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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카바디 NO 라이프', 이장군이 꿈꾸는 미래 [SQ인터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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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카바디 NO 라이프', 이장군이 꿈꾸는 미래 [SQ인터뷰③]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10.20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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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뭉쳐야 찬다 시즌2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장군(29)을, 카바디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택시를 타면 그에게 운동선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처음엔 카바디 선수라고 설명했으나 나중엔 이마저 포기했다. 그만큼 생소한 종목이 카바디였다.

뭉쳐야 찬다2 출연 이후 자신은 물론이고 카바디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게 체감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오래도록 카바디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은 ‘코리안 킹’ 이장군. 카바디의 밝은 미래를 위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뭉쳐야 찬다-축구 이야기는 인터뷰 1편, 고난의 역사는 2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연봉을 포기해야 했지만 이장군은 돈보다는 즐거운 카바디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 코로나19 폭풍, 그럼에도 ‘돈보다 카바디’

코로나19는 많은 걸 빼앗아갔다. 카바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했고 특히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인도는 큰 타격을 받았다. 카바디 프로리그도 멈춰섰다. 2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다.

뭉쳐야 찬다2 오디션에서 말한 것처럼 이장군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방송 출연 이후 마스크를 끼고 다녀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을 정도로 유명해졌으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생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잠을 쪼개면서까지 훈련을 할 정도로 카바디 선수로서 최고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직업 특성상 모든 훈련을 하지 못하는 동료들과 늘 함께하며 하루에 5번, 9시간까지 운동을 하기도 했다.

돈이 1순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트레이너를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어보기도 했지만 즐겁지 않고 금방 지쳤다”며 “카바디를 할 때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다”고.

내년 항저우에서 사고 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아가서는 더 큰 꿈을 꾼다. “선수다보니 목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면서도 “그 이후엔 카바디가 좀 더 알려지는 나 같은 후배들이 많이 생겨 내 뒤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롤 모델로 삼아 열심히 하는 동생들도 있는데 하루빨리 인정을 받아 마음 편하게 뒤를 맡기고 서포터 역할을 맡고 싶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카바디는 이장군과 동의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만큼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자배구 김연경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았다. “자부심. 부담감으로 인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카바디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카바디를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감도 많이 가졌다. 배구의 김연경, 축구의 박지성, 손흥민 등을 보고 그렇게 모범적인 선수가 되자고 다짐했다”며 “특히 김연경은 여자배구가 한 때 국제 성적도 좋지 않고 인기도 지금에 비해 없었지만 이겨내고 후배들을 챙기는 걸 보고 감명을 받았다. 안 힘들 수는 없지만 선수들을 더 챙기고 카바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버텨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바디의 발전을 외치는 이장군. 더 많은 홍보를 위해 협회와 선수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홍보대사 자처하는 이장군, 카바디가 발전하려면?

인프라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 “인도에서 유명해지고 주목도 받게 됐지만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비인기 종목을 한 순간에 인기 종목으로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껴 힘들었다”며 “프로리그를 하면서 인프라도 화려하고 관중도 엄청 많은 인도의 발전된 카바디 환경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3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단복도 받지 못했던 카바디에 이장군의 뭉쳐야 찬다2 출연 이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는 것.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고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는데 뭉찬에 나오고 나서 카바디가 알려지다보니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금전적으로나 제품 스폰서 등 많은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다. “저변 확대가 가장 시급하다. 선수들이 많은 고민과 걱정 없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은퇴하고도 코치나 감독직 등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돼야 지금처럼 잘하는 선수들이 그만두는 걸 막을 수 있다. 나아지지 못하면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며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 선수나 협회, 여러 학교나 단체에 찾아가 카바디를 알려주고 설명해주면서 같이 노력해야한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고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안 된다는 걸 느껴 더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현재 카바디는 초등학교에선 방과 후 활동, 대학교에선 동아리 위주로 보급되고 있다. 대학교 전국 대회가 전후반기 2번 열리고 있고 초등학교에선 아시안게임 은메달, 뭉쳐야 찬다 출연 이후 대한카바디협회에 강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급격히 많아지고 있다.

이장군은 “종목을 알리기 위해 카바디를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생기고 자연스레 팀도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 뭉찬에 합격한 게 더 도움이 된다. 고정적으로 방송에 비춰지니 카바디에 대한 관심이 강습 요청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몸싸움이 많은 종목인 만큼 초등학생들에겐 위험요소가 크지 않을까. 이장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떠올렸다. 카바디는 몸싸움이 많다고 공수를 나눠 펼친다는 점에서 오징어게임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카바디 또한 놀이로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어린 학생들은 아직 룰도 잘 모르고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놀이처럼 하고 있다”며 “헤드기어를 차고 하기도 하고 수건 뺏기라든지 각자 선수들에게 수건을 맡겨 끈을 묶어서 풀고 도망가기 등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바디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장군. 그는 "카바디가 이장군이고 이장군이 카바디"라며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사진=연합뉴스]

 

◆ 카바디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이장군에게 카바디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수도 없는 부상과 반복되는 재활은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지루했다. 그러나 버텨냈고 어떻게든 이겨낼 생각이다.

30대 후반까지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만 선수풀이 좁은 한국 카바디 특성상 더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펼칠 수도 있다. 다만 투기 종목 특성상 많이 부딪히다보니 부상위험이 커 언제까지 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는 없다.

이장군 또한 선수로서보다는 카바디를 알리는 역할로서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엔 상비군 감독과 코치 등으로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고 빨리 성장시켜서 우리나라가 카바디가 성적 내는 걸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며 “세대교체도 잘 할 수 있게끔 카바디와 관련된 쪽에서 계속 있고 싶다”고 말했다. 카바디 없는 삶은 생각하지 않는 카바디 간판스타.

이장군에게 카바디는 어떤 의미일까. “내 인생 그 자체”라는 그는 “카바디가 이장군이고 이장군이 카바디다. 이 종목 덕에 여기까지 왔고 이름도 알릴 수 있었다. 내 전부”라고 말했다.

이장군은 “카바디를 하고 있는, 했던 모든 사람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카바디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이장군을 떠올리고 나중에 카바디가 지금보다 발전했을 때에도 이장군이라는 사람이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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