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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뜨고 '댄스' 진 2019 여름, 계절송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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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뜨고 '댄스' 진 2019 여름, 계절송이 사라졌다?
  • 이승훈 기자
  • 승인 2019.09.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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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승훈 기자] 케이팝(K-POP) 팬들의 소비 패턴이 바뀐 걸까, 아니면 가요계 흐름이 변한 걸까. 대한민국 음원 차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여름에는 신나고 청량한 느낌을 자랑하는 댄스 음악이 강세이지만, 2019년 여름은 사뭇 달랐다.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멜로디, 슬픈 가사들이 주를 이루는 발라드가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절을 대표하는 이른바 ‘서머송’과 ‘윈터송’의 개념이 점점 흐릿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텔 델루나’ OST [사진=냠냠엔터테인먼트 제공]
‘호텔 델루나’ OST [사진=냠냠엔터테인먼트 제공]

 

◆ 드라마 OST의 습격… 계절 타지 않는 유일한 장르

올 여름 안방극장과 가요계는 tvN ‘호텔 델루나’가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월 첫 방송을 시작한 ‘호텔 델루나’는 드라마의 화제성은 물론, 방송 직후 공개되는 OST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았다.

먼데이 키즈와 10cm, 태연, 양다일부터 헤이즈, 청하, 거미, 레드벨벳, 벤, 폴킴, 송하예, 펀치까지. ‘호텔 델루나’ OST를 부른 가수 라인업이다. 사실 이들은 각자의 앨범으로도 대중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가수들이지만, ‘호텔 델루나’의 인기와 더불어 이들의 부드러운 음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호텔 델루나’ OST는 발매와 함께 음원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다.

‘호텔 델루나’ OST 성공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댄스곡 성수기인 8월, 멜론차트를 살펴보면 TOP10 내에 ‘호텔 델루나’ OST가 무려 네 곡이나 이름을 올렸다. 지니차트와 엠넷차트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각각 3곡과 5곡이 월간 차트 중 10위 내에 안착했다.

“평소 즐겨보는 드라마가 아닌 이상 작품의 분위기를 스포일러 당하는 느낌이어서 OST를 듣지 않는다”는 20대 J 씨 역시 “‘호텔 델루나’는 안 봤음에도 불구하고 OST를 직접 찾아서 들어봤다. ‘호텔 델루나’ OST를 부른 가수들이 좋기도 했고, 음원 차트 상단에 있어서 ‘얼마나 좋기에 계속 떠 있나’ 싶어서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호텔 델루나가 그렇게 흥했나?’ 싶을 정도로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OST들이 유명해지면서 ‘요즘 대세는 드라마 OST인가?’, ‘다른 드라마 OST도 이 정도로 좋은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드라마 OST가 이처럼 영향력이 컸던 시기는 꽤 오래 전이다. (멜론차트 기준) 드라마 OST가 온라인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17년 1월 tvN ‘도깨비’ OST인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이후 약 2년 7개월 만이다. ‘호텔 델루나’가 잠시 주춤했던 OST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셈.

 

2019년 8월 장르종합 월간 음원차트 [사진=멜론 공식홈페이지]
2019년 8월 장르종합 월간 음원차트 [사진=멜론 공식홈페이지]

 

◆ 쿨→씨스타의 부재가 부른 여름 댄스곡 실종 사건?

‘호텔 델루나’의 영향도 있지만, 2019년 여름 댄스곡이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름을 대표할 만한 가수들의 부재’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1994년 10월 ‘너이길 원했던 이유’로 대한민국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은 혼성그룹 ‘쿨’은 연이어 발매한 ‘The (Ku:l) : Love Is...Waiting’과 ‘Summer Story’ 등으로 여름에 더 큰 인기를 구가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듣기만 해도 여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룹명도 한 몫 했다.

특히 쿨이 올해로 데뷔 26년차를 맞이했는데도, 대표 히트곡인 ‘해변의 여인’과 ‘애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 ‘맥주와 땅콩’, ‘이 여름 Summer’ 등은 여름철 수영장과 해수욕장 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되기도.

쿨이 2000년대까지 여름을 책임졌다면, 다음 배턴을 이어받은 가수는 씨스타다. 지난 2010년 ‘푸시 푸시(Push Push)’로 데뷔한 4인조 걸그룹 씨스타는 특유의 시원한 매력과 독보적인 팀 컬러로 ‘여름 히트곡 메이커’로 눈도장을 찍었다.

