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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4위의 반란', 여자농구 재미를 알리다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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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4위의 반란', 여자농구 재미를 알리다 [WKBL]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3.16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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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정규리그 4위 용인 삼성생명이 1, 2위를 연달아 제압하고 여자프로농구(WKBL) 정상에 섰다. 관계자들과 팬들 사이에선 남자프로농구(KBL)를 포함해도 근 몇년간 최고의 챔피언결정전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생명이 한국 프로스포츠사를 새로 썼다. 아산 우리은행-청주 KB스타즈 양강 구도를 깨고 만든 우승이라 의미를 더한다.

임근배 감독이 이끄는 삼성생명은 15일 경기 용인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KB국민은행 리브 엠(Liiv M) WKBL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5차전에서 KB를 74-57로 물리쳤다.

3승 2패로 우승한 삼성생명은 2006년 7월 여름리그 이후 14년 8개월 만에 여자농구 패권을 탈환했다. 삼성생명은 그동안 챔피언결정전에 7차례나 올랐지만 매번 준우승만 했다. 4위로 도전장을 내민 올 시즌 7전 8기 끝에 웃었다. 통산 6번째 우승이다.

1998년 출범한 WKBL에서 정규리그 4위 팀이 챔피언결정전 트로피를 가져간 건 올해가 처음이다. 또 정규리그 승률 5할 미만(14승 16패)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하는 기록도 최초로 세웠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야·축·농·배구를 통틀어도 두 번째 있는 일. 1986년 프로축구 축구 대제전에서 포항제철이 춘계와 추계 리그 합산 5승 8무 7패를 기록하고도 춘계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정상에 오른 이후 35년 만이다.

정규리그 4위 삼성생명이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WKBL 제공]

플레이오프(PO)에서 우리은행을 꺾은 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1, 2차전 연속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킨 삼성생명은 원정에서 열린 3, 4차전을 내줬지만 다시 안방에서 진행된 5차전을 따냈다. 홈 이점을 제대로 살렸다. 김한별이 22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배혜윤(15점), 김보미, 김단비(이상 12점) 등도 고루 득점했다.

KB는 정규리그 전 경기 더블더블을 달성하며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쥔 박지수가 17점 16리바운드로 분전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모두 한 자릿수 득점에 그쳐 2년 만의 왕좌 탈환에 실패했다.

6개 구단이 경쟁하는 WKBL에서 4위는 하위권에 속한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는 3위까지만 PO에 나갈 수 있었다. 올 시즌부터 PO가 4강 체제로 바뀌면서 삼성생명도 '봄 농구'를 할 수 있었다. 지난해 최하위로 마친 삼성생명이 실낱 같은 희망을 살린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선수가 없다는 변수도 한 몫 했다. 일찌감치 4위를 확정하자 '벌떼 농구'로 포스트시즌에 대비했다.

2015년 4월 지휘봉을 잡은 뒤 감독 인생 첫 우승을 달성한 임근배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나. 끝까지 뛰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라며 짧지만 묵직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2승 뒤 2패를 당하면서 역스윕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땀 흘려서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더 미쳐보자고 생각했다"며 "PO에서 우리은행을 잡았을 때 선수들이 1, 2차전을 버티고 3차전에서 상대를 포기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챔프전에서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임근배 감독이 삼성생명 지휘봉을 잡고 5년 만에 정상에 섰다. [사진=WKBL 제공]

'자율 농구'를 추구하는 임근배 감독은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시즌을 치르면서 나아졌다. 60∼70% 수준"이라며 "우리 선수들이 한 번 우승을 맛봤는데, 앞으로 지키는 건 10배, 20배 더 어렵다. 기조를 유지하면서 다음 시즌에는 더 디테일하고 단단한 팀이 돼야 한다"며 다음 시즌에 임할 각오도 덧붙였다.

챔피언결정전 MVP 영예는 삼성생명 '별브론' 김한별에게 돌아갔다. 한국 진출 후 12년 만에 처음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함께 MVP 기쁨을 누렸다. 챔프전 5경기 평균 20.8점을 넣었고, 수비에선 박지수를 상대했다. 공수에서 맹활약한 결과 기자단이 던진 85표 중 66표를 챙겼다.

2009년 한국 무대에 입문한 김한별은 미국인 아버지를 둔 혼혈 선수다. 처음에는 킴벌리 로벌슨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활약하다 2011년 한국 국적을 얻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꾸준히 활약 중이다. 특히 지난해 2월 세르비아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예선에서 12년 만의 본선행에 큰 힘을 보탰다.

김한별은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낸 동료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며 "오늘은 마지막 경기라 더 뛸 수 있었다. 배혜윤이 '오늘도 연장 갈지 모르니 지치지 말자'고 얘기해줘 나도 신경쓰고 경기에 임했다"고 밝혔다.

키 178㎝ 김한별은 이번 시리즈 내내 자신보다 20㎝ 가까이 더 큰 박지수(196㎝)를 막느라 고생했다. "박지수를 막는 건 재밌는 일은 아니다. 게다가 상대는 크고, 나는 더 나이가 많아 더욱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MVP는 '별브론' 김한별(왼쪽)에게 돌아갔다. [사진=WKBL 제공]
김보미가 찬란한 순간을 맞으며 은퇴했다. [사진=WKBL 제공]

또 삼성생명 우승에 있어 은퇴를 앞둔 '맏언니' 김보미 투혼을 빼놓을 수 없다.

올 시즌 정규리그 30경기에 모두 나서 평균 21분 17초를 뛰며 6.9점 4.2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기록한 김보미는 포스트시즌에 남은 힘을 모두 불태웠다. 봄 농구 들어 8경기에서 평균 32분 26초를 뛰며 11.6점 4.6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생산했다. 앞서 "이번 PO가 선수생활 마지막 PO일 수도 있다"고 했던 김보미는 챔프전 우승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김보미는 우승을 확정한 뒤 "실감 나지 않는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앞서 두 번 우승했는데 한 번은 신입이라 뛰지 못했고, 두 번째는 식스맨이었다. 주전으로 뛰며 우승한 건 처음"이라며 "좋은 감독과 코치, 팀원들을 만나 고맙다. 네 차례 수술을 받고 부상했던 순간들은 잊고 싶다"고 밝혔다.

후회 없이 뛴 만큼 뒤는 돌아보지 않겠다는 그다. 은퇴 번복 가능성을 묻자 "당분간 농구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다. 번복은 없다. 아름답게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며 "은퇴 후 1년 정도 미국에 가 있으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우선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김보미는 끝으로 함께 뛴 후배들에게 "마지막 가는 길을 찬란하게 만들어줘 고맙다. 해준 건 없고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앞으로 농구 인생은 길다. 부담 없이 즐기면서 농구를 하기 바란다"고 애정이 어린 조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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