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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봉준호가 말하는 '기생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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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봉준호가 말하는 '기생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9.06.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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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한국 영화 그 자체'. 봉준호 감독에게 붙는 수식어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은 한국적인 맥락을 세계적 관점에서 담아내는 감독으로 사랑받아왔다. 그런 봉준호 감독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다. 

[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영화 '기생충'을 본 관객들이라면 봉준호 감독에게 궁금한 것이 가득하다. '스포일러 주의'를 외치면서도 거침없이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 한 봉준호 감독.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기생충을 '이상한 영화'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봉테일' 봉준호가 본 '기생충'은 어떤 영화일까?

# 칸이 본 '기생충', 봉준호의 생각은?

 

봉준호 감독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칸 영화제는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영화 '올드보이'로 감독상을, 배우 전도연이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와의 인연을 쌓았다.

그러나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봉준호 감독이 처음이다. 한국 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쾌거에도 정작 봉준호 감독의 반응은 담담했다. 칸에 가기 전 제작보고회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칸의 시선보다 영화를 보게 될 관객의 시선에 중점을 뒀다.

"제가 칸에 가기 전에도 엄살스럽게 이야기 했죠. (칸이 '기생충'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 거라고. 해외에서 먼저 공개되는 만큼, 국내 관객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 측면도 있었어요" 

영화 '기생충'은 국내 개봉 직전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됐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 내내 한국 관객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걔들은 봐도 100% 모를 거야'라고 말하곤 했죠. 한국 관객이 킥킥거리며 볼 수 있어요. 물론 칸 현장에서도 폭소와 박수가 등장했지만, 한국 관객만이 이해할 수 있는 뉘앙스들이 있었을 거예요. 또 말(대사)의 맛이 정교하니까, 그걸 한국인이 아니라면 잡지 못할 거예요. 자막에 의존하니까요."

영화 '기생충'이 해외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번역과 자막 작업을 담당했던 달시 파켓의 노고가 컸다. 달시 파켓은 한국 영화 전문 기자로 과거 씨네21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국적은 미국이고 모국어 역시 영어지만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한국어에도 능숙하다. 달시 파켓은 한국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인이기도 하다. 봉준호는 인터뷰를 통해 번역을 맡아 준 달시 파켓에게 감사함을 드러냈다.

"달시 파켓과는 '플란다스의 개' 부터 20여 년간 함께 했어요. 한국인인 부인과 함께 감수를 하세요. 한국어를 잘하는 미국인과,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 크로스 체킹을 하는 거죠. 미국 쪽 에이전트들이 영어 자막의 질이 좋았다고 호평하더라고요."

훌륭한 번역이 만나니 영화 '기생충'의 맥락이 더 살아났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배우 엘르 패닝은 봉준호 감독에게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엘르 패닝이 배우다보니, 배우들에 대한 찬사를 많이 했어요. 영화 '기생충'의 대사 템포가 적절하다고 하더라고요. 조여정 배우에 대한 칭찬도 있었고요. 여정 씨는 본인만의 연기 리듬이 있어요. 제가 하나하나 짚지 않아도 본인의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재밌었죠."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 이후 분위기는 어땠을까? 봉준호 감독은 "뜨거운 밤이었다"고 설명했다.

"틸다 스윈튼은 스크리닝 이후 칸을 떠나 뉴욕에 갔죠. 그런데 뉴스를 보고 페이스 타임을 연결해서 소리를 질러주더라고요. 스태프들과 함께 술을 먹었던 건 기억이 나요. 정신이 없었어요."

# '봉테일' 봉준호, 그가 설명한 '기생충' 속 상징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은 많은 상징이 겹겹이 쌓여있는 영화다. 영화를 본 이후 관객들 간 해석이 분분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세세한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감독인 만큼 영화 속 상징들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큰 상징은 수직과 하강의 이미지. 그리고 수평의 이미지다. 위치가 변하면서 각 캐릭터들의 감정선과 계급도 변한다. 

"'기생충'은 수직적인 배열의 영화예요. 첫 장면부터 카메라가 하강하죠. 반지하를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수직적인 이미지가 많다보니, 위아 아래를 잇는 계단이란 장치가 중요해요. 우리 스태프들끼리는 이 영화는 '계단 영화'야, 라고 하곤 했죠. 제가 본 영화에도 멋진 계단이 있는 영화들이 많더라고요."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은 '집'이다. 박 사장의 호화 저택부터 기택 가족의 반지하까지. 집은 영화 '기생충'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실제 건축물과는 다른 구조가 필요해요. 그 구조를 정리해서 미술 감독에게 줬죠. 그럼 미술 감독이 실제 건축가와 의논해 공간을 만들어요. 그런데 실제 집은 그렇게 짓지 않거든요. 그래서 많은 고민이 필요했어요."

