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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누명에 손해배상 0원"… 꼬꼬무2, '7번방의 선물' 사연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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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누명에 손해배상 0원"… 꼬꼬무2, '7번방의 선물' 사연 조명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1.04.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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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지원 기자]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고(故) 정원섭 씨의 억울한 사연이 방송을 통해 재조명됐다. 경찰 고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 2개월 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 씨의 이야기에 모두가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2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는 '조작된 살인의 밤 - 연필과 빗 그리고 야간비행'이라는 부제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사연의 주인공 정원섭 씨의 사연을 다뤘다.

이야기는 1972년 강원도 춘천으로 향한다. 당시 관내 파출소장의 초등학생 딸 윤소미(가명) 양이 논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성폭행을 하려다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겁도 없이 경찰 가족을 건드린 범인을 꼭 잡겠다며 동네 남자란 남자들을 모조리 연행하기 시작했고, 피해자의 집과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원섭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정원섭 씨는 곧 무사히 풀려났으나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은 "재호(정원섭 씨의 아들) 아빠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정원섭 씨를 다시 체포해갔고 이틀 뒤 대대적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 범인은 만화가게 주인 정원섭으로 밝혀졌다"는게 주요 내용이었다.

경찰은 정원섭 씨의 아내 출산을 도우며 정원섭의 속옷 빨래를 했고, 속옷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는 옆집 아줌마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빗이 자신의 잃어버린 빗이고, 분실한 후 정원섭이 사용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한 만화가게 두 미성년자 여종업원을 증인으로 들었다.

마지막 증인은 정원섭 씨의 아들 재호였다. 재호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이 자신의 것이며 아버지가 장부 정리할 때 종종 사용했다고 증언했고, 정원섭 씨조차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며 모든 수사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충격적인 진실은 정원섭 씨의 무기징역 수감 중 속속들이 밝혀졌다. 정원섭 씨는 재판 때부터 자신은 당일 윤소미 양을 본 적도, 그 누구를 강간한 적도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이어 정원섭 씨는 아내에게 몰래 수감일기를 전했고, 그 안엔 경찰 조사 동안 경찰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당해 거짓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는 토로가 담겨 있었다.

수감된 정원섭을 돕기 위해 찾아왔던 이범렬 변호사는 당시 수사 기록을 살피던 중, 시신 발견 당일 작성된 사건 현장 지도에서 이미 정원섭을 피의자라고 명시하고 있었던 점, 그리고 국과수 감정 결과는 사건 발생 보름 후에 나왔으나 수사 첫날 문건에는 이미 국과수 감정 결과를 명시하고 있었던 점 등으로 사건 조작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내무부 장관 김현옥이 경찰에 열흘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고, 경찰들이 이에 쫓겨 증거를 조작했을 뿐만 아니라 증인들을 협박해 거짓 증언들도 받아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담당 수사관들은 사건의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1계급 특진이나 내무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이범렬 변호사는 의심스러운 정황과 증거를 모두 모아 법원에 제출했으나 2심의 판결 역시 무기징역.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증거 조사는 적법했다며 정원섭 씨의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하루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 자신의 무죄를 밝히겠다는 생각으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던 정원섭 씨는 15년 2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이범렬 변호사가 생전 남긴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으로 재심을 준비했다. 재심 준비 과정에서 현장 증거였던 연필이 사실 노란색 연필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경찰이 아들의 증언을 노리고 증거품을 바꿔치기 했던 것.

하지만 재심도 순탄치 않았다. 재판부가 30년 만에 진술을 번복한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원섭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 결국 정원섭 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최후의 도움을 요청했고, 2008년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당시 그를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했던 경찰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했고, 재판부도 7년의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며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정원섭 씨가 국가로부터 4차례 분할 지급받은 형사 보상금 9억5000만 원은 전부 그동안 진 빚을 갚는데 쓰였다.

이후 정원섭 씨는 본인과 가족들이 받은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1심에서는 26억 원 배상 판결이 났다. 하지만 3년이던 소명 시효가 6개월로 축소됐고, 여기서 10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는 배상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판결이 났다.

정원섭 씨는 2심 판결 이후 끝내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한 채 뇌출혈로 쓰러졌고 치매 까지 앓게 됐다. '꼬꼬무' 제작진은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던 정원섭 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기억을 잃었지만 무죄를 받았을 때의 기분, 고문에 대한 기억은 잊지 못한 정원섭 씨는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끔찍했던 고문의 순간을 증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방송에서는 정원섭 씨가 고문 후유증으로 지병을 앓던 중 합병증으로 결국 방송 녹화 얼마 전인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향년 87세.

이날 장트리오가 전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분노한 김진수는 "같이 분노해 드리는 것, 그것 밖에는 해 드릴 수 없는 게 너무 화가 난다.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 게 이제 와서 알고 울고 한다는 게 죄송하다. 이런 이야기를 우린 왜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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