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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ACL 준우승, 가성비 갑 '기동매직'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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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ACL 준우승, 가성비 갑 '기동매직' [SQ초점]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1.2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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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은 올 시즌 K리그1(프로축구 1부) 포항 스틸러스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김기동 감독의 포항이 고난에 고난을 극복한 끝에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설 기회를 잡았지만 최종 관문을 넘는 데는 좌절했다. 하지만 포항의 준우승을 '실패'라 정의내릴 축구 팬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포항은 24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파흐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알 힐랄(사우디)과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0-2로 졌다.

2009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포항이 조별리그부터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해가며 결승까지 올랐지만 ACL 최다우승 타이틀은 알 힐랄(4회)에 내주고 말았다. 12년 전 선수로 아시아 왕좌에 등극했던 김기동 포항 감독은 신태용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에 이어 선수와 감독 신분으로 각각 ACL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알 힐랄의 홈구장에서 펼쳐진 경기였다. 6만8000여 석 대다수가 알 힐랄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채워졌다. 홈 팬들의 일방적인 성원을 등에 업은,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팀으로 꼽히는 알 힐랄을 맞아 말 그대로 졌지만 잘 싸웠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포항 스틸러스가 ACL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비록 결승에서 졌지만 올 시즌 ACL에서 보여준 행보는 놀라움 자체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알 힐랄은 초호화 외국인선수 라인업을 자랑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잔뼈가 굵은 바페팀미 고미(프랑스), 지난여름까지 포르투갈 명문 FC포르투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를 호령한 무사 마레가(말리), 지난 시즌 EPL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WBA)에서 11골을 터뜨린 마테우스 페레이라(브라질) 등 공격수를 보유한 데다 한때 한국 대표팀 주전 센터백으로 뛴 장현수까지 모두 선발로 나섰다.

외국인선수가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는 규정상 엔트리에서 빠진 외인 라인업만 살펴봐도 아틀레티코(AT) 마드리드 출신 루시아노 비에토(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카리요 디아즈(페루), 구스타보 쿠엘라르(콜롬비아) 등 이름값이 화려하다.

반면 포항에선 주전 골키퍼 강현무가 부상, 본래 미드필더지만 최전방에도 설 수 있는 이승모가 병역 관련 봉사 시간 미달로 출국하지 못했다. 주축 공격자원이 빠졌을 때 조별리그에서 맹활약한 유망주 권기표마저 다쳐서 함께하지 못했다.

알 힐랄을 맞아 객관적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실점 전까지 대등하게 맞섰다. 킥오프 20초 만에 나세르 알다우사리에 30m 기습적인 중거리 원더골을 내주고 시작했다. 하지만 팔라시오스, 신진호를 앞세워 골대를 한 차례 때리는 등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김기동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크베치시 대신 고영준을 투입한 뒤 신진호를 내려 3선을 강화했다. 또 중앙 미드필더 이수빈 대신 센터백 전민광을 투입한 뒤 레프트백 강상우를 라이트 윙어로 전진 배치하는 등 가진 자원으로 최대 효율을 내려고 애썼다. 비록 후반 18분 마레가에 한 골 더 내준 뒤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무너졌지만 끝까지 만회골을 노렸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김기동 감독은 여러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가진 자원으로 최대 효율을 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시즌 울산 현대에서 우승을 맛본 신진호(왼쪽)가 결승전 맹활약했지만 팀 패배를 막지 못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실 올 시즌 포항이 ACL 결승에 온 것만 해도 기적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경기를 중계한 한준희 스포티비 축구 해설위원은 "올해 포항이 겪은 시련만 나열해도 A4용지 1장을 메울 수 있을 정도"라며 아시아축구 최고 무대에 오른 것만 해도 값진 성과라고 치켜세웠다.

지난 시즌 포항이 자랑했던 외인 4인방 이른바 '1588' 라인 중 팔라시오스만 남았다. 지난 시즌 베스트11에 든 일류첸코는 전북 현대, 팔로세비치는 FC서울로 이적했고 오닐은 태국으로 떠났다. 뿐만 아니라 김광석이 인천 유나이티드, 최영준이 전북으로 유니폼을 갈아입는 등 전력 손실이 상당했다.

올해 새로 들어온 외인 공격수들은 부진했다. 타쉬는 기대에 못 미쳤고, 크베시치는 후반부 다소 살아났지만 시즌 전체를 돌아보면 활약이 미미했다. 주전 센터백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그란트는 시즌 중반까지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기도 했다. 팔라시오스 역시 공격 전 포지션을 두루 소화했지만 이따금씩 부상으로 이탈했다.

하창래, 심상민 등도 시즌 극초반 김천 상무에 입대해 빠졌다. ACL 조별리그를 힘겹게 통과하자 지난 시즌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공격의 핵 송민규마저 전북에 내주고 말았다.  

임상협은 포항에서 제2 전성기를 맞았다.
임상협은 포항에서 제2 전성기를 맞았다.
박승욱(가운데)은 올 여름 이적시장 포항의 최대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박승욱(오른쪽 두 번째)은 올 여름 이적시장 포항의 최대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럼에도 잘 버텼다. 임상협, 신진호, 신광훈 등 새 시즌 포항에 입단한 30대 베테랑들이 일당백 활약을 했다. 이승모, 이수빈, 고영준 등 어린 선수들은 어려운 팀 사정 속에 많은 기회를 얻었고, 주어진 시간을 양분 삼아 쑥쑥 성장했다. 여름 이적시장 부산교통공사에서 데려온 사이드백 박승욱은 후반기 포항이 두 대회를 병행하는 데 큰 힘을 보탰고, ACL 결승에 당당히 선발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골키퍼 이준 역시 강현무가 빠진 공백을 잘 메우며 팬들 뇌리에 이름을 각인했다.

조별리그 3승 2무 1패 2위로 통과했다. 16강에서 세레소 오사카를 1-0, 8강에서 나고야 그램퍼스(이상 일본)을 3-0으로 눌렀다. 준결승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 동해안 더비에선 후반 막바지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뒤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포항은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출전권과 우승상금 400만 달러(48억 원)는 놓쳤지만 준우승만으로도 상금 250만 달러(30억 원)를 획득했다. 다음 시즌 팀을 운영하는 데 있어 숨통이 트이게 할 자금을 안고 귀국하게 됐다.

올 시즌 상위 6강에 들지 못해 파이널B(하위스플릿)로 처진 포항에겐 ACL 우승만이 다음 시즌 ACL에 나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날 포항이 패하면서 4위에 올라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다음 시즌 ACL 출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주에 승점 3 뒤진 5위 수원FC도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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