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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 건넌 쌍둥이, 다 잃은 흥국생명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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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 건넌 쌍둥이, 다 잃은 흥국생명 [기자의 눈]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7.01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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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여자배구 흥국생명과 그 소속 스타 쌍둥이 이재영·다영(이상 25) 자매 행보가 딱 그렇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했건만, 대다수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어쩌면 매질을 줄일 수도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지만 구단과 선수 모두 여론을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흥국생명은 지난달 30일 새 시즌 프로배구 선수 등록 마감 직전까지 고민한 끝에 결국 학창 시절 폭력(학폭)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쌍둥이 자매 등록을 포기했다. 둘은 구단과 대한민국배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있다.

구단주 명의로 낸 입장문을 통해 "두 선수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피해자들과의 원만한 화해를 기대했지만 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두 선수의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다영(왼쪽)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려고 해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이 향후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사진=연합뉴스]<br>
이재영(오른쪽)-이다영 쌍둥이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김여일 흥국생명 단장은 지난 시즌 중반까지 주전 윙 스파이커(레프트)와 세터로 각각 활약한 이재영과 이다영을 선수로 등록할 것이라 밝혔다. 반발이 상당했다. 이를 반대하는 트럭 시위가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벌어졌고,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흥국생명 구단이 팬심에 백기를 든 셈이지만 마지막까지 대중 반응을 떠보는 듯한 행태가 큰 반감을 샀다. 선수 등록을 포기하는 결정에도 불구하고 팬심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같은 날 오후 KBS, SBS를 통해 쌍둥이 인터뷰가 공개됐다. 사태가 발발한 이후 개인 SNS를 통해 사과문을 낸 게 전부였던 그들이 처음 매체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피해자 측은 쌍둥이로부터 학창시절 갖은 괴롭힘을 당한 것도 모자라 최근 쌍둥이로부터 고소까지 당한 뒤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쌍둥이는 SNS에 올렸던 자필 사과문을 내리고, 법적 대응에 돌입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코트 복귀 분위기가 감지되자 피해자들이 다시 용기를 내 쌍둥이를 저격했다. 

이에 쌍둥이는 30일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당시에 이미 용서를 구해 원만히 해결된 사태"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흥국생명이 학폭 가해자로 징계를 받고 있는 이다영(왼쪽), 이재영의 선수 등록 여부를 이날 결정한다. [사진=스포츠Q DB]
흥국생명은 쌍둥이 등록을 시도하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철회했다. [사진=스포츠Q(큐) DB]

이재영은 "(이다영이)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이라며 "이후 무릎 꿇고 사과하고, 서로 울고불고 사과하고 받아주면서 잘 풀었던 일"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월 폭로 글이 올라왔을 때 적극 해명하려고 했지만 구단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회사) 이미지 생각도 해달라. (소명)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해 자필 사과문을 쓰고 침묵으로 일관해왔다고 주장했다.

억울한 점이 많았음에도 구단 지시를 따랐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는 게 요지다. 둘은 "계속 우리만 망가졌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진짜 아무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제 흥국생명을 떠나 무적 신분이 된 둘은 "배구인생은 끝난 것 같다"며 "앞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 억울한 부분은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처음 밝힌 공식 입장에 여론은 차갑다.

폭행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이보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강조한 내용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일을 다시 거론해 자신들의 인생이 망가졌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당시 썼던 사과문 역시 구단 지시에 따라, 구단이 정해준 내용 그대로 작성했다고도 밝혔으니 정녕 진정성 있는 사과였는지 의구심을 낳는다.

단편적인 예로 "칼을 들었을 뿐"이라는 표현 역시 공감을 사기 어렵다. 비상식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결국 쌍둥이들은 마지막 순간 구단을 탓했고, 선수 보유권을 행사하려던 구단 역시 결국 소유권을 포기한 것은 물론 이미지까지 실추하고 말았다.

이다영(왼쪽), 이재영 쌍둥이 자매가 FA시장에 뜬다. [사진=FIVB 제공]
쌍둥이도 구단도 악수를 둔 꼴이다.  [사진=FIVB 제공]

흥국생명이 새 시즌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총 연봉은 1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선수 14명을 등록하면서 옵션 포함 23억 원인 샐러리캡(팀 연봉 총액 상한)을 절반도 소진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기준 도합 10억 원이었던 쌍둥이 등록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구단이 현재 흥국생명에 몸 담고 있는 선수단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애꿎은 소속 선수들과 끝까지 구단을 믿고 기다렸던 팬들만 마음을 다쳤다.

프로배구 최고스타였던 이재영·다영 자매 학폭 사건은 스포츠 전반으로 확산한 파문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어영부영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그동안 쌍둥이와 피해자 간 합의 과정이나 쌍둥이 거취를 놓고 모호한 태도로 대응하며 사건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랐다는 듯 물밑에서 움직인 구단 행태에 팬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학폭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원만한 합의에 이른 남자배구 송명근(OK금융그룹), 사실과 다른 점을 정확히 소명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명확히 사과한 뒤 복귀를 선택한 박상하(현대캐피탈) 등 가까이 프로배구 안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았기에 더 안타까운 결정이다. 

이도 저도 아닌 행보가 사태를 키웠다. '사과'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부족했다. 쌍둥이도, 구단도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하는 길이 뭔지 생각했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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