영화 속 빈부의 차이는 '빛'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햇볕의 빈부격차가 있어요. 홍경표 촬영 감독님이랑 고민을 많이 했죠. 반지하는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 적어요.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에선 단 한조각의 햇볕이 나오죠. 이것 연출된 장면이에요."

봉준호 감독은 김기영 감독의 팬임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말해왔다. 김기영 감독은 실험적인 연출로 한국 영화의 지평을 열었던 감독이다. 영화 '기생충'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비슷한 구도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하녀'야 말로 걸작 계단영화죠. 당시 아역이었던 안성기 배우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며 비극이 시작되구요. 영화 속 하녀가 있죠.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의 화면 연출도 '기생충'의 매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보통 일반적인 영화는 1.85:1 (비스타 버전)으로 화면 비를 이룬다. 그러나 '기생충'은 가로 화면의 비율이 긴 2.35:1(시네마 스코프 버전)이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넓은  비율을 사용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화면 비에 대해 "넓은 화면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인물의 불안을 표현하기에 넓은 화면 비율이 어울려요. 클로즈업을 찍을 때 보면 양 옆 공간이 많이 남게 되고, 포커스가 나가기 마련이죠. 그럴 때 이상한 느낌이 있어요. 촬영 감독인 홍경표 감독도 '이 영화는 2.35:1 이겠지'라고 말하더라고요.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어요."

영화 '기생충'의 놀라운 화면 연출이 홍경표 촬영 감독의 공이 컸다면 영화 음악 연출은 정재일 음악 감독의 공이 컸다. 정재일 음악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옥자'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영화 '기생충'의 영화음악은 집중력을 우선시했어요. 바로크 음악 풍의 곡들이 많이 삽입됐죠. 저는 바로크 풍의 음악이 특유의 점잖은 척 하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톤이 영화와 잘 어울렸어요."

영화 개봉 이후 화제를 모았던 것은 일명 '짜파구리 씬'이라고 불리는 액션 장면이다. 영화 음악과의 절묘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해당 장면 역시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이 돋보였다.

"아주 미세한 박자까지 계산에 맞췄어요. 정재일 음악 감독과 재미있게 작업했죠. 제가 지휘자가 된 느낌으로요."

# 영화 '기생충'의 결말, '슬픈 희망'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의 결말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에게 여운을 선사했다. 기택의 아들 기우의 상상 장면인 엔딩 장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슬픈 희망이다"라고 설명했다.

"희망 자체를 나무랄 수 없죠. 그런데 실현 가능성이 낮다 보니 화면 밖에서 보면 슬퍼요. 공포 속에 떠오른 희망이죠."

영화 '기생충'은 호러 장르의 문법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계급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부자인 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며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이야기했다. 영화 '기생충'은 계급이 다른 두 가족이 사적 영역을 공유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가 타인의 사생활을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이 중요해요. 가깝고 밀착되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감이죠. 냄새의 모티브가 중요하고, 후반부의 비극을 관통하는 중심 상징이 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지하'도 계급을 상징하는 장치다. 반지하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주거 형태다.

"반지하야 말로 한국적이죠. 자막 번역할 때 적당한 단어가 없어 고민했어요. 반지하는 유럽, 미국에는 없는 주거 형태인데 그 느낌이 너무 묘해요. 완전 지하는 아니고, 왜인지 지상이라고 믿고 싶고. 계급적인 불안이 있어요.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아직은 지상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아래로 꺼져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처지와 어울리죠."

영화 '기생충'은 개봉 한 달 째인 현재 930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을 보고난 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일까? '기생충'은 영화를 본 이후 말 할 것이 많은 영화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한 코멘트가 궁금했던 이유다.

[취재후기] 영화 '기생충'의 특성상 인터뷰에서 스포일러가 빠질 수는 없다.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개봉 2주 뒤에 인터뷰가 나가면 좋을 것 같다"며 스포일러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제 '기생충' 개봉 한 달여가 지났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는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좋은 해설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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