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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극복' 우상혁, 파리 향해 '레츠고'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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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극복' 우상혁, 파리 향해 '레츠고'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8.02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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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이제 시작이에요.”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은 한계를 잊은 듯 날아올랐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특유의 환한 미소 속엔 보는 이들마저 미소짓게 만드는 긍정에너지가 있었다.

우상혁은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넘어 4위에 올랐다.

마라톤을 제외한 한국 육상 최고 기록을 써낸 우상혁. ‘깜짝’ 성적이라는 건 그만큼 피나는 훈련 필요했었다는 걸 의미한다.

1일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세계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환히 웃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세계랭킹 30위. 결선에 나선 13명 중 가장 낮은 순위였다. 결선에 올라선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도 이진택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세운 8위를 넘어설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상혁은 올림픽 기준 기록(2m33)을 넘지 못했고 랭킹 포인트 인정 마지막 날인 지난 6월 29일에 개인 최고인 2m31을 넘는 등 부지런히 랭킹 포인트를 쌓아 도쿄행 티켓을 획득했다. 땀으로 일궈낸 성과였지만 기대치가 높을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결선 진출자 중 개인 최고 기록(2m31)도 가장 낮았다.

높이뛰기 선수로는 불리한 체격 조건이었다. 여덟 살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발이 왼발에 비해 10㎜가량 짧다. 이로 인해 신체 균형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균형 감각을 키우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였고 결국 신체적 한계라는 허들을 뛰어넘었다. 높이뛰기 선수로서 크지 않은 188㎝ 키도 우상혁의 앞길을 막진 못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상혁은 5년 전 리우 대회에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3년 세계청소년육상경기선수권에서 2m20으로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 세계주니어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도 2m24를 뛰어 3위를 차지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진택(금메달) 이후 16년 만에 한국 남자 높이뛰기에 메달을 선물했다.

경기 후 김도균 코치(왼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우상혁.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리우 무대에선 좌절했다. 첫 올림픽이라는 떨리는 무대에서 우상혁은 2m26을 넘는데 그쳤다. 결선 진출에도 실패했다.

김도균 대표팀 코치를 만난 뒤 올림픽만 바라보며 서서히 기량을 끌어올렸다. 올림픽에 나서는 것부터 쉽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운명의 도쿄올림픽 무대. 예선에서 2m28을 넘어 결선에 오른 우상혁은 거침이 없었다. 2m19를 시작으로 2m24, 2m27을 넘어 2m30까지 가뿐히 넘어섰다. “할 수 있다”, “올라간다”라고 스스로 되뇐 우상혁은 봉을 넘어선 뒤 포효했다. 중계 카메라를 쳐다보고는 “이제 시작이에요”라고 외쳤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2m33 1차 시기에 실패했지만 밝은 미소로 호응을 유도한 그는 2번째 도전에서 바를 깔끔히 뛰어넘었다. 이제부턴 즐겼다. 2m35 도전을 앞두곤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상혁은 이진택을 넘어 한국 높이뛰기의 새로운 역사가 됐다.

바를 넘어설 때마다 우상혁은 포효했고 넘치는 에너지를 뽐내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진=연합뉴스]

 

점프를 뛰기 전엔 “할 수 있다”, “레츠고” 등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주문을 외웠고 바를 넘어선 뒤엔 “됐어”, “레츠고 우” 등 긍정 에너지를 뽐내며 주목을 끌었다.

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2m37에서 허벅지에 바가 걸리며 실패했는데 경쟁자 3명이 통과해 우상혁으로선 패스하고 2m39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도 2m39를 넘지 못했다. 우상혁도 마지막 도전을 마치고선 씩씩하게 거수경례로 도쿄 무대를 마무리했다. 우상혁은 메달권과 단 2㎝ 차이로 4위에 머물렀다.

5년 전엔 금메달이 2m37, 동메달은 2m33. 우상혁이 얼마나 잘 뛰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단한 성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우상혁은 경기 후 “기록을 1㎝ 올리는 데 4년이 걸렸다”면서 “그런데 올림픽에서 4㎝를 깬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m37 1차 시기에 실패하고도 환하게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우상혁은 “높이뛰기 선수로서 자기 키의 50㎝ 이상은 마의 벽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제가 2m38을 평생 목표로 잡았는데 올림픽에서 2m37에 도전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고 꿈같았다. 그런데 솔직히 넘을 수 있을 거 같아 ‘괜찮아’라고 말이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마지막 점프를 실패로 마무리한 뒤 진지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우상혁. [사진=연합뉴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우상혁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무기다. 메달을 놓친 게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메달리스트들은) 저보다 더 힘들었던 선수들이어서 메달을 갖고 갈 수 있는 것”이라며 “전 그 친구들에 비해 성장을 덜 했고 후회는 없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렇다고 욕심이 작은 건 아니다. “난 어리지만 그 친구들은 나이도 있다”고 웃으며 “이제 내가 2m35 뛰어서 그 친구들이 저 무서워서 은퇴를 많이 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상무 소속의 우상혁. 조기 전역을 눈앞에서 놓쳤다는 말엔 “정곡을 찌르시는데”라면서도 “그래도 육상의 한 획을 그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군대에 갔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긍정 에너지를 분출했다.

아쉬움 가득한 결과지만 우상혁은 큰 선물을 얻었다.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선수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리그에 자주 출전하면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에 영향을 미치는 랭킹 포인트 획득도 보다 수월해진다.

최근 세계육상연맹은 주요 선수들의 다이아몬드리그 출전을 장려하기 위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출전권 배분의 랭킹 포인트 비중을 키우고 있는데, 정상권 선수들과 달리 우상혁은 다이아몬드리그에 출전할 기회도 얻기 힘들었다. 이젠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로서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우상혁을 자주 지켜볼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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