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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에바스 한계 극복, KT 믿음에 답했다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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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에바스 한계 극복, KT 믿음에 답했다 [프로야구]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1.0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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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단 이틀 휴식하고 등판한 외국인 투수가 만화 같은 역투로 팀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놨다. 윌리엄 쿠에바스(31·베네수엘라)가 나흘 동안 공 207개를 던지며 KT 위즈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역사에 그 이름을 아로새겼다.

쿠에바스는 3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2021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프로야구)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안타 1개, 볼넷 2개만 허용한 반면 삼진은 8개나 잡았다.

쿠에바스가 마운드를 굳게 지킨 덕에 KT는 1-0 신승을 거두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페넌트레이스 정상에 섰다. 한국시리즈(KS)에 직행해 힘을 비축하게 됐으니 통합우승 가능성도 한층 높였다. 

정규리그 144경기 동안 76승 9무 59패(승률 0.563)로 삼성과 완벽히 동률을 이뤘다. 상대전적에서 앞선 삼성 홈에서 열린 이례적 145번째 승부였다. 삼성 팬들이 가득한 원정경기에서 쿠에바스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사진=연합뉴스]
쿠에바스가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환하게 웃어보였다.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역투로 역사적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사진=연합뉴스]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이끈 고(故)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역투를 연상시키는 강행군 속에 최고의 기량을 뽐냈다. '삼성 킬러'로 통했던 더스틴 니퍼트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외인은 팀보다 개인을 중요시 한다는 통념과 배치되는 활약이기라 한층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지난 28일 NC(엔씨) 다이노스전에서 선발 등판해 공 108개를 뿌린 쿠에바스는 팀 명운이 달린 초유의 '1위 결정전' 앞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틀 휴식 후 다시 선발로 나와 7이닝 동안 삼성 타선을 꽁꽁 묶었다.

프로에서 선발 투수는 통상 나흘 이상 쉰 뒤 마운드에 다시 오르곤 한다. 100구 이상 던진 뒤 사흘도 되지 않아 다시 등판하는 건 프로야구 초창기나 고교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강철 KT 감독도 경기 앞서 "오늘 쿠에바스가 긴 이닝을 던지기는 어렵다. 한 타자, 한 이닝씩 던지는 모습을 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쿠에바스는 육체적 한계를 극복했다.

이날 공 99개를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0㎞. 특히 우익수 재러드 호잉의 실책으로 맞은 7회말 1사 1, 3루 위기에서 강민호를 2루수 뜬공, 이원석을 삼진으로 처리한 장면은 올 시즌 프로야구 최고 명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KT 타선 역시 이날 삼성 선발 원태인을 공략하는 데 애를 먹었다. 6회초 강백호의 적시타로 겨우 1점 뽑아낸 게 전부라는 걸 감안하면 쿠에바스의 호투는 더 빛난다.

[사진=연합뉴스]
108구를 던진 뒤 이틀 휴식하고 다시 99구를 뿌렸다. [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 뒤 쿠에바스는 "나도 긴 이닝은 던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해 오늘은 선발 아닌 불펜처럼 짧은 이닝 전력투구할 생각이었다"며 "3회 이후에는 투수코치가 내 상태를 점검했다. 이닝이 끝날 때마다 나는 '괜찮다. 더 던질 수 있다'고 답했다. 나도 모르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됐고, 정말 힘들어서 던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까지 투구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틀만 쉬고 또 선발 등판한 건 내 야구 인생 처음"이라면서 "오늘 승리해서 KS에 직행하니, 휴식 시간을 얻지 않았나. 내가 가진 걸 다 쏟아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며 감격에 젖었다.

"KT라는 팀이 하나로 뭉쳐 좋은 경기를 했기 때문에 이겼다. 내 역할도 있지만 팀이 만든 승리"라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7회 위기 상황을 복기하면서도 "경기하다 보면 실책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집중력을 유지하면 팀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로 호잉을 감쌌다. 경기 후 결승타를 터뜨린 강백호와 마주치자 "강백호, 사랑해"라며 웃기도 했다. 

쿠에바스는 올 시즌 도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8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멘토나 다름없던 아버지 별세에 쿠에바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체중이 5㎏이나 빠질 만큼 마음고생을 했다.

부친상을 치른 뒤 그는 다시 힘을 내 KT 에이스의 자리로 돌아왔다. 홈구장 수원 KT위즈파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며 그를 위로하려 애쓴 구단과 동료들에게 진한 애정도 느꼈다. 이강철 감독은 순위싸움이 치열한 와중에도 쿠에바스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조용히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장례식 이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배려했다.

[사진=연합뉴스]
쿠에바스는 올 시즌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결국 극복하고 팀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놨다. [사진=연합뉴스]

쿠에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동료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며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 마운드에 선 뒤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낀다. 그 에너지가 오늘과 같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오늘 느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KS에서도 내게 힘을 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KT에서만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쿠에바스는 그동안 예민한 성격에 감정 기복도 심하다는 평가가 따랐다. 좋은 구위에도 불구하고 종종 흔들리곤 했다. 첫 시즌 13승을 올린 뒤 지난해 10승, 올해는 이 경기 전까지 9승을 쌓았으니 기대보다 조금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올 시즌에는 개막 후 10경기에서 2승 3패 평균자책점(ERA·방어율) 6.40으로 부진했다. 구단에서 계약 옵션을 변경해주겠다며 불펜 전환을 설득했지만 쿠에바스는 선발로 도전을 이어갔고, 결국 빅게임 피처로 도약했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후 “초반에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바꾸려고 했는데 쿠에바스의 공이 너무 좋았다”며 “결국 쿠에바스에게 오늘 경기를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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