부분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특히 “명칭변경과 조직개편 등 일련의 변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현장 근무 직원들의 입장이나 상황, 의견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체육계의 공감대와 공론의 장도 없이 순식간에 절차가 진행됐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국내 유일의 스포츠과학 연구기관으로서의 독립적인 위상이 강화될 기회가 오히려 박탈당했다는 점도 안타깝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당시 모습.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한글 이름은 바뀌었지만 영문명(Korea Institute of Sport Science, 약칭 KISS)은 그대로다.

■ 이명천·김병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이번 스포츠개발원의 명칭 변경과 조직개편을 볼 때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명천 박사(이하 이)=  이번 변경의 가장 큰 문제점은 KISS 내외에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정치사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소통’이라는 화두가 변경 과정에서 없었다.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실체가 중요한 것이다. 문체부는 스포츠개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조직안을 개편하는 이유를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본 다음 변경해도 늦지 않았다.

김병현 박사(이하 김) = 왜 바꾸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현장에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점도 잘못된 부분이지만 이질적인 두 분야를 한데 뭉쳐 종합적으로 나아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안타깝다. 체육과학연구는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산업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알겠지만 과연 이 정책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체육과학연구도, 스포츠산업연구도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의 산실인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실험실.

 -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은 그동안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해 왔다. 두 박사님이 연구원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이=  KISS 재직 시절 수영 국가대표인 박태환을 전담하며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박태환을 위해 런던올림픽 출전 몇 개월 전부터 경기 전후에 맞춰 '맞춤형 스포츠 식단'을 짰다. 볶음밥 대신 비빔밥을, 육류 대신 생선으로 교체하는 등 기본적인 식단부터 교체했다. 이러한 변화가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나 많은 언론에서 ‘금메달리스트 식단’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한 순간이었다.

김= 30여 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의 심리 분석을 담당했다. 스포츠심리 부분은 특정한 선수를 전담하기보다 다양한 선수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체크하고 자신감 등을 고취시키기 위해 대화하는 등 교감이 중요한 부분이라 성과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 그래도 기억이 나는 선수는 장미란, 사재혁, 김수녕 등 역도, 양궁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심리 상담했던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이 기억이 난다.

- 해외에서는 체육과학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경험했던 사례를 알려 달라.

이= 이스라엘의 체육과학연구소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한국의 태릉선수촌과 같은 이곳에는 선수촌을 포함해 과학연구소, 체육대학, 호텔 등 모든 시설이 다 갖추고 있다. 가장 독특했던 점은 과학연구소에서 생활체육 강습이나 청소년 비만 교실을 개최하는 등 연구 성과를 일반 시민들과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국위선양을 하고 있었다.

김= 미국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한 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체계적이고 집약적인 내용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데 뭉쳐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과학연구의 본래 취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호주 역시 같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공청회 등을 통해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명천 박사.

 - 스포츠개발원의 현재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공청회를 통해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장을 비롯해 정책개발관련자, 체육과학연구원, 스포츠법학회 등 각 분야에서 참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현재 추진하는 체육과학과 산업이 종합적으로 함께 협력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서로의 공감 없이 변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서두르되 천천히 가야한다’는 영국 격언처럼 변화하기 전에 충분히 토의를 통한 교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김= 체육과학연구의 본질은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있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선수, 코칭스태프와 같이 생활하면서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연구원들이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선수들의 몸 상태, 심리, 생활방식 등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체육과학연구원이 다시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열렸던 한중일 3개국 스포츠과학 세미나가 생각난다. 일본스포츠과학연구원(JISS)의 이가미 연구소장이 "스포츠발전을 위해 체육과학연구와 산업, 정책을 각각 따로 분류해 진행하는 것이 좋다. 색깔을 분명히 하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정확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 체육과학연구의 본질은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있다고 강조하는 김병현 박사.

 ■ 이명천 박사는 누구?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이명천 박사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 하키 국가대표 출신으로 2002년 하키 경기임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하키협회 부회장과 선수위원회 스포츠인 권익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한국운동영양학회 회장 및 고문을 지냈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박태환의 스포츠식단을 구성해 금메달 획득에 일조하는 등 선수들의 스포츠 영양처방에 힘을 쏟아 왔다.

김병현 박사는 누구?

전북대 체육교육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1982년 당시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과학연구원에 들어가 30년동안 스포츠 심리학만을 연구했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긍정 심리를 심어줘 양궁 김경욱을 비롯, 역도 장미란 등이 금메달을 따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또한 30여년동안 국가대표 선수들의 심리 치료 및 연구 성과를 담은 <국가대표 심리학>을 발간하기도 했다.

[취재후기] 지난달 4일 문화연대는 “KISS의 명칭과 주요 기능은 독립적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한 체육과학연구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과 문체부의 스포츠산업 육성이라는 명분 모두 스포츠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서두르다 보면 탈이 날 수 있다.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과정을 거친다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chic423@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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