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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보다 최선을', 포기 잊은 선수들 [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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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보다 최선을', 포기 잊은 선수들 [도쿄올림픽]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8.06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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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5년간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구슬땀을 흘렸다. 모두의 목표는 포디움에 서는 것. 그러나 꼭 결과가 동반해야만 감동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는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프랑스 피에르 드 쿠배르탱 남작의 올림픽 정신. 

이를 실천하려는 듯 선수들은 최고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뛰었고 지켜보는 이들도 선수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카타리나 존슨-톰슨(왼쪽에서 2번째)이 육상 7종 200m 도중 부상 이후에도 완주한 뒤 다른 선수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지난 4일 대회 여자 육상 7종 200m 도중 빠르게 질주하던 카타리나 존슨-톰슨(영국)이 갑자기 쓰러졌다.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황. 1위의 기록은 23초. 그러나 존슨-톰슨은 무려 93초간 레이스를 펼쳤다. 한참 동안 드러누워 통증을 호소했고 경기위원회에선 휠체어를 가져왔다. 경기보다 빠른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존슨-톰슨은 이를 거부하고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레이스를 재개했다. 심지어 속도를 내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고 남은 80m 마저 통과했다.

최선의 노력을 보이며 올림픽 정신을 제대로 살렸다. 트랙에서 쓰러지며 레인을 이탈해 결국 실격처리됐지만 도전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감동의 레이스였다.

톰슨-존슨은 2019년 도하 세계육상선수권 7종 경기 금메달리스트. 당일 열린 100m 허들에서도 1위에 오르며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에도 아킬레스건 파열로 신음했던 그는 올림픽을 위해 힘겹게 재활에 매달렸지만 또 다른 부위에 부상으로 결국 아쉬움을 삼킨 채 대회를 마감하게 됐다.

지난 1일 육상 남자 800m 준결승에선 쓰러진 두 선수가 서로를 일으켜 함께 결승선을 통과해 감동을 자아냈다. 400m 트랙 두 바퀴를 도는 경기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던 차, 아이제아 주윗(미국)이 속도를 높이던 중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뒤를 따르던 나이젤 아모스(보츠나와)와 뒤엉켰다. 다른 선수들이 치고 나가는 동안 둘은 함께 쓰러졌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이제아 주윗(왼쪽)과 나이젤 아모스가 육상 남자 800m 준결승에서 충돌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해 박수를 받았다. [사진=AFP/연합뉴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둘은 이내 함께 일으켜 세워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이후 둘은 함께 트랙을 달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나란히 선 채로 사이 좋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주윗은 2분38초12, 아모스는 2분38초49. 1위 선수보다 1분 가까이 늦은 기록이었지만 감동의 크기는 누구보다 작지 않았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선수들이 다가와 이들을 격려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관계자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모스는 심판들의 판독에 따라서 결승에 진출했다. 주윗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하루의 마지막에는 결국 영웅이 돼야 한다”며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지난달 25일 다누시아 프랜시스(자메이카)는 여자 기계체조 이단평행봉 예선에서 꼴찌(88위)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단 11초 만에 평행봉에서 내려왔다. 왼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프랜시스의 왼 무릎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져 있었는데, 경기 이틀 전 훈련 도중 왼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던 것. 도저히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생애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의사의 만류에도 기권 대신 이단평행봉에 올랐다.

연기는 단 11초에 불과했지만 심판진은 불굴의 투지에 9.033점에 달하는 높은 수행 점수를 줬다. 기술을 제대로 완료하지 못해 점수가 크게 깎여 3.033점을 기록했으나 프랜시스는 “내가 꿈꿨던 연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커다란 성취였다”고 만족하며 대회를 마쳤다.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최수연은 단체전 8강 도중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으나 투혼을 발휘했고 대표팀은 동메달을 수확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선수들의 투혼도 빼놓을 수 없다. 여자 다이빙 권하림은 지난 4일 도쿄 올림픽 여자 10m 플랫폼 준결선 진출에 실패했는데, 부상 영향이 컸다. 발목 부상으로 테이핑을 하고 나서봤으나 제대로 경기력을 펼치기 어려웠다.

전날 훈련에서 발목 부상을 입은 그는 테이핑을 하고 경기에 나섰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1차와 5차 시기에서 고득점을 얻었으나 이후 주춤하며 결국 아쉬움과 함께 대회를 마무리했다.

펜싱 여자 사브르 최수연은 헝가리와 단체전 8강 경기 도중 어깨 탈구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악으로 버텼고 결국 대표팀은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여자 배구 김연경 또한 마찬가지. 상대적 우위에 선 팀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준결승에 올랐는데, 놀라운 활약에 숨겨진 투혼이 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일본과 A조 4차전에서 30점을 올렸는데, 경기 도중 허벅지 핏줄이 터진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됐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자신의 올림픽 통산 4번째 30득점을 기록하며 세계 최초 기록을 세웠다.

도쿄올림픽이 15일차에 돌입했다. 대부분 메달이 나오며 종합순위도 윤곽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순위로만 접근하긴 어렵다. 메달권에 다다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올림픽 정신을 살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주목받는 이유와 같다. 도쿄에 나선 올림피언들은 왜 도전하는 것이,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지 몸소 증명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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