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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 달인' 정정용 감독, '꼴찌' 이랜드FC서 그리는 큰 그림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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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 달인' 정정용 감독, '꼴찌' 이랜드FC서 그리는 큰 그림 [SQ초점]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12.05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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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정정용(50) 감독이 마침내 프로 사령탑으로 출발한다. 최근 2년 연속 K리그2 ‘꼴찌’에 머문 서울 이랜드FC를 택한 이유는 뭘까. 그가 잠실에서 그리려는 비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랜드 전신 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창단 멤버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해 주장도 역임했던 정 감독이 친정에 돌아왔다. “(친정 팀이다보니) 정에 끌린 것도 없잖다. 축구는 간절함이 중요하다. 축구를 잘 모르는 장동우 대표이사의 간절함을 느꼈고, 내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정 감독은 이랜드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랜드는 5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 그랜드스테이션홀에서 정정용 감독 취임식을 열고 앞으로 지향할 방향성을 설명했다. 늘 새 수장과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출발했지만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았던 그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오가 남다르다.

정정용 감독이 친정팀 이랜드FC에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 정정용, 친정에서 프로감독 데뷔하는 이유

정정용 감독은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끝난 후 이랜드뿐만 아니라 해외 등 많은 팀에서 오퍼가 왔던 게 사실이다. 한국축구의 뿌리를 만들어가는 육성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갖춰지게 되면 박수 칠 때 다른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첫 단추를 어디서 껴야 할지 고심했다. 선수들이 간절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년 연속 꼴찌라 내려갈 곳이 없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동우 대표이사는 어떻게 ‘대어’ 정 감독을 낚은걸까.

장 대표이사는 “축구단을 이해하고자 많은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구동성으로 문제점을 이야기해줬는데, 단기성과에 급급해 감독에게 시간을 주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고, 적합한 지도자를 고민했다”며 “매년 감독을 교체하는 이미지가 퍼져 있었다. 이해하고 설득하기 어려웠다. 딱 맞는 정 감독을 모시고자 계속 따라다녔다. 그룹에서 시간을 두고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정 감독에게 어필했다. 파주, 목포, 대구 집까지 쫓아다녔다”고 했다.

6월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 이랜드는 정 감독 영입에 공을 들였다. 이랜드에서 데뷔해 1994년부터 3년 동안 우승트로피 11개를 들어올렸던 그는 구단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 “상무 입대도 미뤄가며 팀에 남았다. 유학을 보내줄테니 플레잉코치를 해달라는 부탁도 받았었다. 프로화를 줄곧 추진했던 팀이었지만 갑작스럽게 해체됐던 아픔도 있다. 이제는 이랜드가 다른 팀이 돼야 한다”면서 친정 팀을 한국축구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업구단으로 변모시키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장동우 대표이사는 정정용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 정 감독이 이랜드에서 그리는 비전

이랜드는 정정용 감독에게 5년 계약을 제안했지만 정 감독은 3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3년이면 충분히 이랜드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그 시간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본인에게 문제가 있으니 더 함께할 수 없다는 것.

정 감독은 “프로는 결과+육성이다. 육성은 투 트랙(Two tracks)으로 가야 한다. 성인 팀 선수들을 좀 더 발전시키는 게 첫 번째고, 유소년 팀(U-12·15·18) 육성 프로세스를 갖추는 게 두 번째”라며 육성을 강조했다.

대한축구협회(KFA) 전임지도자 생활을 오래 한 그는 이랜드에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선수단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런트도 함께 견뎌내야 한다는 것.

“경일대와 이랜드에서 창단 멤버로 뛰어본 경험이 있다. 1년차는 리빌딩의 시간이다. 재창단이라는 마음으로 할 것이고 구단도 마지막이라는 각오다. 내가 왔다고 해서 바로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한다던지 팀이 확 바뀌진 않을 것이다.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켜봐주시면 변화를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구단은 창단 초기 때 같은 수준의 지원을 약속했다. 정 감독은 육성 전문가다운 현실적인 비전을 꺼내놓았다. “20, 21, 22세 이 나이대에 R리그에서 뛰는 K리그1(1부) 팀 소속 좋은 선수들이 많다. 그런 선수들의 임대를 고려하고 있다. 2014년 대구FC에서 수석코치를 해봤는데 신구조화 역시 중요하다. 단 젊게 가는 게 콘셉트”라고 했다.

U-20 월드컵 준우승 신화를 함께 쓴 스태프들과 호흡을 맞출 계획이다. “프로 감독 경험을 안 해봤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경험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따라서 기존 스태프들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랜드FC에는 최근 두 시즌동안 전력분석관이 없었다. U-20 월드컵을 함께했던 임재훈 전력분석관을 전술코치로 데려오고 이랜드 지휘봉을 잡은 바 있는 인창수 코치도 합류할 예정이다.

정정용 감독이 K리그2 최하위 팀 이랜드에서 그리는 비전이 궁금하다.

◆ 감독보다 매니저, 궁극적인 목표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 가다보면 성적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는 정정용 감독의 말에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그는 감독(Head coach)보다 단장(manager)에 가까운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그는 “원래 윗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걸 잘 못한다. 하지만 이랜드를 위해서 그룹 회장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라고 밝혔다. “구단과 싸울 일도 많을 것이다. 성적을 내진 못하더라도 팀 체질을 바꾸는 족적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는 게 그의 궁극적인 목표다. 경기력 뿐만 아니라 구단 자체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랜드에 부임한다고 하자 정 감독 아들이 “괜찮겠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U-20 월드컵을 통해 명예를 얻었다. 지난 2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9년을 빛낸 아시아 최고의 감독으로 공인받은 셈이다. 정 감독 취임 소식에 큰 기대가 따르는 것만큼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도 만만찮을 터다.

정 감독은 “잘되는 팀, 이미 갖춰진 팀은 재미가 없다.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U-20 대표팀도 시작은 불완전했다”면서 “(내년) 6월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전술적인 색채를 낼 수 있을 거라 본다. 가능성을 보여주면 팬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눈 앞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데 급급하기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하겠다는 그에게도 구체적인 목표는 있다. “서울 더비를 한 번은 해보고 싶다”며 “우리 팀이 K리그1에 승격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선수들이 팀에서 성장해 K리그1으로 점프할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는 성적과 육성 둘 모두 잡고 싶다는 각오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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