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6:22 (금)
권혁민, 비선출 코치의 UEFA P급 라이센스 도전기 [SQ인터뷰①]
상태바
권혁민, 비선출 코치의 UEFA P급 라이센스 도전기 [SQ인터뷰①]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7.07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대=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축구 싱크탱크 후에고가 만든 축구팀 후에고FC는 모토가 독특하다. '지도자 사관학교' 콘셉트를 갖고 있다. 헤드코치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참가하는 클럽을 지휘할 수 있는 지도자 자격증 UEFA Pro 라이센스를 보유한 권혁민(32) 코치. 

권 코치는 지도자 사관학교의 첫 스승인 셈이다. 비(非)선수 출신으로 대학교를 다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조세 무리뉴 AS 로마 감독 활약에 영감을 받아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났다. 8년 동안 현지에서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끝에 UEFA P급 지도자 자격을 따냈다. 확실히 국내 지도자들 사이에서 생소한 이력이다. 한국인 중 UEFA P급을 보유한 인물 역시 한 손에 꼽는다고 하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권혁민 코치는 지도자 사관학교의 가장 큰 유인책이자 숙주이기도 하다. 한국에 온 지 1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후에고의 매력적인 제안에 끌려 후에고FC를 맡게 됐다. △ 풀뿌리 축구 저변 확대 그리고 △ 디비전 시스템 정착이라는 두 가지 목표 속에서 권 코치는 자신의 역할을 발견했다.

비선수 출신으로 UEFA P급 지도자 라이센스를 따고 돌아온 권혁민 후에고FC 코치.

◆ '지도자 사관학교'의 초대 선생님

- 입단 테스트부터 관심을 끌었는데, 정작 성적은 아쉬웠다. 첫 시즌을 마친 소감은?

"성적을 떠나 준비과정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선수들을 발탁할 때 미처 신경쓰지 못한 게 있다. 타 팀에 있다가 이적하면 6개월 동안 디비전 리그에 참가할 수 없는데,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꽤 괜찮은 선수단을 구성했는데, 절반가량은 뛰지 못했다. 매 경기 선수가 부족했다. 나도 선수로 출전했고, 골키퍼 코치가 필드플레이어로 뛰기도 했다."

- 팀 전력을 평가한다면?

"입단 테스트 직후 멤버가 너무 좋아서 K7리그 본질을 흐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독일 5부리그 출신도 있고,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도 있다. 모두 이번 대회에 뛸 수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런 분들이 후에고 취지에 동참해줬다는 게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론 K7에서 가장 연령대가 높은 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상대가 대부분 20대 초중반이라면 우리는 30대 초중반 선수들로 구성됐다. 기술적으로는 압도했지만 후반 막판 역전을 허용할 때가 많았다. 기본적인 운동량에 차이가 나는 데다 발을 몇 차례 맞추지 않아 조직력도 부족한 채로 뛰었기 때문이다.

매 경기 끝날 때마다 '풀전력이면 해볼만 했을 텐데'라는 말을 많이 했다. 현재 일주일에 한 번 운동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다음 시즌 승격을 자신한다."

- 기대했던 만큼 보람이 있던가?

"우리가 준비한 훈련 프로그램을 선수들이 즐겁게 소화할 때 큰 보람을 느꼈다. 또 현직 유소년 코치도 7~8명 정도 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본인들이 선수로 뛰는 것도 좋지만 내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어서 온 사람들도 많다. 후에고FC에서 습득해서 본인들 수업 때 실제로 적용한다고 한다."

- 후에고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한국에 왔을 때 진로 고민이 많았다. 프로 산하 클럽이 안정적인 건 사실이지만 후에고 연락을 받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마추어지만 아마추어 같지 않았고, 지도자 양성이라는 목표가 새롭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 한편으론 스페인에서 유소년 팀만 맡아왔는데, 성인 팀을 지도해보는 경험도 내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갑자기 프로 혹은 세미프로 수준의 성인 팀을 맡게 됐을 때 잘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많이 들었다. 스페인에서 그랬듯 한국에서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한국판 무리뉴'를 꿈꾸며 덜컥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 한국판 무리뉴를 꿈꾸며 스페인으로 '맨땅에 헤딩'

- 스페인에 가게 된 계기는?

"축구는 초등학교 때 잠깐 했을 뿐 쭉 팬으로서 살아왔다. 2013년 공익근무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우연히 스페인에서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조세민 전 서울 이랜드FC U-12 코치)의 블로그를 보고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정확히 말하면 비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통역관 출신인 무리뉴 감독이 영감을 줬다. 선수 출신이 아니어도 스페인에서 지도자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기회가 많을 것 같은 수도 마드리드로 떠났다."

