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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박지성 테러, '무지성 댓글'의 폭력성 [SQ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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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박지성 테러, '무지성 댓글'의 폭력성 [SQ이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6.10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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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멀티플레이어’의 대명사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축구계는 물론이고 팬들까지도 슬픔에 빠져 있는 이 때 엉뚱한 곳으로 불이 옮겨 붙고 있다.

또 다른 한국 축구 전설 박지성(40)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가 그 대상이 됐다. 비판의 근거는 함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한 인연이 있는 고인의 빈소를 찾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의 개인적인 행동에 비판을 삼는 게 합당한 것일까. 논리적으로는 정당한 이야기일까.

박지성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가 유상철 전 감독의 빈소를 찾지 않아 때 아닌 공격을 받고 있다. [사진=전북 현대 제공]

 

2002 월드컵 4강 신화는 축구계와 축구팬들만의 기쁨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열광했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선수들에게 힘을 보탰다. 그 중심에 있었던 유 전 감독이기에 다른 어떤 스타들의 비보보다도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어떤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눈물을 흘렸는지는 대중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고인을 떠올리는 것 또한 유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황선홍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 안정환 현영민 해설위원,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병지, 사회공헌위원장 이천수,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등이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시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보이지 않았다. 일부 축구 팬들 사이에선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억측이 일기도 했고 화살은 박 어드바이저를 향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한 이들이기에 축구 팬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둘이기에 박 어드바이저의 불참은 축구 팬들 개인적으로는 못내 아쉬운 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도를 넘어서는 이들이 있다는 것. 빈소를 찾은 이는 ‘유상철의 친구’, ‘의리의 아이콘’으로 평가를 받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천하의 배은망덕한 사람’, ‘인간적인 도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유상철 전 감독(오른쪽부터)과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으로 각별한 인연을 자랑한다. [사진=연합뉴스]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매체는 물론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발히 하지 않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수시절부터 개인적인 일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왔고 은퇴 후에는 더욱 그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를 대신해 화살은 그의 아내인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에게 향했다. 그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찾아 관련도 없는 영상에 악플을 달았다.

결국 김민지 씨는 참지 못했다. 영상에 댓글 창을 닫았고 긴 글로 그동안 쌓아온 생각을 풀어냈다. 김 씨는 “이런 일이 저에게 처음은 아니”라고 글을 시작하며 “남편의 노력을 성실을 친분을 슬픔을 한 인간의 삶을 취재해 중계하고 증명하라는 메시지들. 그 중에는 본인이 접한 부분적인 기사나 인증샷이 세상의 전부라고 인식하고 있는 유아기적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황당한 요구가 대부분이라 응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어 “유감이지만 저는 인증을 위한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남편이 어떤 활동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법적 도의적 윤리적 문제가 없는 개인의 영역을 누군지도 모르는 그분들에게 보고해야 할 이유가 저에게나 남편에게 도무지 없다”며 “그리고 그러한 ‘OOO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돌림노래 역시 그저 대상을 바꾸어 반복되는 폭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장단을 맞출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스포츠계는 폭력, 갑질 문화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은 이러한 괴롭힘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국민들은 함께 분노했다.

박지성의 아내 김민지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근거 없는 비방을 하는 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사진=김민지의 만두랑 유튜브 채널 캡처]

 

그러나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하긴 어려워졌다. 일부 누리꾼들의 근거 없는 비난과 인신공격 등으로 포털사이트 스포츠·연예 뉴스는 댓글창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스타가 나타나면 개인 SNS 등을 통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김민지 씨의 말처럼 이 또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는 사실 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비판이다.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인데, 유 전 감독의 별세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기에 빈소 방문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따르면 박 어드바이저는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 유 전 감독을 잘 보내드리길 부탁하고 추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또 다른 2002 동기인 윤정환(48) 일본프로축구 제프 유나이티드 감독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비판 여론은 없었다. 관심이 집중되는 스타들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트집을 잡는 이들이 있는데, 박 어드바이저를 향한 힐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읽히기도 한다.

박 어드바이저가 빈소를 찾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묻지 않더라도 그 누구라도 개인의 행동을 억압할 권한은 없다. 혈세를 먹고 사는 정치인 등이라면 예외일 수 있으나 박 어드바이저는 공인도 아니고 이는 공적인 행보와도 무관하다.

익명을 방패 삼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쉽게 행동하는 잘못된 문화가 현대사회 병폐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적는 몇 글자가 누군가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아픈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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