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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UCL 우승, 9년 전과 평행이론 [김의겸의 해축돋보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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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UCL 우승, 9년 전과 평행이론 [김의겸의 해축돋보기(17)]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5.3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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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해버지(해외축구의 아버지)'로 통하는 박지성이 지난 2005년 7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진출한 이래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주말마다 해외축구에 흠뻑 빠져듭니다. 그 속에서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울 법한 이야기들을 인물을 중심으로 수면 위에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고성능 돋보기를 갖다 대고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편집자 주]

첼시가 9년 만에 다시 유럽 정상에 섰습니다. 최근 10년을 돌아보면 '레바뮌(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말 뒤에 첼시의 '첼'을 붙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지난 10시즌 동안 레알이 4회, 뮌헨과 첼시가 2회, 바르셀로나가 1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우승했습니다. 나머지 트로피 하나는 리버풀이 챙겼습니다.

첼시는 30일(한국시간) 포르투갈 포르투의 드라강 경기장에서 열린 2020~2021 UCL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를 1-0으로 꺾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리그컵 더블(2관왕)을 달성한 맨시티 우세가 점쳐졌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습니다.

2011~2012시즌 디디에 드록바, 프랭크 램파드, 존 테리 등 구단을 잉글랜드 최강팀 반열에 올린 레전드들과 함께 대회를 처음 제패했을 때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시즌 중반 감독이 바뀌었고, 시즌 내내 기대에 못 미쳤던 몸값 높은 공격수가 결정적인 골을 기록했습니다. 또 결승에서 객관적 전력 열세를 뒤집었죠.

토마스 투헬 감독이 이끄는 현재의 첼시와 9년 전 첼시가 어떻게 닮았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첼시가 9년 만에 UCL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11~2012시즌 첼시 UCL 우승 멤버. [사진=EPA/연합뉴스]
2011~2012시즌 첼시 UCL 우승 멤버. [사진=EPA/연합뉴스]

◆ 소방수 등장, 그리고 유럽 제패

첼시는 2011~2012시즌 앞서 당시 34세 나이로 FC포르투(포르투갈)에서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하고, UEFA 유로파리그(UEL)까지 휩쓸며 '제2 무리뉴'로 불린 안드레 빌라스 보야스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허나 첼시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 보야스 감독은 리그에서 부진을 거듭하다 2012년 3월 경질됩니다.

공격축구를 표방했지만 실패한 첼시는 로베르토 디 마테오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고 수비축구로 회귀, 팀을 수습합니다. UCL 16강 1차전 나폴리(이탈리아)에게 당한 1-3 패배를 설욕하더니 4강에선 리오넬 메시와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가 버티는 최강 바르셀로나(스페인)를 제압하죠. 결승에선 뮌헨(독일)과 연장 접전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FA컵까지 더블을 달성하는 기적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디 마테오 감독대행은 UCL 우승 성과를 인정받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지만 2012~2013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 탓에 8개월 만에 경질되고 맙니다.

이번엔 투헬 감독이 소방수로 나섰습니다. 구단 레전드인 램파드 감독 부임 2년차 앞서 첼시는 2억 유로(2700억 원)가 넘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들여 팀을 리빌딩합니다. 지난 2년 동안 UEFA로부터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영입금지 징계를 받은 탓에 팀은 노쇠화 됐고, 이름값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램파드 감독이 젊은 선수들 위주로 첫 시즌 좋은 성적을 냈고, 징계가 끝나자마자 힘을 실어준 것이죠.

하지만 첼시는 리그 중위권까지 추락했고, 직전 시즌 '스타군단' 파리 생제르맹(PSG)을 이끌고 UCL 준우승 성과를 냈던 투헬 감독에 지휘봉을 맡깁니다.

2011~2012시즌 중간에 감독대행으로 팀을 유럽 정상에 올린 디 마테오. [사진=EPA/연합뉴스]
2011~2012시즌 중간에 감독대행으로 팀을 유럽 정상에 올린 디 마테오. [사진=EPA/연합뉴스]
토마스 투헬 첼시 감독이 소방수로 나서 같은 동화를 썼습니다. [사진=AP/연합뉴스]
토마스 투헬 첼시 감독이 소방수로 나서 같은 동화를 썼습니다. [사진=AP/연합뉴스]

◆ 투헬, 첼시를 '천당'으로

투헬 감독 부임 후 첫 14경기 무패(10승 4무)를 달리며 반등합니다. 스리백을 중심으로 램파드 체제에서 문제가 됐던 수비 불안 문제를 해소했습니다. 투헬 감독 부임 후 29경기에서 16실점만 허용했습니다. 빌드업 과정에서 끊임 없이 삼각형 구도를 만드는 철저한 포지션 플레이로 차근차근 승수를 쌓았습니다. 

