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9 (금)
방패는 이탈리아산, 우승후보 증명한 '빗장수비' [유로 2020]
상태바
방패는 이탈리아산, 우승후보 증명한 '빗장수비' [유로 2020]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1.06.13 2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카테나치오.

이탈리아 축구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용어다. '빗장'이란 뜻으로 실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단어다. 현대 이탈리아 대표팀이 해당 전술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항상 그들의 수식어로 따라다닐 정도로 이탈리아 축구 정신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공격 축구를 표방하며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 탄탄한 수비가 선결됐기에 가능했던 체질 개선이다.

이탈리아는 12일(한국시간) 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개막전에서 터키를 만나 3-0으로 이겼다. 전반전 답답한 흐름에 고전했으나 후반전 터키 데미랄 자책골과 임모빌레, 인시녜 연속골에 힘입어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승점 3을 획득한 이탈리아는 조 선두로 올라섰다.

유로 2020 개막전 3-0 클린시트 승리를 거둔 이탈리아. [사진=연합뉴스 제공]
유로 2020 개막전 3-0 클린시트 승리를 거둔 이탈리아.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탈리아는 본선 개막 전까지 매서운 흐름을 탔다. 공식 A매치 27경기 22승 5무로 패배가 없었다. 상승세 주요인은 바로 수비. 무패 기간 허용한 실점은 7골에 불과하다. 지난 유로 2020 예선에서도 핀란드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아르메니아 등 껄끄러운 팀들과 한 조에 묶였지만 4실점으로 선방했다.

소집명단을 보면 수비에 중점을 뒀음을 알 수 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10년 넘게 호흡을 맞춘 보누치와 키엘리니가 또 다시 이름을 올렸고, 아르체비와 바스토니 등 올 시즌 맹활약한 선수 역시 로테이션 자원으로 뽑혔다. 풀백 플로렌지와 디 로렌조, 스피나졸라 마찬가지로 일대일 마킹과 커버 플레이가 뛰어난 선수들이다. 탄탄한 후방 라인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

이날 수비 포메이션 선택은 포백. 스피나졸라-키엘리니-보누치-플로렌지가 뒷문을 지켰다. 후반전 교체된 디 로렌조까지 합심해 특유의 짠물 수비를 보여줬다. 그들은 90분 내내 안정적인 수비를 뽐내며 무실점 승리를 따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경기 초반엔 터키의 선 수비-후 역습 전술에 고전했다. 주도권을 가져가며 공세를 펼쳤으나 터키가 이른바 '버스'를 세우자 기회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수비수들 또한 상대 빠른 역습에 대비하기 위해 적정 수를 하프라인 아래에 둬야 했다.

하지만 전반 17분 인시녜가 베라르디와 짧은 패스를 주고받은 뒤 시도한 슛이 골대를 살짝 벗어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수비수들도 진영을 정비해 라인을 앞으로 당겼다. 기본 포메이션 자체는 4-3-3이었지만 왼쪽 풀백인 스피나졸라가 사실상 측면 공격수처럼 전진하면서 공격을 전개했고, 오른쪽 풀백인 플로렌지는 수비에 집중하면서 스리백처럼 플레이했다.

스피나졸라가 전방으로 올라가며 생긴 공간은 키엘리니가 활동량을 높여 적극적으로 커버했다. 물론 터키가 공격 숫자를 많이 두지 않아 큰 위기 상황은 없었다. 그러나 야즈즈와 일마즈 등 1, 2선 공격진이 호시탐탐 이탈리아 왼쪽 배후 공간을 노리는 상황이라 기민한 대처가 필요했다. 키엘리니는 중앙 수비를 전적으로 보누치에게 맡기고 중앙과 측면 사이에 위치해 어느 방향으로든 전환이 자유롭게 만들었다. 터키 수비가 롱 볼로 공격을 잇더라도 이탈리아 수비가 즉각적으로 끊어냈다.

스피나졸라 역시 마찬가지로 수비 전환에 집중했다. 공을 뺏기면 인시녜와 로카톨리에게 전방 압박을 맡겼다. 그 사이 본인은 빠른 발을 활용해 하프라인 아래로 복귀했다. 키엘리니가 유연한 대처로 후방 안정감을 높이고 있는 데다 스피나졸라 역시 빠르게 수비로 복귀하면서 수비 숫자 부족에 따른 실점 위기를 미연에 방지했다.

경기 최우수 선수에 뽑힌 이탈리아 풀백 스피나졸라. [사진=연합뉴스 제공]
경기 최우수 선수에 뽑힌 이탈리아 풀백 스피나졸라.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탈리아 센터백 조합은 상대 스트라이커 일마즈를 외롭게 만들었다. 워낙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라 페널티 박스 안에서 찬스를 잡게 나둬선 안 되는 선수다. 키엘리니와 보누치는 그를 사이에 두고 적절한 압박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들은 치밀한 라인 컨트롤로 일마즈가 돌아 뛰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의도했다.

게다가 전반 막판부턴 적시적소에 전방압박을 시도했다. 활동량이 상당한 바렐라와 로카텔리가 공을 뺏긴 시점부터 압박에 들어가 1차 저지선 역할을 잘 해줬다. 상대가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막아 역습 활용조차 불편하게 만들었다.

수비 헌신 덕분일까. 이탈리아 공격수들이 후반 초반 공격의 고삐를 당겼다. 후반 6분 데미랄 자책골을 유도해 앞서 나갔고, 후반 20분엔 임모빌레가 골키퍼가 쳐낸 세컨드 볼을 침착하게 밀어넣어 점수 차를 벌렸다. 터키는 연속 실점으로 저항 의지를 잃었다. 수비 강화에 따른 공격 집중, 이로 인한 수비 안정 선순환으로 이뤄지며 이탈리아 빗장이 한층 단단해졌다. 

교체 투입된 수비수들마저 제 몫을 다했다. 만치니 감독은 교체를 통해 수비 진영의 에너지 레벨을 유지했다. 플로렌지와 교체된 디 로렌조는 보다 빠른 발을 활용해 상대 왼쪽 측면을 틀어막았고, 중원 미드필더 크리스단테는 2, 3선을 왕복하며 전방 압박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시에 완급 조절을 담당했다.

이탈리아 수비는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높였다. 90분 내내 꽁꽁 묶였던 일마즈가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 박스 안에서 돈마룸마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았다. 하지만 키엘리니가 끝까지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공만 빼내는 완벽한 수비로 클린시트를 완성했다.

본선 시작 전 이탈리아를 우승후보로 보는 전문가와 팬은 소수였다. 다수 해외 베팅 업체 또한 이탈리아 우승 배당률을 1/8로 전망할 뿐이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벨기에, 스페인 등에 이은 5~6위권에 해당하는 배당이다. 물론 이제 개막 라운드를 끝냈기에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날 그들을 우승후보 군에서 빼놓아선 안 되는 이유를 증명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탈리아산 빗장 수비가 자리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