씨스타가 ‘서머퀸’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앨범 발매시기를 봐도 알 수 있다.

2010년 6월 ‘푸쉬 푸쉬(Push Push)’, 2011년 8월 ‘쏘 쿨(So Cool)’, 2012년 6월 ‘러빙 유(Loving U)’, 2013년 6월 ‘기브 잇 투 미(Give It To Me)’, 2014년 7월 ‘터치 마이 바디(Touch my body)’, 8월 ‘아이 스웨어(I Swear)’, 2015년 6월 ‘셰이크 잇(SHAKE IT)’, 2016년 6월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

씨스타는 매 앨범마다 여름에 해당되는 6~8월에만 활동했다. 비록 씨스타는 지난 2017년 5월 발매한 ‘론리(LONELY)’를 끝으로 그룹의 공식적인 해체를 알렸지만, ‘여름=씨스타’의 공식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트와이스, 레드벨벳 [사진=스포츠Q(큐) DB]
트와이스, 레드벨벳 [사진=스포츠Q(큐) DB]

 

이후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현재 공석인 ‘서머퀸’, ‘서머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레드벨벳이 ‘빨간 맛(Red Flavor)’으로 2017년 여름을, 트와이스가 ‘댄스 더 나이트 어웨이’로 2018년 여름을 책임졌다. 그러나 두 그룹은 매 앨범마다 꾸준히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었기에 여름을 겨냥한 ‘서머그룹’ 이미지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케이팝을 즐겨듣는 30대 P 씨 역시 “여름을 대표하는 콘셉트가 있으면 궁금해서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게 된다”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팬덤이 강한 아이돌들의 활약이 커지면서 ‘서머송’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는 것 같다. 사실 이제는 계절에 걸맞은 노래를 찾아 듣는 게 무의미하다. 계절 노래를 듣더라도 신곡보다는 과거 히트곡들을 즐겨 듣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사재기 의혹은 ing… “정당성을 끼워 맞추는 느낌”

“감성 발라드나 정통 발라드의 강세가 여름 노래를 잊게 해준 건 아닐까?”

앞서 ‘아이돌 음악의 활약’을 언급했던 P 씨가 서머송 약세의 또 다른 이유로 ‘여름철 발라드’를 손꼽았다. 실제로 (멜론차트 기준) 지난 7월 장르종합 월간차트를 살펴보면 상위권인 5위 내의 모든 곡 장르는 발라드다. TOP5가 전부 댄스곡이었던 지난해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사실 장르와 상관없이 좋은 곡은 사랑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재기 의혹’을 또 다시 제기했다.

한 가요 관계자 H 씨는 “대중들에게 아직까지 ‘아이돌 음악’이라는 장르에 선입견이 있다. 유명 아이돌 앨범에도 명곡이 많지만, 발라드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야 ‘저 사람은 음악성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며 사재기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댄스곡은 주로 20-30대가 많이 소비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발라드는 조금 더 대중적인 느낌이 강하고 연령층 상관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장르예요. 때문에 아이돌 음악이 차트 1위를 하면 다소 부정적으로 쳐다보지만, 발라드 가수 노래가 정상을 차지하면 ‘역시’라는 반응이죠.”

또한 그는 “우선 사재기를 하고 정당성을 만드는 분위기”라면서 “먼저 차트 상위권에 노래를 안착시켜 놓은 뒤 다양한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사재기 이미지를 지우는 것 같다. 실시간 음원 순위 그래프 추이가 안정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명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차트 1위를 자연스레 합리화시키는 느낌도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발라드가 여름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과 반대로, 올 겨울에는 댄스곡이 부활할 수 있을까?

H 씨는 “그렇지는 않다”면서 “이미 가요계에는 사재기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계절과 상관없이 발라드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털어놨다. 이어 “발라드는 워낙 대중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일부 관계자들은 발라드 앨범 사재기에 큰 부담이 없는 것 같다”면서 현 가요계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물론 듣는 이들의 취향에 따라 인기 장르는 시시각각 변할 수 있지만, 일부 음원에 대한 각종 의혹과 부정적인 시선이 쏟아지면서 케이팝 시장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하면서 본인만의 음악적 역량을 자랑하는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노래할 수 있는 가요계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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