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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최연숙-'5·18' 유나미-'자폐' 이동현, 광주세계마스터즈수영선수권대회가 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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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최연숙-'5·18' 유나미-'자폐' 이동현, 광주세계마스터즈수영선수권대회가 전한 감동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08.13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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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이제야 비로소 나를 되찾은 것 같다" (최연숙)

“5·18의 아픔과 슬픔에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유나미)

“물 속에서는 장애도 편견도 없다.” (이동현)

아마추어지만 그들이 전하는 감동은 프로 이상이다. 광주에서 한창 진행 중인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마스터즈수영선수권대회에선 갖가지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이 진한 여운과 감동을 자아내며 대회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12일 경영 경기가 열린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 주경기장에서는 한 60대 여성이 관중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70년대 중후반 한국 여자수영 ‘기록제조기’였던 최연숙(60) 씨가 37년 만의 역영을 펼쳤기 때문이다.

▲ 1970년대 중후반 한국 여자수영의 간판이었던 최연숙(사진) 씨의 37년 만의 역영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사진=광주세계마스터즈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연합뉴스]

2년 전 찾아온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아직 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최연숙 씨는 손을 있는 힘껏 내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난 6월이 되서야 뒤늦게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 하루 40분 이상 연습을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이번 대회 목표를 800m 완주로 정한 그는 첫 50m를 41초53, 100m를 1분28초82에 끊으며 함께 경기를 펼친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연령대도 다르고 각자의 기준기록도 달라 순위가 갖는 의미는 없지만 37년 만에 눈부시게 물살을 가른 그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최 씨는 결국 13분29초36의 기록으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선수 시절 세웠던 최고기록 10분5초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60대에 접어들어 37년 만에 세운 이 기록은 더없이 값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를 마친 뒤 최 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 순간 너무 행복하다. 37년 만에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물을 가르니 이제야 비로소 나를 되찾은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애초에 부담은 없었지만 자신과 약속했던 800m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해 뿌듯하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부담 없이 수영하면서 건강도 되찾고 삶의 활력도 얻겠다”는 그의 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유나미 씨는 5·18 광주 항쟁의 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사진=연합뉴스]

아티스틱 수영에서는 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한 한 여성의 몸짓이 광주 시민들을 울렸다. 포크 가수 정태춘의 노래 ‘5·18’에 유나미(41) 씨의 아름다운 몸짓이 더해지자 광주 항쟁의 역사는 아름다운 춤사위로 재창조됐다.

지난 8일 아티스틱 40~49살 부문 솔로 프리에 출전한 유 씨는 ‘5·18 곡을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번 대회 출전을 결심했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가볍게 입수한 그는 처음부터 격렬한 몸짓으로 1980년 5월 18일의 아픔을 표현했다. 구슬픈 곡조와 가사에 맞춰 혼신의 연기를 하던 유 씨는 '절규하는 통곡 소리를 들었소'라는 가사에 따라 머리를 부여잡고 절규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기도하는 포즈로 유 씨의 연기가 마무리되자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앞서 5일 테크니컬 솔로에서 판소리 '심청가'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연기를 펼쳐 1위를 한 유씨는 이날 또다시 정상에 오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나미 씨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고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2005년 은퇴한 그는 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이 노래 가사 중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라는 가사에 마음이 동해 14년 만에 출전을 결심하게 됐다.

국제대회인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유 씨는 저작권자 정태춘 씨 등을 설득해 곡 사용을 허락받았다.

▲ "물 속에서는 장애도 편견도 없다"는 이동현 씨의 말은 감동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사진=연합뉴스]

유 씨는 우승한 뒤 “5·18 아픔과 슬픔에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며 “아티스틱 종목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이런 (마음이) 광주 시민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한다”는 소감으로 감동을 전했다.

이번 마스터스대회는 나이, 참가 배경은 물론 장애 유무도 초월한다. 13일 열린 경영 경기에는 자폐 장애 1급 이동현(29) 씨가 출전했다.

7명이서 경기를 펼친 25∼29세 그룹 남자 자유형 100m에 참가한 그는 레이스 초반부터 2명의 상대와 선두권을 형성했고, 역주 끝에 1분4초50의 기록을 남기며 3위로 결승 패드를 찍었다.

어머니 정 씨는 “비장애인과 당당히 겨뤄 최선을 다했기에 오늘 경기에 만족한다. 오늘 경기를 통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씨는 14일에는 접영 50m, 15일에는 접영 100m(15일)까지 총 3개 종목에 나선다.

그는 1034명의 국내 참가선수 중 유일한 장애인이며 전 세계 참가자 4032명에서 중 3명뿐인 장애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물 속에서는 장애도 편견도 없다"는 이 씨의 말은 이번 대회가 갖는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수영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마스터즈대회에 참가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엘리트 선수들 못잖은 이야기로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감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지난 5일 개막한 이 대회는 오는 18일까지 14일간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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