결승에서도 경기를 지배하기로 유명한 맨시티를 상대로 점유율 4-6, 패스 숫자 역시 400-600 수준으로 맞섰습니다. 슛은 8-7로 첼시가 많았습니다. 공은 주로 맨시티가 가졌지만 첼시도 공을 소유했을 때 효율적으로 반격했다는 뜻입니다. 후반 25분 이후에는 첼시가 내려앉아 수비에 집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첼시가 얼마나 잘 싸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9년 전 첼시도 프랭크 리베리, 아르연 로번, 토니 크로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필립 람 등 최고 라인업을 갖춘 뮌헨을 물리쳤습니다. 경고누적, 퇴장 등 징계로 테리, 라울 메이렐레즈 등 주전급 4명이 빠진 상황에서 이 대신 잇몸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궜죠.

올 시즌 리그에서 막판 부침을 겪으며 겨우 4위를 차지하고,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도 뺏겼지만 UCL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다음이 더 기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0년간 첼시를 맡은 감독은 투헬 감독까지 총 10명으로 평균 재임기간이 1년에 불과합니다. 감독이 단명하기로 유명한 첼시에서 투헬 감독이 새 왕조를 구축할 수 있을까요. 유럽 제패에 만족하지 않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를 위시로 한 첼시 수뇌부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거금을 지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2011~2012시즌 바르셀로나와 UCL 4강 2차전에서 그동안 설움을 털어낸 페르난도 토레스. [사진=AP/연합뉴스]
2011~2012시즌 바르셀로나와 UCL 4강 2차전에서 그동안 설움을 털어낸 페르난도 토레스. [사진=AP/연합뉴스]
하베르츠 역시 올 시즌 기대에 못 미쳤지만 점점 경기력이 좋아졌고, UCL 결승에서 일을 냈다. [사진=AFP/연합뉴스]
하베르츠 역시 올 시즌 기대에 못 미쳤지만 점점 경기력이 좋아졌고, UCL 결승에서 일을 냈다. [사진=AFP/연합뉴스]

◆ '첼램덩크' 하면 일시불 상환

2012년 첼시는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났습니다. 불과 2년 전인 2009년 4강에선 첼시가 우위를 점하고도 보상판정으로 평가받는 판정들과 오심으로 얼룩진 접전 끝에 패하는 아픔을 겪었죠. 2차전 후반 추가시간 이니에스타에 극적인 중거리슛 결승골을 헌납하면서 좌절했습니다. 당시 드록바와 미하엘 발락이 주심을 향해 소리치며 열변을 토하던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그렇게 악연이 깊은 바르셀로나와 2년만에 다시 준결승에서 만났고, 주인공은 페르난도 토레스였습니다. 2011년 겨울 이적료 5000만 파운드(785억 원)라는 거액에 첼시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후 1년 넘게 리버풀에서 보여주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먹튀' 오명까지 입습니다.

홈경기 1차전에서 1-0 승리를 챙긴 첼시는 2차전 도중 센터백 테리가 퇴장 당하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10명이서 후반전을 보내면서 1-2로 지고 있었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가까스로 앞선 상황에서 수세에 몰리게 되죠. 골이 절실한 바르셀로나는 추가시간 수비까지 전원 하프라인 위로 올라서 공격을 퍼부었는데요. 이때 공을 탈취한 첼시가 전방으로 공을 걷어내자 토레스가 하프라인 아래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해 일대일 기회를 만들더니 골키퍼를 제치고 득점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습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 이른바 '일시불 상환 골'로 기억되는 장면입니다. 몸값을 못 하던 토레스가 가장 중요한 순간 '한방'에 그간 부진을 씻어낸 골로 평가됩니다. 토레스를 유명한 일본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에 빗대면서 '첼램덩크'라는 명'짤'이 탄생한 때이기도 합니다.

이번엔 카이 하베르츠가 토레스 역할을 대신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1999년생 독일 신성 하베르츠는 올 시즌 리그 27경기에서 4골 3도움에 그쳤습니다. 앞서 두 시즌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도합 29골을 작렬한 것과 대조적이었죠. 첼시가 무려 이적료 8000만 유로(1080억 원)를 들여 야심차게 영입한 전천후 공격수지만 이날 결승전 전까지 UCL에선 한 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투헬 감독은 그에게 꾸준히 신뢰를 보냈고, 이날도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그림 같은 침투로 올 시즌 대회 첫 골을 결승전 결승골로 장식하고, 주인공이 됐으니 토레스가 떠오를 만도 합니다.

첼시가 이번 UCL에서 우승하며 얻은 누적 상금이 8000만 유로라고 하니 하베르츠가 일시불을 상환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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