- 원래 축구를 하던 사람도 아니다. 게다가 연고도 없는 스페인이라니?

"스페인어 두 달 공부하고 딱 떠났다. 지금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그때는 그거 밖에 안 보였다. 현지에 도착한 다음 어학원도, 축구 지도자 과정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반대하실까봐 '어학연수 간다'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어학연수라는 모호한 목적은 돈 낭비 아니냐'고 하셔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진심을 알아주셨다. 스무살 때 호남대 축구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부모님 반대로 포기했는데, 군대에 다녀와서 다시 축구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 진정성을 느끼셨던 것 같다.

3월부터 어학원 다니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5개월 뒤 마드리드축구협회에 문의했다. 실기 테스트를 준비해 합격했고, 11월부터 클럽에서 지도자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언어가 안 통해 애를 많이 먹었다. 친구들도 모두 1년 만에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단다."

- 오동훈 충남 아산 U-18 감독과 인연이 깊다고.

"그렇게 클럽 지도자 일을 하던 2015년 한인 축구 모임에서 오동훈 감독님 소식을 접했다. 6부리그 유소년 팀을 맡고 계셨다. 그 클럽에 찾아가 인사드렸고 친분이 생겼다. 2016~2017시즌 프로 산하 바로 다음 레벨인 아다르베라는 클럽 코치직을 제안하셨고, 한 시즌 같이 일하게 됐다. 축구 지도자로서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한 때다.

아다르베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팀을 어떻게 운영하고, 지도자가 어떤 그림을 그려야하는지 제대로 배웠던 곳이다. 오 감독님은 2018년 한국으로 가셨고 나는 2020년까지 마드리드에 있었다."

스페인에서 8년 체류하며 다양한 클럽에서 유스팀 지도자로 경험을 쌓았다.

- 현지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을 텐데.

"처음에는 오동훈 감독님 말고는 한국인 코치를 본 적이 없다. 2017년 이후 지도자 공부를 하러 왔다는 사람들은 만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현지에서 조언을 구하는 분들도 생겼고, 클럽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본래 스페인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타입이 아니다. 언어 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니었다면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 UEFA P급에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린 건가?

"모두 마치는 데 6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대한축구협회(KFA)에선 UEFA P급을 '축구에서 박사 과정을 딴 셈'이라고 표현한다더라. 한국에선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까지 가는 데 절차가 까다롭다. B급 이상부터 서류 심사가 필요한데, 비선출 혹은 이렇다 할 커리어가 없는 이들은 이를 통과하기 쉽지 않다고 들었다. P급이 없어 ACL에 진출한 K리그 구단에서 사임하는 감독들도 더러 있지 않았나."

- UEFA 지도자 자격증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조언이라기보단 현 상황을 설명해주고 싶다. 이제는 스페인에서 UEFA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아진 상태다. 내가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거주증'이 있어야 한다. 현지 협회가 아닌 사설기관에서도 자격증을 딸 수 있지만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서 이를 변환해 활용할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후에고FC에서 한철(왼쪽) 코치와 의기투합했다.

◆ 후에고FC를 택한 이유

- 한국에 온 지 1년 정도 됐다. 한국축구는 어떤 것 같나?

"후에고에서 성인 팀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AAFC라는 유소년 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 가운데 방식이 안타까운 분들이 많더라. 방법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망라해서 하는 이야기다.

후에고FC를 통해 나와 한철 코치가 추구하는 지도방식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후에고FC가 그런 지도자들을 모으는 매개가 될 것이다. 프로 산하 구단에 들어갔다면 한국의 풀뿌리 축구문화를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도 그 방식을 그대로 따랐을 지도 모른다."

- 후에고FC를 통해 뭘 하고 싶은 건가.

"나는 선수경력이 전무한 지도자다. 한국에선 나올 수 없는 지도자. 스페인에 갔기 때문에 라이센스도 딸 수 있었다. 나로 말미암아 조금이나마 지도자 자격증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비선수 출신에 대한 인식도 좀 바뀌어, 지도자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는 판이 열리면 한국 축구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후에고FC가 뭔가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세미프로 격인 K4리그까지 순수 아마추어 리그가 승강제로 엮이게 된다. 후에고FC가 더 위로 올라가게 되면 우리나라도 승강제가 자리잡았다는 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 축구를 접었던 사람들도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제이미 바디와 루카 토니처럼."

*후에고FC 코칭스태프 인터뷰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