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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유튜버' 해커 돌풍, '쿠드롱 도발' 민망한 이유는? [PBA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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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유튜버' 해커 돌풍, '쿠드롱 도발' 민망한 이유는? [PBA 투어]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9.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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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쿠드롱은 당구를 세상에서 가장 잘 치지만 그건 내가 없었을 때 얘기.”

구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던진 말이 실제처럼 돼 버렸다. 당구 유튜버 해커(39)가 3쿠션 세계 4대 천왕 중 하나인 프레드릭 쿠드롱(53·벨기에·웰컴저축은행 웰뱅 피닉스)마저 잡아냈다.

해커는 19일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 고양에서 열린 PBA 투어 2차전 2021~2022 TS샴푸 PBA 챔피언십 32강에서 쿠드롱을 세트스코어 3-0(15-6 15-11 15-9)으로 완파했다.

해커가 19일 2021~2022 TS샴푸 PBA 챔피언십 32강에서 프레드릭 쿠드롱을 꺾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당구 관련 콘텐츠를 진행하는 유튜버 해커는 구독자 7만을 자랑한다. 당구계와 당구 팬들 사이에선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플루언서다.

이번 대회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올 시즌 개막전 블루원리조트 PBA 챔피언십에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참가했다. 다만 당시엔 논란이 크게 일었다. 1부 투어에 정식 등록되지 않은 선수가 추천 선수로 대회에 참가하는 건 문제가 없다.

다만 선수명으로 본명이 아닌 ‘해커’를, 심지어 유튜버 콘셉트대로 가면을 쓰고 경기를 치렀다. 선수들은 ‘대회 권위를 떨어뜨린다’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차가운 시선 속 대회에 나선 해커는 128강에서 베트남 강호 마민캄(신한금융투자 알파스)에게 세트스코어 0-2로 탈락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해커. 이번 대회는 기세가 남달랐다. 대회 개막 일주일 전 갑작스럽게 참가가 결정됐으나 직전 대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128강에서 이상철을 승부치기 끝에 꺾으며 PBA 투어 첫 승을 거둔 해커는 64강에선 전상일을 3-1로 잡아냈다.

흥미진진한 매치업이 성사됐다. 32강에서 쿠드롱과 붙게 된 것. 앞서 해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2차 투어 일정 관련 영상을 올리며 2승을 거두면 쿠드롱과 붙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영상에서 해커는 농담 삼아 “쿠드롱!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이 가장 당구를 잘 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그건 내가 없었을 때 얘기”라고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더 이상 이 이야기에 웃을 수 없게 됐다. 1세트 선공을 잡은 해커는 첫 이닝부터 6이닝 하이런에 성공했다. 쿠드롱이 공타에 그치자 곧바로 8점을 추가하며 기세를 높였다. 뒤늦게 쿠드롱이 추격해봤지만 승부는 5이닝 만에 마무리됐다.

해커가 기세를 몰아 3연승을 16강에 올랐다. [사진=PBA 투어]

 

2세트엔 3-6으로 끌려가던 해커는 6,7,8이닝 11점을 몰아치며 승리에 한 발 더 다가섰다. PBA 최다승에 빛나는 쿠드롱이지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3세트엔 에버리지 0.545로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승자는 해커.

도발 가득한 영상과 달리 해커는 “쿠드롱과 32강에서 붙는 게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컸다. 경기 후 만난 해커는 “쿠드롱 경기를 많이 봐왔다. 내가 이길 확률은 10번 치면 두 번 정도라고 봤다. 이미 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떨리지도 않았고 마음을 비우고 쳤다”며 “쿠드롱은 내 마음속의 영원한 1번이다.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수다. 오늘 경기는 쿠드롱이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최강자를 꺾어냈지만 조심스럽기만 했다. 해커는 “한 경기를 이겼다고 어떤 분들은 ‘해커가 쿠드롱보다 낫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그럴 일 없을테니 그런 생각은 안하셨으면 좋겠다”며 “당연히 질 것이라 생각해 방송에서 쿠드롱에게 당신은 2인자라고 한 영상이 올라가 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오히려 민망해졌다. 

그러나 분명한 소득이 있는 경기였다. 1차 대회 탈락 후 무시했던 시선을 완전히 돌려냈고, 자신의 출전을 반대했던 이들에게도 초청 선수로 나설 수 있는 자격을 갖췄음을 증명해냈다.

당구 팬들의 관심도 놀랍다. 지난 시즌 왕중왕전 격인 2020~2021 PBA 월드챔피언십 당시 유튜브 동시 접속자가 2만3000에 달했는데, 이날 경기 2만1000명을 달성했다. 쿠드롱을 꺾자 시청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정작 자신은 누구보다 태연하다. “쿠드롱과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볼거리를 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이기기까지 해 제대로 된 추석 선물을 선사해드린 것 같다”며 “응원해주신분들 모두 추석을 잘 보내셨으면 좋겠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면서도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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